이슬람권 7개국 국민의 미국 입국을 한시적으로 금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으로 미국이 지난 16년간 구축한 대테러 방어 전선의 약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미국은 당장 이슬람 수니파 급진단체 이슬람국가(IS) 격퇴전에서 최대 우방인 이라크에 충격과 깊은 상처를 안겨줘 향후 공조에도 차질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워싱턴 포스트(WP)와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정부의 조치로 미국의 대테러 방어전선이 약화할 것으로 우려하는 목소리가 미국 관리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고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NYT는 미국이 IS의 수중에서 이라크 북부 도시 모술을 탈환하려면 가장 협력이 필요한 국가가 이라크인데, 이라크인들은 사전 협의도 없이 미국 뉴스매체를 통해 행정명령 발동 사실을 접하고 충격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6월 3년간의 미국 주재 이라크 대사 임기를 마친 루트만 파일리는 NYT에 이라크 국민의 미국 입국을 금지한 행정명령으로 "이라크인들은 미국이 이라크와 장기적인 관계를 원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신문은 모술 서부 지역을 탈환하기 위한 공격에 이라크가 지상군을 제공하기로 했고, 미군도 5천여명의 병력을 이라크에 파견한 상황에서 이라크의 정치적 지원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면서 트럼프 정부의 행정명령이 양국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점을 전·현직 미국 관리들이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또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나 국무부 중동 전문가들의 조언이 반영되지 않은 행정명령이 몇 가지 측면에서 이라크인들을 자극했다고 보도했다. 우선 조지 부시 전 행정부에서 미국과 이라크가 체결한 전략적 기본합의에 따라 양국은 긴밀한 외교·경제·안보관계를 유지하게 돼 있고 아직 유효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라크 시아파 지도자 무크타다 알사드르는 미국이 7개국 국민의 입국을 막는 것은 "오만한 행태"라고 비난하며 기다렸다는 듯 반미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미국과 가까운 이라크 관리들은 IS가 현 상황을 자원자 모집을 위한 선전술에 악용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미 공화당 의원들과 퇴역 군인들 사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에 긴밀히 협조하면서 신변 보호를 위해 미국 입국 특별비자를 신청하는 이라크 전직 통역관들과 문화 자문위원들이 입국이 차단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공화당 소속 존 매케인 상원의원과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행정명령을 엄격하게 적용할 경우 훈련을 받으러 미국에 들어오는 이라크 조종사들의 입국도 막힐 수 있다고 우려했다.
매튜 올슨 전 미국 국가대테러센터 소장은 "이민과 난민 문제에 관한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은 역효과를 낼 게 분명하다"며 "미국이 이슬람과 싸우고 있다는 테러리스트들의 주장을 증명해줄 뿐 아니라 중동의 우방들과도 멀어지게 하고 국내에서는 미국 무슬림들을 고립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WP도 트럼프 정부가 선동적 수사와 졸속으로 마련한 행정명령으로 이라크를 포함한 우방들을 멀어지게 하고 미국의 중동 개입을 십자군 전쟁이라고 비난해온 테러조직에 선전거리를 제공해줬다고 비판했다.
포스트는 또 미국 정부의 입국 금지 대상국에 걸프 지역과 북아프리카의 주요 테러공격 연루 국가들이 빠지고, 미국의 대테러전에 긴밀히 협력해온 이라크가 포함된 데 이라크인들이 의문을 품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