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설명 = 연합DB)`신경숙` 작가가 표절 의혹이 일고 있는 가운데, 신경숙 소설가의 작품집 `감자 먹는 사람들`을 출판한 창비가 "표절로 볼 수 없다"는 공식입장을 밝혀 눈길을 끌고 있다.
창비 문학출판부는 신경숙 작가가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미시마 유키오의 단편 `우국`은 극우민족주의자인 주인공이 천황 직접 통치를 주장하는 쿠데타에 참여하지 못한 후 할복자살하는 내용의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신경숙의 `전설`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인간의 근원적인 사랑과 전쟁중의 인간 존재의 의미 등을 다룬 작품"이라면서 "유사한 점이라곤 신혼부부가 등장한다는 정도"라고 말했다.
창비는 "(문제가 된) 신혼부부가 성애에 눈뜨는 장면묘사는 일상적인 소재인데다가 작품 전체를 좌우할 독창적인 묘사도 아니다"며 "인용 작품들은 두 작품 공히 전체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이를 근거로 표절 운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소설가 이응준은 지난 16일 온라인매체 허핑턴포스트에 올린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신 작가가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을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밤뿐만 아니라 훈련을 마치고 흙먼지투성이의 군복을 벗는 동안마저 안타까와하면서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그 자리에 쓰러뜨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레이코도 잘 응했다. 첫날밤을 지낸 지 한 달이 넘었을까 말까 할 때 벌써 레이코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고, 중위도 그런 레이코의 변화를 기뻐하였다. ”(미시마 유키오, 김후란 옮김, ‘우국(憂國)’, ‘金閣寺, 憂國, 연회는 끝나고’, 주우(主友) 세계문학20, 주식회사 주우, P.233. (1983년 1월 25일 초판 인쇄, 1983년 1월 30일 초판 발행)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 첫날밤을 가진 뒤 두 달 남짓,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여자의 청일한 아름다움 속으로 관능은 향기롭고 풍요롭게 배어들었다. 그 무르익음은 노래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 속으로도 기름지게 스며들어 이젠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노래가 여자에게 빨려오는 듯했다. 여자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남자였다. ”(신경숙, ‘전설’ ‘오래전 집을 떠날 때’, 창작과비평사, P.240-241. (1996년 9월 25일 초판 발행, 이후 2005년 8월1일 동일한 출판사로서 이름을 줄여 개명한 ‘창비’에서 ‘감자 먹는 사람들’로 소설집 제목만 바꾸어 재출간)
▶출판사 창비 문학출판부의 공식 입장 전문언론과 독자분들께 `전설`과 `우국` 두 작품을 다 읽고 판단해주시기를 당부드린다. 두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짤막하게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미시마 유키오는 일본 내 극우 성향의 민족주의자고, 1970년 쿠데타를 주장하는 연설을 한 뒤 45세의 나이로 할복자살한 작가이다. 1960년에 발표한 `우국(憂國)`은 작가의 말년의 삶을 예견한 단편이라고 봐도 무관한데, 작품의 주인공은 천황을 절대적으로 신봉하고 남성주의에 빠진 극우민족주의자이다.
시대적 배경은 1936년 천황 직접 통치를 주장하며 쿠데타(2월 26일)를 일으킨 세력이 3일 천하로 실패한 날이다. 쿠데타의 대의에는 동조했으나 신혼인 점을 고려한 친구들이 배제하는 바람에 거사에 참여하지 못한 주인공(신지 중위)이 할복을 결심하고, ‘천황 군대 만세’라는 유서를 남긴 뒤 자살하는 세세한 과정(창자가 쏟아져나온 뒤에도 죽지 않자 스스로 단도로 목을 찔러 죽어가는 과정의 묘사)을 아내(레이코)로 하여금 눈앞에서 지켜보게 한 다음, 레이코 역시 그의 신념이 당연하다는 듯 뒤따라 단도로 목을 찔러 자결한다는 결말로 끝이 난다. 성애묘사가 두드러지는 남성주의적인 판타지로 볼 수도 있는 단편이다.
신경숙 작가의 소설집 `감자 먹는 사람들`에 수록된 단편 `전설`은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뛰어난 작품으로, 전쟁을 체험하지 못한 세대의 작가가 쓴 거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직핍한 현장감과 묘사가 뛰어나고 인간의 근원적인 사랑과 전쟁 중에서의 인간 존재의 의미, 인연과 관계의 유전 등을 솜씨있게 다룬다.
사실 두 작품의 유사성을 비교하기가 아주 어렵다. 유사한 점이라곤 신혼부부가 등장한다는 정도이다. 또한 선남선녀의 결혼과 신혼 때 벌어질 수 있는, 성애에 눈뜨는 장면 묘사는 일상적인 소재인데다가 작품 전체를 좌우할 독창적인 묘사도 아니다.(문장 자체나 앞뒤 맥락을 고려해 굳이 따진다면 오히려 신경숙 작가의 음악과 결부된 묘사가 더 비교 우위에 있다고 평가한다.) 또한 인용 장면들은 두 작품 공히 전체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포괄적 비문헌적 유사성’이나 ‘부분적 문헌적 유사성’을 가지고 따지더라고 표절로 판단할 근거가 약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 개정판 제목에 대한 언급이 있어 답을 드린다. 이응준 씨는 개정판 제목을 바꾼 것을 가지고 무슨 문제가 있는 듯한 논조로 이야기하는데 유감스러운 일이다. 구간 개정시에는 작가뿐 아니라 출판사 내외부의 의견을 수렴해 더 어울리거나 그 시기에 맞는 제목으로 바꾸기도 하는데 이를 표절 시비와 연관지어 문제 삼는건 도를 넘어선 억측임을 밝힌다.(2015년 6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