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은 인터뷰를 통해 무엇을 읽고 싶어할까?
‘토크 콘서트-민수야 놀자’를 앞둔 배우 최민수의 인터뷰를 쓰기에 앞서 정말 원론적인 질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가장 이상적인 인터뷰란 인터뷰 대상에 대한 기자의 생각을 알리는 것이 아니리라. 읽는 사람 또한 그 사람을 직접 만난 듯한 느낌을 줘야 최선의 인터뷰일 것이다.
터프가이의 원조, 기인(奇人), 공처가(?) 등 그를 생각하면 다양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지만 그 이미지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최민수에게는 있었다. 오랜 시간 생각해 본 결과 그것은 ‘가식 없음’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최민수에게는 가식이 없었다. 서울 홍대 근방 그의 아지트에서 진행된 3시간 동안의 만남은 연예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포장용’ 액션이 전혀 없는 기묘한 인터뷰였다. 질문지도 없었고, 망설이는 시간도 없었으며 쓰지 말라는 내용 또한 없었다.
그 인터뷰의 느낌을 최대한 전달하기 위해 최민수의 말을 가감없이 적는 방식을 택했다. 그는 이날 기자와의 사이에 커피 한 잔을 두고 자유롭게, 떠오르는 대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의 이야기는 인생 선배에게 듣는 재미있는 추억담이었다. 기자의 생각은 최소화하고, 그 특유의 말투는 최대한 살려서 인터뷰를 지면 중계한다.
1. 좋은 걸 너무 편히 얻는 건 싫다
홍대 근방 한 골목길에 있는 최민수의 아지트는 지하 1층이다. 들어가면 노란 빛의 은은한 조명과 남성미가 넘치는 인테리어, 최민수가 손수 작업한 가죽 공예품들을 볼 수 있다. 지면에서 전달하기 힘든 것은 향초에서 풍기는 듯한 묘한 냄새다.
들어가자마자 책상에 앉아 가죽 공예품에 망치질을 하고 있는 최민수의 뒷모습이 보였다. “전부 직접 만드신 건가 보다”라고 말을 건네자 최민수는 “진심으로 뭔가에 몰두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요?”라고 무심한 듯 대꾸했다. 두건을 쓰고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그는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화려한 문신이 새겨진 팔뚝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기자가 한참 연하인 만큼 최민수는 반말과 존대말을 섞어 인터뷰를 진행했다.
명함을 건네자 최민수는 “일 관계 때문에 만나는 건 아니다. 만나는 것 자체가 다 귀한 인연인데...”라고 어색한 듯이 말했다. 그러나 커피가 앞에 나오자 그는 대뜸 ‘산에 가서 살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청산유수로 꺼냈다. “캠핑도 너무 많이 했더니 못하겠더라. 좋은 걸 너무 편하게 얻는 것 같아서. 술도 그래서 끊었어요. 좋아하니까 오히려 끊게 되더라고.”
좋아하는 걸 끊으면 괴롭지 않으냐고 묻자 최민수는 “오히려 그러니까 그게 더 좋다는 걸 알겠다”며 “좋은 걸 당연하게 늘 먹고 즐기니까 그런 줄 모르는 거다”라고 깨달음(?)을 선사했다. 그는 2008년 억울하게 ‘노인 폭행사건’에 휘말려 곤욕을 치른 뒤(이 사건은 오히려 상대방쪽이 최민수를 모함한 것으로 판명나 최민수는 무혐의 처분됐다) 2009년 한동안 산에 들어가 은거생활을 했다.
최민수는 직접 페인트칠을 해 녹슨 쇠의 느낌이 나게 만들었다는 플라스틱 난로를 쳐다보며 “불이라는 건 말이야”라고 입을 열었다. “혼자 살 때 야외에서 보면 불만큼 대화가 잘 되는 게 없거든. 시간 가는 줄을 몰라요. 새벽 2시에서 4시 사이, 가장 추울 때 모닥불 앞에서 온기를 느끼면...그 때는 나도 술 한 잔을 해. 세상에 그렇게 아름다운 순간은 없어요.”
듣기만 해도 머릿속에 상상이 되는 멋진 풍경이었다. “새까만 하늘에 별이 총총하고 주위에는 아무도 없어. 가끔은 자리 털고 일어나서, 한 20m 뒤로 물러나 거기 내가 있다고 생각하고 쳐다보면 정말 아름다워. 특히 해가 뜨기 30분 전 새파란 하늘이 배경이면 최고의 ‘힐링’이 따로 없지. 그리고 나서 물티슈로 한 번 쓱 닦아 세수를 하고 일과 시작하는 거야.” 물티슈 세수라, 역시 ‘터프하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다.
