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를 곧 ‘나’라고 생각하는 피아니스트가 있다. ‘냉정과 열정 사이’의 피아니스트 양성원이다. ‘피아니스트 양성원의 냉정과 열정사이’는 양성원의 고유 브랜드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양성원은 KBS FM 장일범과 함께하는 피아노 리사이틀, KBS FM 조윤범 해설의 순회연주를 진행했다. 공연은 연일 매진을 이뤘다.
양성원은 올해 하반기에도 ‘피아니스트 양성원의 냉정과 열정사이Ⅳ-2016’를 통해 4개 도시 투어에 나선다. 그녀는 현재 투어 준비뿐 아니라 명지대학교 객원교수로 건국대학교 및 동대학원과 대구가톨릭대학교의 외래교수로서 후학을 양성하며, 5월 김주영 교수와의 듀오 콘서트, 6월 KT음악회 등 각종 연주일정을 준비하고 있다.
이렇게 바쁜 그녀가 3월 20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독주회를 연다. 그녀가 이렇게 피아노와 음악을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와 피아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Q. 어떻게 처음 피아노를 시작하게 됐나.
아버지는 음악 애호가이시고 어머니는 음악을 전공하셨다. 이런 집안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피아노를 시작했다. 피아노에 입문했을 때는 5살이었다. 음악가가 되려고 시작하지는 않았다. 당시 피아노를 칠 때마다 ‘성원이는 성장속도가 빠르고 음악을 대하는 집중력도 남다르다’라는 평을 들었다. 그렇게 피아노 전공에 발을 디디게 됐다.
Q. 피아노 연주시 가장 힘들었던 때가 있다면?
피아니스트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엄청난 에너지가 요구되는데, 감기에 걸리거나 체력이 부족해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무대에 서게 될 때가 제일 힘들다. 지난 1월에는 독감이 심하게 걸려서 고열과 근육통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해야 할 것들은 머릿속에 가득한데 할 수 없으니 더 힘들더라. 좋은 연주는 많은 연습량과 곡 해석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에서 나오는데 몸 상태가 안 좋으면 연습과 고민을 하기 힘들어진다. 이러한 상태 때문에 청중과 음악을 통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없게 될까봐 부담이 생기고 긴장이 된다. 늘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몸관리에도 최선을 다하면서 연주에 대비하고 있다.
육체적 힘듦 외에도 감성적 힘듦이 있다. 연주해야하는 곡이 가진 감성을 공감하지 못할까봐 힘들다. 예를 들면 이별의 고통, 또는 인생의 굴곡을 체험하지 않고서는 이해하지 못할 것만 같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곡을 연주하면 할수록 연주자인 내가 소외되는 모양이 되는 것 같다. 그 느낌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를 한다. 물론 이런 고독함과 힘듦을 통해 한층 더 성숙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세월의 차이를 두고 같은 곡을 연주하면 그간의 경험을 통해 더욱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때 희열을 느낀다.
Q. 피아노를 연주하며 가장 자랑스럽고 기뻤을 때가 있다면?
준비한 음악들이 관객들에게 제대로 전달될 때다. 내 머릿속 영감들이 음악으로 드러내고 내가 원하던 대로 잘 전달됐다고 느낄 때 가장 자랑스럽다. 연주가 끝나고 환호와 박수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생각에 희열을 느낀다. 피아노 연주는 뜨거운 열정을 절제의 미덕으로 세련화시키고 승화시켜야하는 작업이다. 연주 준비는 열정과 절제를 끊임없이 갈고 닦는 인내의 과정이다. 그 과정을 겪으면서도 늘 무대에 선 순간 행복함을 느낀다. 물론 아쉬움도 함께 느낄 때도 있지만. (웃음)
Q. 이번 독주회를 준비하게 된 계기는? 가장 애정과 열정이 담긴 프로그램은?
2011년부터 시작된 ‘냉정과 열정사이’ 투어가 2013년 12월 귀국독주회를 한 후에는 해마다 투어 연주를 해왔다. 이번 투어 역시 새롭게 준비한 프로그램으로 전국 투어로 진행된다.
