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고 도도할 것 같았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쎈 언니일 것 같았다. 짙은 아이라인을 그리고 무표정으로 앉아있는 디자이너 계한희(27)의 첫인상은 그랬다. 더구나 포스 좀 풍긴다고 하는 그룹 빅뱅 멤버 지드래곤, 모델이자 배우 이수혁과 ‘절친’(절친한 친구)이라고 하니 추측은 확신에 가까웠다.
하지만 확신인 줄 알았던 추측은 편견이었다. 10월 어느 날 서울 신사동에서 만난 계한희는 물컹물컹한 국내산 두부 같았다. 외제차를 탈 것 같은 외모로 국내산 경차를 타고, 느릿느릿한 속도로 하고 싶은 말을 차분히 이어나가다 민망한 듯이 “뭐 그런 거?”라며 소녀 같은 미소를 짓는다. 반전매력이 있는 사람이다.
계한희는 9월 뉴욕 링컨센터 더 스테이지에서 개최된 컨셉코리아 S/S 2014에 참석해 ‘젊은이들의 아픈 상처 치유’를 주제로 컬렉션을 선보였다. 계한희 역시 젊은이로서 아픈 상처가 있지 않느냐고 묻자 “상처요? 그런 경험 없어요. 그냥 관심가진 거예요”라며 해맑게 웃는다.
▲ ‘프런코’ 올스타전 출연제의 거절...“저는 이미 디자이너니까요”아직도 젊지만 자신의 브랜드 KYE를 운영하는 어엿한 디자이너인 계한희가 더욱 새내기 디자이너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 모습을 On Style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시즌1’(이하 ‘프런코’)에서 볼 수 있다. ‘프런코’는 차세대 디자이너를 뽑는 서바이벌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계한희는 ‘프런코’에서 처음으로 대한민국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당시 개성 있고 독특한 디자인을 보여준 계한희는 ‘프런코’ 첫 회에 탈락해 대중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프런코’ MC 이소라도 “계한희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주기 전에 탈락해 아쉽다”고 말했을 정도였으니 계한희 본인도 아쉬웠을 것 같다. 다시 한 번 출연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을까. “‘프런코’는 재미로 나가봤던 거예요. 사실 다시 나오라고 연락이 왔었어요. 올스타전에 나오라고 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았어요. 물론 컬렉션 스케줄이랑도 안 맞았고요.”
그는 자신은 이미 디자이너가 됐으니 학생들한테 양보해야 한다고 착한 마음씨를 드러냈다. 그렇다면 이제 디자이너가 됐으니 심사위원도 가능하지 않을까. 반전매력이 있는 계한희의 심사스타일은 천사일까, 악마일까. “솔직한 스타일이어서 괜찮으면 ‘괜찮다’, 별로면 ‘별로다’라고 할 것 같아요. 일부러 나쁘게도, 좋게도 이야기할 것 같지는 않아요. 너무 답이 없으면 차라리 좋게 얘기할래요.” 차라리 좋게 얘기한다니, 의외로 순한 성격이다.
▲ 일도, 사랑도 놓치지 않는 ‘똑순이’계한희는 영국 유명 패션스쿨인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예술대학과 대학원에 최연소로 입학하고 졸업했다. 졸업 컬렉션인 ‘the body collection(더 보디 컬렉션)’을 보고 일본의 편집매장에서 ‘입점하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 우연히 데뷔하게 됐다. 같은 컬렉션으로 디자이너 제레미 스캇과 콜래보래이션을 하기도 했다. 남들과 다른 그만의 비결이나 매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저는 무엇을 하고 싶으면 계획 같은 것을 짜고 나서 확 밀어붙이는 스타일이에요. (대학을 다닐 때) 친구들이 ‘휴학할까?’ ‘다른 거 뭐 할까?’ 같은 고민을 하는데 저는 그런 고민 없이 확확 해나가서 이렇게 된 것 같아요.”
대학생이라면 한번쯤은 휴학을 해보고 싶기 마련이다. 대학시절로 되돌아가면 보통 친구들처럼 휴학도 해보고 싶지 않느냐는 물음에 고개를 저으며 “그럼 지금처럼 안 됐을 것 같아요. 일부러 (휴학을) 안했던 게, 한번 (공부를) 할 때 인텐스(intense)하게 해야 될 것 같았어요”라고 말한다.
그의 또 다른 비결은 ‘도전정신’. 계한희는 기회가 있으면 무조건 “한다”고 말하고 “어떡하지”라고 걱정한다고. 요즘에는 지난 시즌부터 시작한 KYE의 뉴욕 컬렉션을 잘 꾸려나가고 싶다고 한다. “지난해 컨셉코리아를 했을 때보다 이번에 수요가 2배가 뛰었고, 계속 올라가고 있어요. 하하.”
그의 말을 듣고 있다 보니 아무리 일이 좋다지만
한창 예쁠 나이에 일에만 몰두한 것 같았다. 20대라면 연애도 열심히 해야 할 나이인데 말이다. “연애요? 하고 있어요. 장거리 연애지만 요즘에는 스마트 폰이 있어서 괜찮아요.” 역시 반전이 있다.
▲ “다른 일을 했으면 좀 더 편했겠지만, 후회는 안 해요”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하다보면 ‘내가 이걸 왜 시작해가지고’라며 한탄할 때가 있다. 패션만 바라보고 쉴 틈 없이 달려온 계한희도 마찬가지였다. 힘들 때는 없느냐는 질문에 “매 순간?”이라며 장난을 치던 그는 옷을 빼고 다른 부분은 정말 피곤하고 싫은 일이 많다고 고백한다. 순수하게 옷이 좋아서 시작했는데, 비즈니스도 신경 써야하고, 개인적인 욕구충족도 해야 되기 때문.
“상업적인 것과 욕구를 밸런스 업(balance up) 하려면 굉장히 피곤한 부분이 많아요. 그래도 (컨셉코리아처럼) 힘든 디자이너들을 도와주는 기관이 있어서 스스로 힘들다가도 기회가 생기고...왔다 갔다 해요. ‘패션 쪽 말고 다른 것을 했으면 좀 더 편하겠다’고 생각한 적은 있지만 사실 (패션을 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어요.”
이어 그는 패션 비즈니스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을 우려했다.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이 브랜드를 유지하면서 수익을 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많은 디자이너들이 상업적인 부분과 타협해서 저가의 옷을 생산하고, 가격대를 낮추다보니까 옷의 퀄리티가 떨어지고 디자인도 밋밋해진다고 한다. “안타까운데 국내에는 그런 일이 좀 있어요. 그래도 컨셉코리아 같은 국가사업들을 잘 이용하고, 계획을 잘 짜서 스마트하게 하면 얼마든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힘들지만 그래도 디자이너가 자신한테 잘 맞는 것 같다는 그는 브랜드 KYE를 3년째 이끌어가고 있다. 3년 동안 정말 많은 일을 하면서 쌓인 정신적, 체력적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돌출구가 있으면 살짝 따라 해보고 싶었다. 그런 바람도 잠시, 계한희는 그 부분이 제일 큰 숙제라며 오히려 “뭘 하면 좋을까요”라고 반문한다.
숙면을 하거나 클럽에서 신나게 춤을 추는 것을 추천했지만 계한희가 찾는 답은 아니었다. “잠이 최고죠. 그런데 잠은 잘수록 늘어나지 않나요? 행사장을 가기는 하지만 클럽 같은 곳이나 유흥을 즐기지 않아요. 피곤해서 못 놀아요. 소소한 것에서 기쁨을 찾으려고 해요.”
(사진=KYE)
한국경제TV 블루뉴스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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