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꺄르르 이인의 러브 토크] 1회. 방자는 왜 춘향을 욕망했을까
“문제는.”내가 끼어들었다. “자기 자신조차도 그 필요성을 느끼지 않다가 광고를 보고 나서야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자기에게 필요한 거라면 자기가 먼저 알아야 하잖아. 그런데 광고가 먼저 가르쳐주고 있어. 자기 욕망의 출발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광고라면 나란 뭐야? 결국 나 자신은 껍데기일 뿐인 거잖아?”
이만교,『결혼은, 미친 짓이다』
내 욕망이 정말 내 것인지 긴가민가할 때가 많습니다. 별 필요가 없건만 TV 광고에 혹해 그것을 사기도 하고, 처음엔 별로 관심도 없었는데 남들이 좋아하니까 덩달아 어떤 연예인을 좋아하게 되기도 하지요. 이처럼 나의 욕망은 내 것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입니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의 말마따나 우리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합니다.
우리의 욕망이 우리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TV입니다. 대중매체는 사람들에게 어마어마한 입김을 불어넣죠. 영화 <트루맛쇼>에서 잘 담아내었듯 ‘TV의 욕망을 대중이 욕망하는 시대’입니다. 어느 식당이 맛있다고 하면 갑자기 군침이 돌면서 언젠가 거기서 꼭 먹어봐야겠다는 욕망에 붙들리죠. 그렇기에 권력은 사람들의 욕망을 주무르고자 늘 방송에 손을 뻗칩니다.
‘욕망의 사회성’은 대학과 학과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저마다 생김새가 다르고 재주도 다르고 사는 곳도 다를 텐데, 다들 몇몇 대학만을 욕망하며 그중에서도 법대와 경영대, 의대를 가려고 하죠.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사회가 그것들을 추켜세우니까. 남들이 다 욕망하기 때문에 나도 욕망하게 됩니다. 날 때부터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욕망은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사회를 알아가면서 생기고 자라납니다.
영화 <방자전>에서 방자는 왜 성춘향을 가지려고 했을까요? 방자가 연애술을 배우며 털어놓았듯“춘향이가 예뻐서라기보다는 이몽룡이 욕망하는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욕망하기 때문에 자신도 그 욕망에 빠져들죠. 다른 사람들이 성춘향을 욕망하지 않았다면 방자 또한 그녀를 탐내지 않았을 겁니다.
누군가를 좋아함은 이처럼 투명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을 왜 좋아하는지 곰곰 생각해본들 깔밋한 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서로 정을 주고 오순도순 사랑하고 살면 좋겠지요. 그러나 좋은 관계란 말처럼 호락호락하게 이뤄지지 않습니다.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람은 끊임없이 사회적 욕망에 사로잡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친구의 애인이나 대중매체에 나오는 연예인들의 사랑 놀음에 나의 상대를 견주면서 불만족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나는 내 자유와 행복을 찾아 스스로 움직인다”고 믿고 싶은 이에게 “당신의 욕망은 남들의 욕망”이라는 말처럼 김빠지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정신분석학은 내가 욕망하고 내가 고르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나의 선택은 내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진실은 언제나 거북하기 마련이죠. 조금 더 열린 마음을 가지면 ‘나의 욕망과 나’란 관계를 더 정확하게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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