이번 독주회에서는 프레드릭 쇼팽의 유작 녹턴인 ‘Nocturne in c Sharp minor, Op. Posth’와 ‘Nocturne in c minor, Op. Posth’를 골라 의미를 뒀다. ‘피아노의 시인’ 쇼팽은 폴란드가 낳은 최대의 작곡가다. 그는 19세기 중엽 헝가리의 리스트, 독일의 슈만과 함께 낭만주의의 새로운 세계에 꽃을 피웠다. 이 곡들은 쇼팽의 녹턴 중 가장 내성적이면서 순수하다. 동시에 주관적이다. 이 곡의 아름다움은 화성적 구성을 풍요롭게 함으로써 전체를 하나의 예술형식으로 만들었다는 데 있다. 이곡을 들을 때마다 가을의 달빛이 느껴진다. 그의 음악에 몸을 맡기는 모든 사람은 달빛에 정화돼 고요히 빛나는 마음속에서 꿈꾸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Q. 애정을 갖는 곡이 있다면?
쇼팽 녹턴과 함께 이번 독주회 전반부를 장식할 베토벤 Sonata No. 21 in C Major, Op. 53 `Waldstein` 이다. 베토벤은 고전에서 낭만주의 음악으로 가는 가교역할을 하며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한 개혁가다. 그의 음악은 고전주의의 형식에 강렬하면서도 낭만주의적 색채를 담아냈다. 이 작품에서 나는 냉정과 열정의 공존을 느끼며 나아가 경이로움을 느낀다. 이곡은 베토벤이 청각을 잃고 좌절을 겪은 후 어느 때 보다도 창의적이고 왕성한 작곡활동을 펼친 시기에 작곡됐다. ‘비창’, ‘월광’, ‘열정’ 소나타 등과 함께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이기도 하다. 이곡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중 가장 밝고 화려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쉴 틈 없이 이어지는 빠른 곡의 진행, 10마디 이상동안 유지하는 페달링, 폭넓게 펼쳐지는 음역과 긴 트릴 속에서의 숨은 멜로디 등 기존의 작품들보다 진보된 기법들을 엿볼 수 있는 곡이라 매력적이다.
Q. 독주회가 끝나면 무엇이 가장 하고 싶은가.
연주와 수업이 이어져 있다. 여유가 많지는 않겠지만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짧은 여행을 하고 싶다. 자연의 에너지를 듬뿍 맞고 싶다. 밀린 영화도 보고, 멋진 배우자를 찾는 노력도 하려고 한다.(웃음) 화창한 봄 날씨에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벚꽃 길을 거닐고 싶다.
Q. 어떤 피아니스트로 남고 싶은가.
피아노는 생각과 음악적인 상상을 모두 전달할 수 있다. 음악적인 생각은 곧 ‘나’다. 피아노를 통해 청중들과 음악세계를 공유하면서 스스로 치유받기도 한다. 관객이 나의 연주를 듣고 감동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다. 청중들은 고맙게도 늘 나에게 ‘무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가진 아티스트’라고 전해준다. 청중들을 위해 빛을 보내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 슈만은 말했다. ‘사람들의 어두운 마음속에 빛을 보내는 것, 이것이 예술가의 의무이다.’라고. 그 말처럼 나 역시 그러한 밝고 따뜻한 빛을 보내는 ‘열정의 피아니스트’ 로 남고 싶다.
Q. 피아노를 전공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다양한 경험을 풍부하게, 타성적 일상을 벗어난 많은 도전을 했으면 좋겠다. 자기만의 피아노 예술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자기 삶의 경험이 그 예술의 원동력과 씨앗이 될 터이기 때문이다. 도전하길 바란다. 나 스스로도 늘 염두에 두고 있는 생각이기에.
그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는 ‘열정’ 그 한 마디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그녀의 피아노 인생은 앞으로도 아름답고 힘 있는 에너지로 물결칠 것이다.
피아니스트 양성원의 독주회는 3월 20일 오후 7시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