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삼성전자 쇼크’로 채권시장에 이어 증시에서도 외국인이 매도세로 돌아섰다. 아베노믹스가 흔들리면 일본으로 이탈됐던 외국자금이 환류돼 주가가 본격적으로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채 가시기 전 발생한 상황인 만큼 최근 매도세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현 시점에서 궁금해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외국인이 매도세로 돌아선 배경과, 다른 하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지속성 여부다. 이 문제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글로벌 자금규모와 국제자금흐름 구조재편, 한국 경제에 대한 해외시각, 국내 증시의 투자매력도 등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전체적인 글로벌 자금규모가 줄어들 경우 그동안 많이 유입되고 수익이 났던 국가에서 우선적으로 자금을 회수한다. 특히 글로벌 투자비중이 높은 선진국에서 자금이 줄어들 경우 이 현상은 신흥국에서 심하게 나타난다. 2008년 9월 리먼 브러더스 사태 직후 반사이익까지 기대했던 한국 등 아시아 신흥국에서 대거 자금이 이탈됐던 때가 전형적인 예다.
앞으로 출구전략이 추진될 경우 글로벌 정책자금 공급은 줄어들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까지 전체적인 규모에 있어서는 큰 변화가 없다. 오히려 금융위기 과정에서 퇴장됐던 통화가 시중에 방출되고 통화유통속도, 통화승수 등 경제활력지표가 꾸준히 개선되고 있어 증시주변 자금은 늘고 있다.
절대규모는 줄지 않더라도 국제자금흐름 구조가 재편되면 그동안 많이 유입됐던 국가에서는 자금이탈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이른바 `투자기상도상의 조정`이다. 여러 결정요인 가운데 단기적으로는 투자대상국별 상대수익률과 중장기적으로 핵심 성장동인이 바뀔 때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
국별 수익률에 있어 올들어 상대적으로 덜 오른 증시의 매력이 부각돼 왔다. 특히 아베노믹스 추진 이후 체리 피킹 투자매력(주가가 적정수준보다 떨어지면 체리가 무르익어 따 먹으면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것에 비유해 생긴 용어)이 부각됐던 일본 증시가 크게 올랐다. 벌써부터 이들 국가가 거품이 우려되는 단계에서는 한국 증시가 매력적일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추진 여부와 관계없이 출구전략 추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선진국 시장금리가 오르는 것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위기 과정에서 신흥국에 유입된 외국자금이 캐리자금 성격이 강한 점을 감안하면 이 자금을 밀어냈던 투자국의 대표금리가 오르면 이탈될 소지는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선진국 금리상승으로 신흥국 자금이탈 조짐이 ‘위기 확산형’으로 악화될 것인가 아니면 ‘위기 축소형’으로 수렴될 것인가는 두 가지 요인에 결정된다. 하나는 레버리지 비율(증거금대비 총투자금액)이 얼마나 높으냐와, 다른 하나는 투자분포도가 얼마나 넓으냐 하는 글로벌 정도에 좌우된다.
이 두 지표가 높으면 높을수록 위기 확산형으로 악화되고 디레버리지 대상국에서는 위기 발생국보다 더 큰 ‘나비 효과’가 발생한다. 다행히 ‘볼커 룰’로 상징되는 위기재발 방지노력으로 미국 등 선진국 금융사들의 두 지표는 개선돼 캐리자금 환류시 신흥국에게 더 충격을 주는 ‘나비 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한국 경제에 대한 해외시각에도 특이할 만한 변화는 없다. CDS(크레딧 디폴트 스와프) 프리미엄과 외평채 가산금리 등이 작년말에 비해 소폭 상승하고 있지만 일상적인 변화다. 굳이 상승배경을 따진다면 우리 경제에 문제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출구전략 추진 우려가 불거진 탓이 크다.
해외시각에 변화를 예상해 본다면 국가신용등급에 있어서는 지난 2년 동안 돋보이던 매력은 다소 줄어들고 있으나 대표기업들의 매력은 더 커질 수 있다. 아베노믹스 회의론이 확산되면서 과도했던 엔저가 제 자리를 돌아오면 대표기업들이 우리 경제의 해외시각을 개선하고 국가신용등급을 보완하는 효과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해외시각과는 별도로 포트폴리리오상의 투자매력도가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외국인들이 국내 증시에 투자할 때 관행적으로 중시하는 몇 가지 지표로 판단해 보면 원유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특성상 유가가 100달러 넘으면 일단 한국투자를 신중하게 결정한다. 최근 유가는 90달러 내외수준까지 떨어지고 있다.
한국 투자시 환차익 발생여부도 중요한 요인이다. 우리의 경우 원.달러 환율이 1070원 밑으로 떨어지면 적정환율 수준을 끌어내릴 수 있는 펀더멘털 요인이 없다면 환차익 소지가 줄었다고 판단한다. 올 1월 중순에는 원.달러 환율이 1050원 내외까지 급락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1100원 이상에서 움직여 환차익이 기대되는 수준이다.