2. 나 좋은 놈 아니거든?
그는 “사람들이 산에서 내려온 뒤부터 나를 좋아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서 “난 그게 무지하게 싫다”고 덧붙였다. 왜일까?
“난 좋은 놈이 아니거든. 난 그냥 나다운 놈이에요. 사람들은 꼭 착한 사람-나쁜 사람을 나누잖아. 사실은 착한 사람이 나쁜 짓도 할 수 있고, 정말 뭐처럼 나쁜 놈도 좋은 일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하는 면만 보고 싶은 거지.”
그는 그런 시각이 “부담스럽다”며 지독히 싫은 표정을 지었다. “산에서 오고 나서 나한테 ‘자유인’이라느니 뭐라느니. 그렇데 부르더라고. 부담스럽게.”
최민수는 그렇게 되고 나서부터 일거수일투족이 신경쓰여서 불편하다고 하면서도 이를 유쾌한 에피소드로 승화시켰다. “길을 가다 예쁜 여자가 있으면 눈이 가잖아. 당연한 거지?(웃음) 마누라하고 나는 친구 같이 지내서, ‘쟤 예쁘지 않냐?’라고 원래 그냥 물어봐. 그리고 한 대 맞고 말거든. 그런데 사회 인식이 무슨 ‘애처가’처럼 돼서 이제 예쁜 애를 봐도 눈알도 못 돌려.” 그는 이 지점에서 기자와 함께 폭소했다. “아니,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어? 이거 참.”
3. 24시간 죽음을 생각하면서 살아 봤어?
얘기는 다시 진지하게 흘러갔다. 최민수는 ‘죽음’이라는 무거운 키워드를 꺼냈다. 시작은 공전의 히트작이자 그의 대표작인 드라마 ‘모래시계’.
“‘모래시계’에서 죽는 장면을 찍을 때는 차라리 편안했어요. 왜? 완전히 태수한테 빙의해서 ‘죽으면 편하겠다. 그 동안 힘들었다’는 생각만 드는 거지. 물론 워낙 화제작이다 보니 기자들이 그 촬영 때 엄청나게 몰려와서 내 죽음이 관광(?) 대상이 된 것 같긴 했어. 완전 난감.(웃음) 리허설만 찍고 본 촬영은 기자들 나가고 했는데, 스태프들뿐 아니라 감독님까지 그게 실제 교수형이라고 그 순간에는 믿었어. 그만큼 몰입해서 촬영을 해서, ‘컷’ 소리조차 다 끝났는데도 안 나오더라고.”
그가 그렇게 실감나게 죽음을 표현할 수 있었던 데는 배경이 있었다. 다름아닌 중학교 때 받은 ‘사형선고’. “중학교 때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얘기를 들었어. 부정맥 때문에 심장이 뛰다가 3분 정도 갑자기 멈춰버리는 그런 병이에요. 외국에서는 그런 병이 있는 사람들이 ‘니트로글리세린’을 혀 밑에 넣게 돼 있대. 그런 사람들은 가슴에 노란 세모 모양 딱지를 붙이는데, 쓰러진 사람이 있으면 주머니를 뒤져서 니트로글리세린을 찾아 혀 밑에 넣어야 한다더라고. 내가 그런 사람이었던 거지.”
그는 대학 시절 같은 병을 앓던 친구에게 보낸 편지를 기자에게 읽어주었다. 그 친구가 지금까지 최민수의 편지를 간직하고 있었으며, 다시 그에게 돌려주었다는 것. 손글씨로 종이 몇 장을 빽빽이 채운 편지에는 ‘우리는 영광의 주막에서 새벽까지 먹고 마셨다.’ ‘축복받은 자들은 모두 떠나고 이제 화로에는 뜨거운 잿더미만이 남았다’ ‘고달픈 밤에 평안히, 네 믿음을 내게 맡기고 잠들어라’ ‘마른 하늘에 비치는 별빛이 차가운 법이다’ 등등 탐미적이고 시적인 문구가 가득했다. 20대 초반에 친구에게 썼다고 믿기 어려운 문장들이었다.
