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재작년 11월께 서울 성북구 정릉동의 한 다가구주택에 전세를 얻었다가 보증금 7천만원을 날렸다.
집주인이 한집에 살기 때문에 깔끔하게 관리한다는 부동산 말을 믿고 계약했지만 은행빚만 7억5천만원이었던 주인은 그가 이사온지 한 달 만에 야반도주했다. 이 집은 작년 1월 경매에 들어가 두차례 유찰된 끝에 12월 감정가 6억9천600여만원의 약 64%인 4억4천500여만원에 낙찰됐지만 1년간 속을 끓였던 A씨는 배당 순위에서 밀려 보증금을 한 푼도 찾지 못했다.
주택경기 침체 장기화로 경매에 넘어가는 집이 급증한 가운데 A씨처럼 임차보증금을 못 돌려받고 쫓겨나는 세입자가 대폭 늘었다. 부동산경매정보사이트 부동산태인은 작년 수도권(서울·경기·인천)에서 경매에 부쳐져 채권자에게 배당 완료된 주택 1만3천694건 가운데 임차인이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한 사례가 42.4%인 5천804건에 달했다고 23일 밝혔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보증금을 되찾지 못해 평균 2년 정도 소요되는 법정다툼까지 거치고도 보증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못 받는 세입자가 10명 중 4명이 넘는 셈이다.
최근 5년간 경매에서 배당 완료된 주택(아파트·주상복합·다세대·연립·다가구·단독주택) 건수는 2008년 9천110건에서 작년 1만3천694건으로 50.3% 늘었다. 통상 법원이 강제경매를 결정하고 집이 경매되기까지는 4~5개월이 소요된다. 또 2~3번 유찰되면 3개월이 더 걸리고, 낙찰받은 사람이 대금을 납부하고 채권자들에게 배당까지 하려면 8~12개월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업체는 전했다.
짧게는 15개월, 길게는 20개월이다. 물론 물건이 낙찰되지 않으면 임차인을 비롯한 채권자들의 기다림은 기약 없이 길어진다. 아직 배당 결과가 나오지 않은 11~12월 물량까지 추가하면 임차보증금을 떼인 건수는 1천여건 이상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수도권 주택경매 물건 수는 2008년 2만8천417건에서 작년 6만1천287건으로 2배 늘었지만 동기간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은 90%에서 73.3%로 떨어져 집을 경매 처분해도 채권자가 손에 쥐는 몫은 작아졌다. 이에 따라 금융권 등 여타 채권자보다 상대적으로 약자인 임차인들의 고통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부동산태인 정대홍 팀장은 "집주인은 집을 뺏기고 채권자는 빚을 돌려받지 못해 누가 하나 이기는 사람이 없는 상황"이라면서 "정부가 돈 빌려서 집 사라는 경기부양책 대신 근본적인 해결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임차인은 계약하기 전 등기부등본을 철저히 확인하는 한편 소액보증금 최우선변제 한도까지만 보증금을 내고 나머지는 월세로 돌리는 반전세 계약도 검토할 만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