최악의 경우 삼성전자 쇼크로 외국인 자금이 대거 이탈돼 일부에서 우려하는 위기설이 가시화될 것인가 여부다. 특정국가에서 위기가 발생할 수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모리스 골드스타인의 진단지표가 자주 활용된다. 이 기준대로 라면 단기투기성 자금의 이탈 여부는 △자산인플레 정도 △유입된 외국자금의 건전도 등으로 평가된다. 이중 유입된 외국자금의 건전도는 순직접투자와 경상수지 합계액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중장기 위기진단지표는 대상국의 △해외자금 조달능력 △국내저축능력으로 평가한다. 특히 단기 위기진단지표가 악화될 경우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우리도 경험한 것처럼 대상국의 해외자금 조달능력에 곧바로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민간부문의 저축률과 재정수지로 표현되는 국내저축능력이 더 중시된다.
이 지표를 활용해 우리의 위기 가능성을 진단해 본다면 대부분 지표가 97년 외환위기와 6년전 리먼 사태 때에 비해 개선된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위기 가능성이 낮게 나온다 하더라도 최근처럼 외국자금의 엑소더스 현상이 나타나면 위기론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외환위기 경험국들이 겪은 고질적인 ‘낙인 효과(stigma effect)’중의 하나다.
외국자금의 엑소더스에 대응방안으로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사전적 대응방안으로 외국자금 유출입 규제와 다른 하나는 내부역량 강화방안으로 외환보유액 확충, 외환보유액 활용능력 제고 등이다. 2010년 G20 서울정상회담 이후 추진되는 새로운 논의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대응방안이라 볼 수 있다.
각각의 대응방안에 대한 실효성을 검토해 보면 외국자금 유출입 규제는 기대만큼 효과가 크지 않으나 외환보유액을 확충하는 방안은 가장 효과적으로 나타났다. 외국자금이 레버리지 투자기법을 즐기는 헤지펀드 등이 주도되고 있는 상황에서 예기치 못한 사태로 증거금 부족현상이 발생하면 자본 회수국으로 선택된 신흥국에서 한꺼번에 자금이 이탈되기 때문이다. 리먼 사태와 유럽재정위기에 따른 외국자금 이탈이 전형적인 예다.
외환보유액을 얼마나 쌓는 것이 적정한가에 대해 가장 널리 사용되는 방안은 지표접근법이다. 이 방안도 보유동기에 따라 기도티와 캡티윤 모델, 국제통화기금(IMF) 방식으로 구분된다. 기준에 따라 우리 적정외환보유액을 따져보면 IMF방식에 의해서는 1,050억 달러, 기도티 모델로는 2,990억 달러, 캡티윤 모델로는 3,810억 달러 내외로 나온다.
적정외환보유액은 그때그때마다 달라지는 자본유출입 환경, 외채구조 등에 따라 달리 선택될 수 있다. 하지만 자본자유화가 진전되고 국제간 자금흐름이 각종 캐리자금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신흥국들은 기도티와 캡티윤 모델의 중간선에서 외환보유액을 쌓으려는 노력이 증대되고 있다. 우리 적정외환보유액은 3300억 달러 내외로 추정된다.
우리 외환보유액은 외환위기 이후 경상수지와 자본수지 흑자로 증가세가 지속돼 왔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외환보유액을 지속적으로 축적한 결과 지금은 3100억 달러가 넘는다. 외환보유액을 더 쌓아야 하는 요구가 있으나 외환보유에 따른 기회비용 등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적정수준에 와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각종 판단지표로 이처럼 위기 가능성은 낮게 나오는 데도 대외여건이 악화될 때마다 왜 우리는 위기설에서 자유롭지 못하는가 하는 점이다. 특정국에서 위기가 발생하면 세 가지 단계를 거친다. 우선 외화 등에 금이 가면서 유동성 위기가 발생한다. 유동성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처럼 담보관행이 일반화된 국가에서는 시스템 위기로 비화된다. 돈을 공급해 주는데 시스템 상에 문제가 생기면 실물경제 위기로 치닫는 것이 위기경험국의 전형적인 경로다.
우리는 외화유동성을 비교적 빨리 확보한 이후 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한 재평가, 잦은 정책변경, 정부 혹은 정책에 대한 신뢰부족, 정경유착에 따른 각종 부정부패 등으로 시스템 위기극복이 지연되는 과정에서 실물경기가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국제금융시장의 일반적인 평가다.
문제는 시스템 위기극복이 지연되면 될수록 각종 착시현상에 따른 투기요인이 커지는 대신 위기 불감증이 심화돼 왔다는 점이다. 경제여건이 뒤따르지 않는 고평가 요인이 삼성전자 쇼크와 같은 특정사태를 계기로 외자이탈로 연결될 경우 그동안 극복했다고 보는 외화유동성 위기에 대한 우려가 다시 높아진다.
최근처럼 특정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우리 사회 내에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위기설을 근본적으로 불식시켜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정확한 현실진단을 토대로 갈수록 지연되는 시스템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심국과 인접국과의 글로벌 공조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제다.
최근 외국인 매도세가 비교적 크지만 세계자금 규모와 한국경제 해외시각 등과 같은 핵심요인에 있어서는 큰 변화는 없다. 일부에서 우려하는 `한국 증시를 본격적으로 떠나가는 신호`는 아니며, 하이먼-민스키 리스크 이론대로 어느 날 갑자기 주가가 급락할 가능성은 적다는 의미다. ‘삼성전자 쇼크’만 가신다면 외국인 매도세는 진정될 것으로 기대된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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