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리는 에드거 앨런 포의 생애를 주제로 한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에서 목사 그리스월드 역을 맡은 최수형. 캐릭터 분석을 잘하기로 유명한 그를 최근 서울 모처에서 만나봤다. 인터뷰 내용 중 공연 관련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어, 의도치 않은 스포일러를 당할 수 있음을 미리 밝혀둔다.
Q. `에드거 앨런 포` 캐스팅 당시 이야기가 궁금하다.
A. 오디션에 많은 배우들이 왔다고 하더라. 여자 배우들이 먼저 정해졌고, 그리스월드는 윤형렬, 정상윤 둘이서만 할 줄 알았는데 나까지 해서 트리플이 돼서 기뻤다.
Q. 이번 공연이 초연인데 오디션에 많은 배우들이 모였다니 조금 의외다. 왜 그렇게 반응이 좋았던 것 같나?A. 일단 공연이 올라가면 소문이 돈다. 에릭 울프슨이 유작으로 남긴 노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에 더욱 유명했던 것 같다. 아마 초연 같은 경우는 웬만한 배우들은 오디션을 다 볼 거다.
Q. 윤형렬, 정상윤, 최수형 그리스월드 세 명이 스타일이 다 다르다. 세 명이서 상의한 노선이 있나?
A. 전체적인 디렉션은 연출님이 주시고, 그 안에서 흐트러지지 않는 선에서 배우들이 표현하는 걸 허용해준다. 너무 심한 거 같으면 조절하고, 좀 더 해도 될 것 같으면 더 표현한다. 우리도 의견을 많이 내며 연습했다.
Q. 공연 후 반응을 들어본 적이 있나?A. 뭐가 옳고 틀린 건 없는데 상윤이 같은 경우는 사이비 목사 같다고 하더라. 연습을 같이 해봤으니까 무대 위에서 어떻게 하는지가 대충 머리에 그려진다. 형렬이는 제일 점잖은 목사다. 나는 그 중간인 것 같고. 어차피 후반부로 가서 그리스월드가 나쁜 놈인 게 보여지니까 초반에는 목사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도 요즘 나도 초반보다는 많이 나빠졌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Q. 그리스월드 세 명 중에서 수형 씨만 재킷을 벗어 던지는 디테일이 있다.
A. 공연을 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벗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해당 넘버는 나 혼자 있는 공간에서는 부르는 건데, 혼자 있으면서 분노를 표출해보고 싶었다. 관객들이 좋아하고 대표님도 좋아하시더라. 덥기도 해서 벗는 시도는 잘 한 것 같다.(웃음)
Q. 그리스월드마다 신작 발표회에서 포의 시 갈가마귀를 소개할 때 하는 애드립이 다 다르다. 상의한 건가?
A. 대본에는 비둘기라고 나와 있다. 연습할 때 장난삼아 이것저것 해보다가 시조새까지 나왔다. 오골계도 나오고.(웃음) 상윤이는 웃기게 표현하고, 형렬이는 제일 정석이다. 나는 `뻐뻐뻐...뻐꾸기`라고 한다. 그런 디테일이 다 다르니까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Q. 그리스월드에게 레이놀즈는 어떤 의미?
A. 나는 레이놀즈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마 레이놀즈 너가 갓난아이일 때 교회 문 앞에 버려져 있었고, 내가 널 키웠을 거다. 그러니까 니가 나에게 꼼짝 못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고서는 맹목적인 충성을 하는데 답이 없는 것 같다. 그랬더니 레이놀즈가 `그 정도 당위성이 있어 말이 된다`고 하더라.
Q. 그리스월드와 레이놀즈가 대기실을 같이 쓴다. 무슨 이야기를 하나?
A. "내가 책으로 때릴 때 안 아팠니?"라고 물어본다. 유승엽 군이 한 말인데 내가 제일 안 아프게 때린다고 하더라. 상윤이는 머리, 뺨을 때리고, 형렬이는 책 모서리로 명치를 친 적이 있다고 하더라. 나는 소리는 큰데 아프지 않은 가슴 쪽을 때린다. `아프면 말해`라고 하는데 레이놀즈 둘 다 너무 착하다. "연기인데 형님 마음껏 하세요"라고 한다.
Q. 자신이 진짜 그리스월드의 입장이었다면 포우에 대해서 어떻게 대했을까?
A. 나도 비슷하게 행동했을 것 같다. 포를 죽이는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2막 첫 나래이션에 "포는 새로운 잡지를 구상해서 자신의 무게를 이겨내려 하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의 잡지는 철저하게 외면받는다"는 말이 있다. 아마 그리스월드가 본인의 권력, 인맥을 다 동원해서 막지 않았을까. 그냥 두면 혼자서 절대 망할리 없는 천재 시인이라 그리스월드가 다 막았던 것 같다.
Q. 노래는 정말 좋은데 전체적으로 드라마가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최수형 배우의 생각이 궁금하다.
A. 포라는 사람 자체의 삶이 불행하게 태어나서 알콜 중독에 시달리다가 시 쓰다가 죽은 게 다다. 임팩트 있는 사건을 가져올 것도 사실 없다. 우리도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큰 사건이 없으니까 무대를 어떻게 꾸밀지가 정말 궁금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잘 나온 뮤지컬이라고 생각한다. 이 텍스트를 가지고 이런 공연을 만든 건 정말 최선의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중간중간 드라마가 건너뛰는 게 많지만, 배우들이 잘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 자세한 이야기는 인터뷰②에서 이어집니다.
사진/ 마임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