희망과 절망이 모두 편지에 녹아 있는 것 같다고 감상을 말하자 그는 “그 때는 늘 죽음이 눈앞에 있었다. 24시간 죽음을 생각해야 했다”고 답했다. “일상이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었거든. 남들이 보면 ‘X라이’ 같았겠지만, 우리끼리는 저런 얘기가 통했어.”
그는 처음에 얘기했던 “좋은 걸 너무 편히 얻으면 감사할 줄 모른다”는 얘기로 잠시 돌아갔다. “죽고 사는 것이 어릴 땐 공포였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누구나 죽게 되는데, 죽음을 얘기할 수 있는 건 큰 축복이야. 하루 24시간씩, 그 정해진 시간만큼 내 영혼이 형성돼 간다는 생각이 들거든.”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에 더욱 감사한다는 그의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4. 내 마음 속 ‘샤먼’, 이제는 콘트롤이 좀 되네
그는 ‘모래시계’의 오래 전 촬영 비화를 들려줬다. 태수(최민수)가 사형장에 끌려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늘을 돌아보는 장면을 사실은 죽는 장면 이후에 찍었다는 것.
“한 4일 동안 그 장면이 마음에 안 들어와서 못 찍었어. 어떤 감정인지 모르겠더라고. 그런데 4일째 되는 밤에 잠을 못 자다가 힌트가 잡혔어.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 맑고 순수한 눈동자를 가지거든. 죽음의 길을 가지만, 그걸 새로운 탄생의 순간처럼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죽음도 축복이라는 그의 생각과 맞아떨어지는 지점이었다.
“그 때 돌아본 하늘은 처음 태어나 보는 세상처럼 아름다워 보였을 거야. 태수는 분명 ‘어떻게 사람이란 건 이렇게 바보스럽지? 이렇게 가까이 있었는데 몰랐구나’라고 느꼈겠지. 죽음 직전에야 이 아름다운 세상이 보였던 거야.”
그는 “‘모래시계’ 때는 정말 깊이 빠져 있었다”며 그의 콘서트 뮤직 테마이기도 한 ‘샤먼록’에 대한 말을 꺼냈다. “끝나고 3개월 뒤까지 거의 자폐증이었어요. 술 먹다가도 손이 떨리고 거의 잠도 못 자고. 근데 3개월쯤 지나서 어느 술집에서 뭐가 확 올라와서 화장실에 갔는데, 한 20분을 어린 애처럼 꺼이꺼이 하면서 엄청 울었어. 그러고 나니까 속이 편안해지더라. ‘이제 태수가 갔구나’ 싶어서 내가 살겠더라. 그 전까지는 진짜 힘이 들었죠.” 이 경험을 그는 “샤먼적인 존재를 느꼈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년간의 연기자 생활로 ‘샤먼적인 존재’도 어느 정도 콘트롤이 가능하다고. “그 때가 가장 정점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필요할 때 쉭 나타났다가, 필요 없으면 쏙 집어넣고. 그게 가능해졌지. 옛날에는 이 ‘샤먼적인 존재’가 얼마나 예민했는지 촬영현장에서 밥도 못 먹었어요. 이틀 촬영하면 그 동안 그냥 굶었죠. ‘유령’ 찍을 때도 4개월 간 잠수함 세트에서 지냈는데, 스태프들 촬영하러 가면 그냥 창고 안에만 박혀 있고 그랬어요. 이제는 안 그렇지.”
5. 나의 음악, ‘샤먼록’이란
그가 ‘샤먼적인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도중 그의 콘서트가 가진 테마인 ‘샤먼록’에 대해 물었다. ‘샤먼록’이란 최민수가 스스로 만든 노래의 장르이다. 그는 이 이름에 애정을 갖고 있는 듯이 보였다.
“내가 내 음악에 외국 장르 이름들을 갖다 쓰지는 못하겠더라고. 근데 우리한텐 샤머니즘, 토테미즘이 있잖아. 우리 가사에는 뺀질뺀질한 기색이 전혀 없어요. 내 나름대로 살아온 세상을 표현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샤먼록’이라는 이름이 지어졌어.” 최민수의 자작곡이 다수인 이번 콘서트에선 그가 일기 쓰듯 적은 노트의 내용이 상당 부분 가사로 반영된다.
이어서 최민수는 자신이 생각하는 예술과 엔터테인먼트의 정의를 풀어놓았다.
