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애 기자] “족보 없으면 잘 하던가, 아님 잘 태어나던가” 조승우의 피를 거꾸로 솟게 한 이 한마디는 ‘내부자들’을 길러낸 시발점이었다. 이는 마치 최근 우리 사회를 뒤흔든 ‘수저 계급론’마저 떠올리게 한다. 실력보다 소위 ‘빽’에 의해 앞날이 정해지는, 이토록 잔인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들이 택한 것은 동맹이었다. 이에 끊임없이 위태로운 공생을 이어가지만 이 잔혹한 동맹사에 영원한 아군은 없다.
영화 ‘내부자들’은 ‘이끼’, ‘미생’을 탄생시킨 윤태호 작가의 웹툰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물론 원작이 미완결이었던 만큼 영화의 결말은 우민호 감독의 손에서 마무리됐다. 하지만 원작이 가진 강력한 에너지만큼은 고스란히 옮겨 왔다.
영화 속에는 대한민국을 움직이려는 공권력, 재벌권력, 언론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안에 깊숙이 뿌리박힌 내부자들을 통해 우리 사회 비리의 근원을 파헤치는데 집중한다. 유력한 대선주자와 그를 후원하는 재벌, 판을 짜는 보수신문 논설위원들 사이에서 팽 당한 정치깡패의 복수극. 어디서 많이 본 듯 익숙하다고 느낄 법도 한데 배우들의 폭발적인 에너지에 식상함을 느낄 새 조차 없다.
원작인 웹툰이 부정부패 그 자체에 초점을 맞췄다면, 영화는 시스템 안에 던져진 개인들의 치열한 대결에 집중했다. 더불어 무겁기만 한 정치드라마의 색을 걷어내고 범죄드라마라는 매력적인 장르를 더해 관객들의 소화 부담을 줄인 것 역시 특징이다. 여기에 원작에 없는 캐릭터인 조승우(우장훈 역)가 더해지며 인물 간 대립각은 더욱 뚜렷해졌다.
무엇보다 영화 속 배우들의 연기력은 말 그대로 ‘깔 게 없다’. 영화의 주축인 세 배우들은 각 인물들이 가진 뜨거운 욕망을 무섭도록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극 중 야망을 위해 위험한 거래에 뛰어드는 검사 우장훈 역을 맡은 조승우와 유력 보수신문 논설주간 이강희 역의 백윤식은 영화 ‘타짜’ 이후 9년 만의 호흡이 무색할 만큼 어마어마한 시너지를 내며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특히 잠시 잊고 있었던 이병헌의 연기력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다. 그는 대기업 회장과 정치인에게 이용당하다 버림받는 깡패 안상구 역을 연기하며 망가짐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를 통해 무겁기만 한 극의 중간 마디에 관객으로 하여금 숨 쉴 여유를 제공하며 그가 아닌 안상구는 상상할 수 없게 만들었다. 앞서 사생활 문제로 적잖은 구설수에 오르내렸던 이병헌이었던 만큼 그의 연기에 몰입하기 힘들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던 건 완벽한 기우였다. 러닝타임 내내 이병헌은 없었다. 안상구는 그의 인생 캐릭터라 부를만하다.
더불어 이미 수많은 작품을 통해 ‘씬 스틸러’로 정평이 나 있는 조재윤, 이경영, 배성우, 김대명을 비롯한 조연들의 미친 연기력은 영화의 큰 줄기가 힘을 잃지 않도록 구석구석 중심을 잡아준다. 특히 오 회장의 비서 조 상무 역할을 맡은 조우진은 섬뜩할 만큼 인상적인 연기로 결코 많지 않은 등장 횟수에도 불구하고 씬 전부를 씹어 먹었다.
여기에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답게 정치인과 기업인, 언론인들의 별장 성접대 장면, 눈을 가리게 될 정도로 수위 높은 잔인한 장면들이 더해졌다. 이는 그간 애써 외면했던 추악한 권력의 민낯을 들추어내며 극의 충격을 극대화한다. 물론 그 모든 것이 100% 현실이라고 생각하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자극적이다. 하지만 정치-경제-언론이 얽히고 설킨 각종 비리와 스캔들이 쏟아지는 현실을 생각하면 완벽한 픽션이라고만 주장할 수 있을까 싶다.
과연 대한민국에 정의는 남아있는가. 130분 간의 러닝타임 끝에 감독은 이 단순한 명제의 답을 내놓는다. 눈에 띄는 점은 영화가 끝나고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에서 ‘영화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음’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사실과 다를 바 없음’, 혹은 ‘사실은 더 할 수도 있음’으로 다가오는 것은 혼자만의 감상은 아닐 것 같다. 11월 19일 개봉.
(사진=(주)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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