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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익경기자가 만난 세계의 건강한 한국인-5] ‘뉴저지 팰리사이드파크 부시장 이종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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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저지 주에서 한인 거주자들이 많은 팰리사이드 파크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며 한인 권익신장과 정치력 신장의 메카로 키워온 이종철 부시장에 관한 인터뷰를 진행해본다.

문=태권도 경기인 출신으로 알고 있는데 본인의 소개, 경력을 부탁한다

답=저는 충남 예산 출신으로 학창시절부터 태권도 선수로 활동해왔으며, 명지대 시절 ROTC로 병역의 의무를 마치고, 대학시절 대통령기 태권도 선수권대회 3연패를 이룩하고 1983년 멕시코 국가대표 코치로 발탁되어 멕시코에서 5년여 태권도 지도자로 생활하였습니다. 그 후 1988년 미국 뉴저지로 이주하여 미국 국가대표 코치를 역임하였고, 현재도 태권도장을 운영하며 후학을 양성하며 타운의 부시장으로 활동해오고 있습니다.


문=여느 운동선수와 다르게 문무를 겸비하신듯 하고, 더욱이 타국에서 이렇게 정치인으로서 사명을 다하고 계시는데 정치에 입문하게 되신 동기는 무엇인지?

답=제가 미국에서 정치를 하고 있지만, 그에 앞서 태권도인입니다. 무릇 무도지도자는 지.덕.체를 겸비할 것을 제자들에게도 강조하고 있고, 굳이 의도하지는 않지만 타의 모범이되고, 남들과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하는게 저의 생각입니다. 그런 저의 생각이나 행동들이 자연스럽게 지역사회에 봉사하게 되었습니다. 기자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미국내 태권도 지도자의 위상은 굉장히 높습니다. 공교육에서 가르치지 못하는 충효사상등 가치들을 가르치다보니 태권도 마스터들을 존경하죠. 어떤 야망보다는 봉사하는 것이 좋아 활동을 하게 됐고, 뉴지지 한인회 부회장 및 상공회의소 부회장을 거쳐 미국에서 정치의 입문이라 할 수있는 교육위원으로 입문하게 됐습니다.


문=교육위원 당선 후에는 어떤 길을 걸어오셨는지?

답=교육위원을 역임한 후 2009년 시의원 보궐선거에 당선되고, 2012년에 재선에 성공한 뒤 시의장으로써 역할을 해오다가 이번에 팰리사이드 파크 로툰도 시장의 추천으로 부시장에 천거되어 시장 임기와 동일한 3년의 기간동안 활동할 예정입니다.

문=미국정치에 입문하시고 느낀점은 무엇이며, 태권도인으로 정치를 하는데 편한점과 불편한 점은 무엇인지?

답=처음 정치에 입문하고 보니 미국 타운의 문턱은 너무 높았고, 공무원들의 고자세, 시민들에게 나이스하지 않은 것들이 눈에 띄였습니다. 비록 중앙정치는 아니지만 이너서클(inner circle)에 들어와보니 우선 공무원들과 시민들, 특히 한국인들과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았습니다. 일례로 저희 타운에 사시는 한인 할머니 옆집의 백인남자가 담장을 부쉬어놓고서는 가난한 할머니에게 담은 너와 나의 중간지점에 있는것이니 할머니에게도 절반의 돈을 지불해야 한다며 안그러면 변호사를 고용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음료수를 사오셔서 억울함을 호소하셨고, 타운법에 의해 부쉰 그 백인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며 그 할머니 일을 해결해드린 적이 있는데, 이렇듯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할머니 입장에서 저는 강력히 호소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인 정치인들이 더욱 각 타운, 카운티 등에 많이 나와야 하는 이유이지요.
그리고 태권도 경기인 출신으로 전무후무하게 정치인의 길을 걷고 있는데 저는 불편한 점 보다는 미국사회에서는 유리한 점이 더 많은 듯합니다. 기본적으로 미국사회 전반적으로 무도계 지도자(master)에 대한 예우는 종주국인 대한민국보다 더욱 엄격하고 성스러운 것이죠. 미국 태권도 대부이신 준 리의 경우 미 연방의원들의 스승이셨고, 작고하신 ATA(American Taekwondo Association) 이행웅 관장님의 경우 빌클린턴이 대통령 취임식에서 90도로 몇 번을 인사해서 화제가 된적이 있습니다. 저 역시도 의정활동을 할 때 다른 시의원들이 저를 부를때에는 ‘미스터 리’라고 부르지 않고 ‘매스터 리’라고 항상 부르며, 제가 보이지 않는 수많은 벽을 태권도 지도자여서 자연스럽게 넘어간 경우가 꽤 있었던 것같습니다. 그리고 현재 미 대선의 공화당 후보중에 한명인 뉴저지 주지사 크리스 크리스티가 저희 타운에 방문했을때도 보통 지역 정치인들과 악수만 하고 지나가지만 저에게는 두 손으로 마주잡고, 태권도에 관해서 질문을 하는 등 예우와 대우를 해주는 것을 보고 다른 정치인들이 남다르게 보곤 했죠.