“아주 옛날에도 음악을 연주하거나 노래부르길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겠지. 그리고 그 시간이 좋아서 열 명 스무 명씩 모이는 사람들이 있었을 거야. 그런데 어떤 머리 좋은 또 다른 사람이 이게 장사되겠다 싶어서 ‘너, 밥 사 줄 테니 저기 가서 불러라’ 하면서, 돈 받고 관객을 부른 게 엔터테인먼트 사업이 됐겠지. 부르는 사람은 엔터테인먼트를 위해서 노래한 거 아냐. 하다 보니 엔터테인먼트가 된 거지.” 엔터테인먼트가 그 무엇보다 우선이 되는 현실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예술이란, 관객과 만나서 서로 마음의 성찰을 하는 거야. 그게 구조적으로 너무 쉽게 접근되다 보니 좀 진정성이 없긴 해.” 그는 ‘모나리자를 보고 싶은 사람’의 일화로 예술을 즐기는 데 진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했다.
“만일 ‘모나리자’가 정말 직접 보고 싶으면 유럽까지 가야지. 그런데 누가 요즘 가냐고. 다들 ‘야, 네 눈으로 봐 봤자 그림도 조그마한데’ ‘요새 트렌드에 맞춰 살아’라는 말만 들을 거야. 근데 그 사람이 몇 년간 월급을 조금씩 모아서 결국 시간도 내서, 말도 안 통하는 곳에 가서 빵 한 조각 먹으면서 겨우겨우 찾아가서 그 원하던 예술을 즐겼다고 생각해 봐. 그 느낌은 돈 많아서 전용기 타고 유럽에 가서 그 그림 본 사람이나, 인터넷으로 그 그림을 본 사람하고는 많이 다르지 않겠어?”
`최민수 콘서트에 가는 이들 또한 그와 같은 생각으로 교감하기 위해 현장을 찾아 한 마음으로 즐기려 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묻자 흥이 난 그는 즉석에서 기타를 꺼내 들고 콘서트에서 선보일 두 곡을 연달아 부르는 매너까지 발휘했다.
6. 아내, 자식들에게는 딱 한 가지...‘무조건 친구처럼’
이야기가 길어지는 중 아내 강주은 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최민수는 “네, 마님”이라며 순식간에 ‘돌쇠’가 되어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인터뷰를 한다고?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마라”라고 근엄하게 말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네”라고 고분고분히 대답만 하던 최민수는 “완전히 잘못 잡혔다”며 “내가 아내를 만나기 전에 목소리부터 들었는데, 목소리가 기막히게 좋기에 깜빡 속았지...”라며 엄살 섞인 표정을 지었다.
그는 촬영이 없을 때는 오후 6시 정도까지 작업실을 지키다가 아내가 퇴근할 시간이 되면 꼭 맞춰서 집에 돌아간다고. 그가 아내에게 용돈 30만원을 받아 생활하며, 평소 ‘마님’이라고 부르면서 꼼짝 못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졌다.
최민수는 전화를 끊고는 “아내에게도 친구처럼, 자식들에게도 친구처럼 사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을 밝혔다. “애들한테 뭔가 가르치려고 하지 않아. 그냥 철 덜 든 똑같은 친구처럼 지내고, 아내한테도 그렇게 친구처럼 지내는 게 딱 좋지. 아까도 말했지만, 난 별로 좋은 놈이 아니라서 가르쳐 줄 게 없거든.(웃음)”
인터뷰가 끝나고 가는 길, 이전에 연락을 주고받은 바 있는 아내 강주은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우리 남편을 인터뷰해줘서 고맙다”며 특유의 시원시원함으로 인사를 건넸다. “최민수 씨가 기분이 좋으셔서 기타를 꺼내들고 노래까지 불렀다”고 말하자 강주은 씨는 “어휴, 집에서 못 부르게 하니까 이제 밖에서 그렇게 노래를 부른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면서도 “기사는 잘 부탁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20대까지도 하고 싶은 말도 없고 말 하는 법도 잘 몰랐다는 최민수는 수다스러웠다. ’음악 형식을 빌려 쓴 일기‘라는 그의 노래들이 콘서트에서 그의 마음을 ’진심‘으로 대변해 줄 것이라는 확신이 가득 들었다. 29일부터 이틀 동안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민수야 놀자` 콘서트를 여는 최민수는 7월 20일에는 부산 BEXCO로 무대를 옮겨 투어를 이어간다.
한국경제TV 이예은 기자
yeeuney@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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