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애 기자] “‘조선마술사’ 내용이 오글거린다고요? 사랑은 원래 유치하잖아요. 다들 사랑 해보셔서 아시죠?” 인터뷰에 앞서 영화 내용에 대한 언급에 고아라는 기자를 향해 눈을 찡긋해 보였다. 일명 ‘SM 3대 여신’으로 불리며 예쁜 여주를 도맡는 그의 의외의 살가운 웃음에 향기 좋은 꽃이 떠올랐다.
2015년의 끝자락,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고아라는 자리에 앉자마자 수다를 떨 듯 영화 이야기부터 꺼내 놨다. 눈빛은 또렷하고 말투엔 힘이 있었다. 그가 얼마나 이 영화를 사랑했는지 인터뷰 전부터 느껴졌다.
고아라가 영화 ‘파파’ 이후 4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으로 선택한 작품은 ‘조선마술사’였다. 극중 고아라는 원치 않는 상황 속에서 청나라 왕자빈으로 혼례를 치르러 끌려가는 청명 공주 역을 맡았다. 생애 첫 사극, 전통적 사극이 아닌 판타지가 섞인 장르물이지만 그에게는 꽤나 큰 도전이었을 테다.
그는 ‘조선마술사’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사극이라는 점부터 흥미로웠어요. 꼭 한 번 해보고 싶던 장르거든요. 특히 ‘조선마술사’ 속 청명이는 소녀스러운 모습 이면에 원숙한 여자로서의 모습까지 가진 인물이에요. ‘응답하라 1994’ 이후에 색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성숙한 여인의 매력을 드러내기에 적격인 작품이었죠“라고 설명했다.
청명은 조선시대 의순공주에게서 모티브를 따왔다. 의순공주는 1650년 청의 구혼 요청으로 조선의 공주 대신 청나라로 시집을 가게 된 양반가의 딸로, 역사적 아픔을 담은 인물이다. 실존인물이었던 만큼 고아라는 역사 공부를 하며 청명 캐릭터에 몰입했다고 밝혔다. 그는 “사실 청명은 굉장히 천진난만한 성격이지만 신분의 책임감 때문에 감정을 절제해야 하는 인물이에요. 시대적 아픔을 감당해야 했던 그의 무거운 내면과 소녀감성을 동시에 표현하는 게 쉽진 않았죠”라고 설명했다.
극중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을 겪는 청명을 연기하며 고아라는 일기를 썼다고 고백했다. “청명이로 일기를 쓰는 거죠. 내가 조선시대 청명이라고 생각하고 오늘의 느낌을 쓰면서 캐릭터에 천천히 몰입했어요” 이에 ‘문학소녀 같다’는 기자의 말에 시를 좋아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고아라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선물 받았던 류시화 시인의 ‘지금 알았던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을 읽고 시를 좋아하게 됐어요. 안 어울리죠?(웃음)”라며 “제가 적는 습관이 있거든요. 시를 읽고 좋은 표현이나 느낌을 메모해요. 그런 것들이 작품할 때 도움이 되더라고요”라고 전했다.
2003년 드라마 ‘반올림’으로 데뷔해 ‘응답하라 1994’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고아라는 어느덧 연기생활 13년차를 맞았다. 어린 시절부터 배우로 살았던 만큼 다른 직업에 대한 동경은 없었을까. “사실 어릴 때는 다른 친구들도 다 저처럼 사는 줄 알았어요. 좀 커서야 ‘내 삶이 친구들과는 조금 다르구나’를 느꼈죠. 하지만 일찌감치 배우의 길을 선택한 것에 후회는 없어요. 물론 많은 걸 표현해야 하는 배우의 직업적 특성이 버거울 때도 있지만 동시에 매력적이기도 해요”라고 덧붙였다.
사실 고아라에게 ‘조선마술사’는 연기 인생 세 번째 영화. 그간 신통치 않았던 스크린 흥행 성적에 대해 언급하자 솔직한 대답이 이어졌다. 그는 “흥행에 실패했다고 해서 동요하진 않아요.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많은 스태프분들과 배우들이 최선을 다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또 저는 이제 시작하는 배우이기에 실패 역시 배우는 과정 중 하나일 뿐이에요. 물론 이왕이면 더 많은 관객이 소통해주면 좋겠죠?”라며 웃어보였다.
배우는 과정. 인터뷰 내내 고아라가 가장 자주 꺼낸 말이었다. 그에게 어떤 배우가 되어가고 있냐는 질문을 던지자 그는 “아직 ‘이런 배우다’라고 콕 짚어 설명하기엔 힘들지만, 확실한 건 연기에 살이 붙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라고 전했다. 또 그는 배우로서의 목표를 전하기도 했다. “관객들이 봤을 때 공감이 갈 만한 캐릭터를 표현하고 싶어요. 언젠가 ‘장르 불문, 표현 잘하는 배우’라고 인정받고 싶거든요. 그러기 위해서 더 많은 경험을 통해 넓고 깊은 내면을 다듬는 게 제가 풀어야할 숙제겠죠”라고 말했다.
고아라는 ‘반올림’의 옥림이나 ‘응사’ 속 나정이처럼 명랑하거나 새침한 이미지로 굳어지는 것이 오히려 감사하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는 대중에게 기억되지 못한 채 묻혀버리기 십상인 연예계에서 한 이미지로 각인된다는 것은 축복이라며 “오히려 앞으로 더 많은 작품들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드려야 한다는 숙제가 생긴거잖아요. 극복해야 할 산이 있고 그를 향해 도전한다는 건 즐거운 일이죠”라며 설레는 마음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새해 계획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고아라는 무대인사와 차기작부터 떠올렸다. 개인적인 스케줄에 대해 재차 묻자, “사실 제일 하고 싶은 건 1박정도 국내여행인데, 당분간은 너무 바빠서 힘들거에요. 하지만 전 바쁜 게 좋아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될 정도에요.(웃음) 이제 시작하는 배우니까요”라는 속 깊은 답을 남겼다.
‘바빠서 좋다’는 것은 다가올 시간을 향한 기대와 자신의 길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일 것이다. 기대되는 미래가 있다는 것 역시 그만큼 잘 준비된 현재가 있다는 반증일 테다. 마냥 예쁘기만 한 줄 알았던 고아라는 살면서 겪는 모든 일들에 배울 점부터 찾아내는 선명한 내면을 가진 여배우였다. 10대 소녀로 데뷔해 어느덧 20대 중반에 들어선 여배우 고아라, 그의 전성기는 이제 막 시작됐다.
(사진=SM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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