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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 '최강희 황태자'가 축구팬을 울리는 이유‥'한국 축구'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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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9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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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국, `최강희 황태자`가 축구팬을 울리는 이유‥`한국 축구`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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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2013년 6월 5일 레바논전을 잊지 못할 것이다.

    주전선수가 모두 빠진 레바논과의 경기에서 큰 점수차는 고사하고 졸전으로 비겼기 때문이다.



    5일 레바논에서 열린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최종예선 6차전에서 대표팀은 레바논과 1-1로 비겼다.

    졸전의 이유를 딱히 정하기 어렵겠지만, 수차례 득점 기회를 살리지 못한 선발 원톱 이동국의 골 결정력에 대한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이동국은 전반 9분 김남일이 수비 뒷공간으로 떨궈준 찬스를 슈팅으로 연결했지만 골키퍼의 선방에 걸렸다. 그러나 전반 막판 완벽한 찬스에서 때린 슈팅이 빗나가며 크게 흔들렸다.

    이청용과 김보경이 만들어준 완벽한 일대일 찬스에서 이동국의 슈팅은 크로스바 위로 훌쩍 벗어났다.

    후반 역시 이렇다할 찬스를 못잡고 잔뜩 위축된 모습이었다. 후반 35분에는 곽태휘의 헤딩 슈팅이 막힌 것을 다시 한번 왼발 슈팅으로 연결했지만 골대를 강타하고 말았다.

    경기 종료 직전 김치우의 프리킥 동점골이 터지지 않았다면 이동국은 패배의 막중한 책임을 져야 했을지도 모른다.


    `최강희 황태자`로 불리는 이동국.

    최 감독의 무한신뢰를 받는 이동국의 이날 플레이는 분명 실망스러웠다. 대한민국 축구를 우려하는 축구팬들을 또한번 울린 셈이다.


    2009년 전북 최강희 감독은 방황하던 이동국을 전북에 데려오면서 두 사람의 끈끈한 인연이 싹트였다.

    2008년 여름 1년 6개월 동안 EPL, 즉 영국 프리미어리그 미들즈브러 생활을 접고, K-리그로 복귀한 이동국은 성남으로부터 결별 통보를 받는다.

    EPL 정규리그에서 한골도 못 넣고 짐을 싸서 국내에 돌아왔지만 그를 받아주는 국내 프로축구팀은 없었다.

    한때 한국 축구를 풍미했던 이동국의 위상도 한없이 추락한 상황. 이동국은 선수 생활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2002년 한-일월드컵 낙마와 2006년 독일월드컵 직전 오른쪽 무릎 전방 십자인대 수술로 시련을 겪은 이동국의 방황이 불가피했다.


    <사진 = 인터넷 게시판>

    이 때, 이동국에게 전북 구단에서 새로운 길을 터준 사람이 바로 최강희 감독이다. 2009년 2011년 전북의 K-리그 우승을 함께 누렸다.

    지난해 2월 최강희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뒤 이동국은 A매치에 모두 선발 출격하며 부동의 중앙 공격수로 자리잡았다.

    조광래 감독 시절 사실상 대표팀과의 인연이 끊어진 이동국은 `최강희 황태자`로 불리며 날개를 단 셈이다.


    <사진 = 방송캡쳐>

    이동국은 올 초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해 최강희 감독과의 끈끈한 인연을 과시했다.

    아내 이수진은 "중동에서 건물 한 채 값의 거액을 제시한 팀이 있었다. 하지만 이동국은 (최강희 감독과의 의리때문에) 거절했다"고 말할 정도다.


    대표팀의 선수 선발은 최강희 감독의 고유권한이다. 하지만, 모든 스포츠는 결과로 증명한다. 물론 지금 성적을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하지만, 한 명의 선수에 대한 무한 신뢰와 사랑이 팀 화합은 물론 경기결과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 까 축구관계자 및 축구팬들의 시선이 따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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