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상호출자가 제한되는 대기업 집단이 지정된 지 24년이 지났습니다. 이 기간 중 재계는 두 번의 경제위기와 2,3세 경영체제로의 전환이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적지 않은 변화를 겪어야 했습니다. 재계의 변화상, 박병연기자가 짚어봤습니다.
<기자>
1987년 당시 30대 그룹에 이름을 올렸던 대기업 집단 중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절반이 채 안됩니다.
당시 재계서열 2위였던 대우그룹과 5위였던 쌍용그룹은 IMF 외환위기라는 파고를 넘지 못하고 좌초했습니다.
동아그룹과 한일합섬그룹, 기아차그룹, 한보그룹 등 당시 재계서열 20위권에 속해 있던 그룹 중 상당수도 파산했거나 다른 곳으로 매각됐습니다.
외환위기 이전 30대 그룹에 이름을 올렸던 곳 중에는 삼미그룹과 진로그룹, 뉴코아그룹, 해태그룹, 한라그룹 등 지금은 이름조차 낯선 그룹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습니다.
IMF 외환위기에 수많은 대기업들이 이처럼 맥없이 무너진 것은 전적으로 외부차입에 의존해 천문학적인 투자가 필요한 신산업에 무모하게 뛰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실타래처럼 얽힌 계열사간 상호지급보증과 부당 내부거래로 부실 계열사의 명을 연장시키다 결국 그룹 전체의 부실을 초래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이병기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
“그 당시는 많은 기업들이 부채를 얻어다 쓰고, 많은 투자와 고용을 통해 성장하던 시기였습니다. 부채구조조정이나 사업구종을 단행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을 단행할 제도적 장치가 당시에는 없었습니다."
이처럼 한순간에 무너진 대기업이 있었던 반면 30대 그룹에 새로 이름을 올리는 대기업도 생겨났습니다. GS와 현대중공업, STX, 하이닉스, CJ 등이 대표적입니다.
2,3세 경영체제로 전환하면서 계열분리된 대기업들이 신사업 분야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며, 재계 서열을 끌어올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최근 3년간의 변화는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난 2008년 678개였던 20대 그룹 계열사 수는 불과 3년 만에 922개로 36%나 늘어 났습니다.
대기업들의 몸집불리기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불과 몇 개월 만에 기업 순위가 뒤바뀌는 사례도 빈번해 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이들 대기업들의 현금유보율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 700%대에서 지난해에는 1200%대로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신성장 사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는 미루고 하도급 업체들을 계열사로 편입시켜 수직계열화하는 데 매진했기 때문입니다.
대기업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사업에 뛰어들어 시장질서를 혼탁하게 만드는 사례도 빈번했습니다.
재계 내부에서조차 신성장 사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없이 기술력있는 중소기업 몇곳을 인수하는 정도로는 산업 노후화를 막을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인터뷰> 임상혁 전국경제인연합회 상무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지난 20년 동안 산업구조에 변화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20년전 대표기업과 대표업종이 지금도 대표기업, 대표업종입니다. 그 사이에 새로운 업종의 부상이라고 한다면 무선통신기기과 디스플레이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건 우리산업과 경제의 노후화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80년대 이후 30여년간 주도 산업군에 큰 변화가 없었던 만큼, 산업의 노후화를 걱정할 때가 됐다는 것입니다.
대기업은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지 말고 보다 먼 미래에 투자하는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정부도 대기업의 일방적인 희생만 강요할 게 아니라 대기업이 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눈과 귀를 열어야 할 것입니다.
WOW-TV NEWS 박병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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