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목소리로 말한다. 연기할 때는 무척이나 진지한데 평상시에는 못 말리는 말재주꾼이라고. 영화 속에서는 세상 누구보다 심각하지만 ‘컷’ 소리만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장난꾸러기로 돌아온다. 그렇게 배우 정재영(43)은 영화 ‘열한시’(김현석 감독, (주)파레토웍스 제작)를 촬영하며 더욱 웃음이 늘었다. 함께 영화를 찍은 배우들과의 찰떡 호흡. 이 덕분일까. 영화도 좋은 결과를 얻고 있다.
정재영은 ‘열한시’에서 시간 이동 연구에 집착하는 천재 물리학 박사 우석을 연기했다. 24시간 후로의 시간 이동에 성공한 우석은 미래에서 누군가의 공격을 받게 되고, 가까스로 하루 동안의 시간이 담긴 CCTV를 확보해 현재로 귀환한다. 그 후, 위험에 놓인 상황에서도 프로젝트에 집착하며 연구원들과 갈등하는 우석. 정재영은 이렇게 똑똑한 역할을 맡게 돼 기쁘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 “느낌 중요, 그저 감정에 충실해 연기할 뿐”
남들보다 부지런하게, 아주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 정재영의 말에서 굳은 의지가 느껴졌다. 그런데 이는 곧 다음 말로 무너지고야 말았다. “남들이 볼 때에는 그냥 대충 살아가고 있는 건데, 나로서는 굉장히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는 그의 말에 괜스레 웃음이 났다. 배우 이전에 ‘사람’ 정재영은 이렇게 솔직했다. ‘이래도 될까?’ 싶을 정도로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신기하면서도 재밌어졌다.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어떤 느낌으로 연기를 했는지 많이 물으세요. 그런데 웜홀을 통과할 때 어떤 감정이 드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외로운 감정? ‘외로워 해봐’라고 주문한다고 해서 외로운 연기가 나오는 건 아니거든요. 순간의 감정에 충실했어요. 웜홀을 통과할 때는 무섭겠지. 그렇다고 벌벌 떨어서는 안 되고 속으로는 떨리는 데 안 그런 척을 해야겠구나. 그런 거였죠. 느낌이 제일 중요 했던 거 같아요.”
듣고 있으니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웜홀 통과 연기나 외로움. 이건 겪어봐도 매 순간의 감정마다 다른 것이니까. 그렇게 모든 게 새로웠다. 만들어가야 되는 부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정재영은 이 작품을 선택했다. 정재영이 ‘열한시’에 합류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새로움이었다. 이야기 자체의 새로움. 무슨 일을 할 때도 빨리 질린다는 그. 그래서 연극을 할 때도 두 달 이상, 연장 공연은 절대 해본 적이 없다는 정재영. 그렇게 그는 우리나라 영화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타임 슬립 장르에 끌리고야 말았다.
“드라마를 보고 선택했고 그 다음은 감독이었어요. 드라마가 만들어져야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니까. 타임머신으로 포장을 했지만 사실 그런 계기로 미래를 보고, 그걸 바꾸려고 하지만 결국 못 바꾸게 되는 이야기잖아요. 복잡한 것 같으면서도 어렵지는 않지만 재미는 있는. 사실, 이런 종류의 영화를 굉장히 좋아해요. 그래서 이런 상식들이 꽉 차 있죠. 박사예요 박사. (웃음)”
◆ “이상하게 촬영만 들어가면 웃겨”
배우들과의 호흡을 이야기하자면 이제 입이 아플 정도다. 공식석상에서부터 인터뷰까지 수없이 이야기를 해온 ‘열한시’ 배우들의 본 모습. 단단히 한 몫 하는 것이 바로 정재영이다. 김현석 감독을 시작으로 정재영 김옥빈(영은) 최다니엘(지완) 박철민(영식)까지. 안 진지한 사람들이 모여 진지한 영화를 만들자니 촬영만 시작되면 웃음 폭탄, 폭풍 웃음이 쏟아진다. 이들의 증언만 모아보면 영화 촬영이 제대로 된 게 신기할 정도다.
“영화는 시종일관 진지해요. 별로 깔깔거리는 장면도 없고요. 그런데 이상하게 촬영만 들어가면 그렇게 웃겨요. 후배들이 본받을 만한 모습을 보여줘야 되는데 그렇지 못해서 미안하기도 하고. 하하. 특수효과가 많잖아요. 그래서 그냥 아무것도 없는 모니터를 보고 연기를 해야 된다거나 타임머신 트로츠키가 웜홀을 통과할 때 알아서 연기를 해야 되는 등 그런 게 참 많았어요. ‘내일로 가자’라는 단어조차도 웃긴 거죠. 안전 바도 수동이에요. 손을 안보이게 클로즈업을 해서 직접 내렸죠. 정말 재미있는 현장이었어요.”
영화 촬영장에 숨겨진 비하인드를 이야기하며 끝없이 웃음을 잃지 않았던 정재영. 영화 속에서 보면 잘 차려진 연구소 같지만 실제 환경은 정말 열악했다. 정재영은 “사실 우리 영화는 SF영화가 아닌데, 타임 스릴러라는 장르인데. 우리에게 ‘그래비티’ 같은 SF를 기대하는 분들도 있다. 그러면 진짜 안 되는데”라며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쉴 새 없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쏟아낸다.
“19세 관람가였어요. 죽는 모습도 엄청 잔인했죠. 그런데 김현석 감독이 자신만의 스타일로 바꿨어요. 연기도 연기이지만 없는 걸 만들어내서 찍으니까 그게 또 재밌더라고요. 버튼이 없는데 누르는 척을 하며 ‘이렇게 하면 되나?’ 그러고. 연구소 문도 영화 속에서는 쇠문인데 사실 그게 나무문이에요. 힘들게 열어야 되는데 여는 척만 하고 그랬었죠. 메인 문도 수동이에요. 무겁게 하려고 일부러 소리를 내고 그랬었죠. (웃음) 그러니 어떻게 웃음이 터지지 않을 수가 있었겠어요. 즐거웠어요.”
한국경제TV 최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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