문=이 부시장님께서 얼마전까지 시의장 등을 역임하며 타운에서의 역할이나 실적, 기억에 남는 일은?

답=우선 시의장(council man)으로써의 역할은 범죄율을 낮추고, 환경보호와 개발, 학교를 제외한 타운의 공무원 진급 및 감사, 예산책정과 분배, 법(조례)제정 등이 저와 시의원들의 주된 일이었고, 저희 타운에는 아무래도 한인거주자가 많고, 한인 비즈니스맨들이 많다보니 그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의정에 반영하는게 제가 한인정치인으로서 또 다른 저의 의무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인들과 관련된 대소사를 일일이 열거 할 수없지만 몇가지 기억에 남는 일은 미국 내 최초로 팰리사이드 공공도서관 내에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를 세웠고, 일본측에서는 철거를 요구했으나 그것을 묵살하는 한편, 기림비 존손과 더불어 추모비 건립을 추진하며 끊임없이 한국 위안부의 진실을 미국 사회에 알리기 위해 노력해오고 있고, 그리고 팰리사이드 고등학교에 제2외국어로써 불어를 빼고, 한국어가 채택되도록 했으며, 공립 초등학교에는 점심급식을 한식을 제공하도록 하였습니다. 어린시절부터 한국의 음식을 맛보다보면 자연스럽게 한국이란 나라에 관심이 생기게 될것이며 그것이 곧 한식의 세계화에 초석이 될 것이며, 제가 저의 고국을 위해 조금이나마 할 수있는 일들이 아닌가 합니다.

문=올바른 생각을 가진 정치인 한명이 할 수있는 일이 참으로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앞으로의 포부나 계획은?

답=저희 팰리사이드 파크 타운은 다른 인종들의 구성에 비해 한인의 밀도(인구의 55 이상 한인)가 높습니다. 제가 부시장에 임명되며, 해나고자 하는 일은 타운에서 가장 메인도로라 할 수있는 브로드 에비뉴(broad ave)의 이름을 코리아 웨이(Korea way)로 바꾸는 일을 진행하는 것이고, 미국내에서는 음력설날이 없는데 다른 아시안 정치인들과 연합하여 음력설날을 휴무일로 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충남도와 저희 타운이 MOU협약을 체결하여 상호 교류의 물꼬를 틀 생각이고, 이와같은 한국과 미국의 가교역할을 하는데에도 앞으로 심혈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끝으로 저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미국에 와서 이렇게 태권도 지도자로써 존경받고, 정치인으로써 시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봉사하고 억울한 사람을 돕고 불합리한 제도를 한국인으로써 태권도인으로써 개선하고 바꿔나가는데 큰 보람을 느낍니다.
저는 어떤 정치적 야망이나 거창한 포부보다는 늘 주어진 현실과 환경에 최선을 다하고, ‘가다보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인생이 계획대로만 되지는 않겠죠. 물론 게획과 포부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작은 것이라도 실천할 수 있는 힘, 실천력을 가진 사람으로 젊은 제자들, 타운의 시민들에게 귀감이 되는 사람이 되는게 저의 포부라 할 수 있겠습니다. <현장인터뷰진행=강효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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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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