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광화문 금융위원회에 정장 차림의 남녀 대여섯명이 땅콩이 가득 담긴 쇼핑백을 들고 나타났다.
한 금융지주사의 임직원들이 대보름을 맞아 부럼으로 땅콩을 돌리겠다며 찾아온것이다.
금융위 청사에서 이런 식의 '인사' 행태는 낯익은 풍경이 된 지 오래다. 땅콩같은 가벼운 선물은 오히려 '애교'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여의도 금감원으로 눈길을 돌려도 사정은 비슷하다.
연말이면 'VIP 달력'을 들고 오는 금융회사 임직원들로 금감원 청사가 북적이곤한다.
인·허가권에서부터 검사권, 행정 제재권까지 가진 금융위와 금감원은 금융사의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양자간 경계의 벽이 허물어진 채 금융사 직원들이 '인사'를 하겠다고감독 당국의 사무실을 버젓이 활보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형사 사건 피고인이 법원 청사를 돌아다니며 판사 방에 들어가 인사랍시고 '떡'을 돌리는 장면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런 일이 2016년 대한민국의 금융당국에서는 현실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전조를 그린 '빅쇼트'란 영화가 최근 개봉돼 금융권 인사들사이에서는 제법 회자가 됐다.
금융당국의 젊은 공무원이 모기지 업자의 행사에 참석해 업무는 뒷전에 둔 채이직을 염두에 둔 투자은행 사람들 주변을 기웃거리는 장면이 나온다.
당국과 업계가 '한 식구'가 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경고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런 우려가 전혀 남의 나라 일 같지는 않다.
금융당국은 올해부터 민간 공직 파견 대상자 수를 크게 늘렸다. 유착 우려로 금융당국 간부들의 민간 회사 파견을 사실상 제한했는데 올해부터 고삐를 푼 것이다.
금융위 간부들이 감독 대상 기관인 증권사와 대기업 경영연구소 등지에서 일하고있다. 월급은 국가가 아니라 해당 회사가 부담한다. '○○ 장학생' 논란이 생기는이유다.
우리나라 금융 당국자들은 '우간다 얘기'만 하면 경기를 일으킨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매년 내는 국가경쟁력 평가의 금융 분야에서 우리나라가우간다 등 개도국보다 낮은 순위로 평가받고 있어서다.
우리나라의 경제 성숙도나 개방도에 비춰볼 때 이런 평가가 공정하지 않다고 우리 정부는 주장한다.
임종룡 위원장이 이끄는 금융당국은 담대한 '금융개혁'을 기치로 각종 개혁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개혁은 어쩌면 의식 못하는 낡은 관행, '땅콩과의 단호한 결별'에서부터 시작되어야 실현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cha@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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