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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금지곡'이었는데…100년 지나 외국인까지 떼창했다 [김수영의 디깅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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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금지곡'이었는데…100년 지나 외국인까지 떼창했다 [김수영의 디깅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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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26년 10월 1일. 서울 종로 단성사에서 영화 한 편이 개봉했습니다. 영화에는 3·1운동의 고문 후유증으로 미쳐버린 뒤 고향으로 돌아온 청년 '영진'이 등장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영진이 일본 순사에게 끌려 아리랑고개를 넘어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였던 당시, 영화가 끝난 후 객석은 눈물바다가 됐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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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제목은 '아리랑'. 춘사 나운규가 각본·감독·주연을 맡은 무성영화였습니다. 영화의 주제곡인 '아리랑'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로 시작하는 '본조 아리랑'의 시초였습니다. 현재 많은 이들이 가장 친숙하게 알고 있는 '아리랑'이죠.

    본래 아리랑은 딱 한 가지로 규정된 곡이 아닙니다. 오래전부터 지역별로 삶과 정서가 녹아든 다양한 아리랑이 존재했죠. 아리랑에 관한 문헌 기록은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조선 말기 활동한 미국 선교사 호머 헐버트(Homer B Hulbert)는 1896년 아리랑을 서양 음계로 채보해 해외에 소개했는데, 이것이 선율이 남아 있는 최초의 아리랑 기록 즉 '악보'로 여겨집니다.


    함경북도 회령 출신인 나운규는 어린 시절 철도 노동자들이 부르던 구슬픈 아리랑의 기억을 떠올렸고, 이를 재해석하고 민족의 정서를 담아내 새로운 '아리랑'을 탄생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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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만 24세의 젊은 독립운동가는 '아리랑'이라는 세 글자, 한과 슬픔이 깃든 선율로 민족정신을 일깨웠습니다. 전국에서 통용되던 '아리랑'이라는 단어가 지닌 힘은 대단했습니다. 영화는 대박이 났고, 주제곡 '아리랑'은 민족의 슬픔과 저항·희망을 상징하는 곡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영화가 끝난 후 '아리랑'을 목놓아 부르거나,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죠.

    '아리랑'을 타고 민족의식이 전국 각지에 뿌리내리자, 결국 일제 조선총독부는 1929년 '아리랑'을 금지곡으로 지정했습니다. 사실 개봉 당일부터 억압의 조짐은 있었습니다. 나운규가 영화 홍보 명목으로 광화문 일대 시가행진을 계획했고, 악대를 앞세워 '아리랑'을 부르며 영화 홍보 전단 1만부를 배포하려 했지만, 전량 압수당하면서 무산됐기 때문입니다. "불온한 노래 가사가 들어 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이처럼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혼과 얼이 서린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 '아리랑'이 최근에는 세계 각국에서 불리고 있는데요. 한국인들이 아닌, 외국인들의 입을 통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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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완전체로 컴백하며 앨범명을 '아리랑(ARIRANG)'으로 정하고 월드투어까지 '아리랑'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워 진행한 영향이 컸습니다. 방탄소년단은 수록곡 '바디 투 바디(Body to Body)'에 '아리랑' 소절을 그대로 삽입하기도 했는데요. 매 공연 스타디움을 꽉 채운 수만 명의 외국인들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라며 떼창을 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 도쿄돔에서 울려 퍼진 '아리랑'은 국내 팬들 사이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습니다. '아리랑'의 역사를 알고 있는 일본 팬들이 한국인 팬들에게 "이 곡을 불러도 될까요?"라고 조심스럽게 물어봤다는 사연까지 공개돼 주목받았습니다. 해당 공연의 실황은 오는 11월 28일 일본 TBS를 통해 방송될 예정입니다. '아리랑' 합창이 일본 전역에 울려퍼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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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장 밖에서도 '아리랑' 떼창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프랑스 파리의 공연장 인근 거리에서도 해외 팬들이 하나 되어 정확한 발음으로 '아리랑'을 불렀고, 미국 LA 공연에서는 '아리랑' 구절이 나오자 객석에서 태극기를 들어 보이는 이벤트를 진행했습니다. 팬들은 'A-RI-RANG / GO-GAE-RO / NEO-MO-GANDA', 'SIM-NIDO-MOT-GASEO / BAL-BBYEONG-NANDA' 등 한국어 가사를 발음 그대로 영어로 적어 연습했다고 합니다.

    한때는 금지곡이기도 했던 '아리랑'의 뼈아픈 역사는 그 빛을 잃지 않고 더 넓은 세상에서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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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만 최근에는 중국 동북 3성(지린·랴오닝·헤이룽장성)이 '아리랑'을 자국 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사실이 알려져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2022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는데요. 당시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인 바이두는 "'아리랑'은 조선족의 문화다. 조선족이 중국의 일원이기 때문에 그 문화는 전부 중국 문화의 일부다. 한국의 민요 역시 중국의 문화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었습니다. 중국의 문화공정이 도를 넘었다는 지적과 함께, 이들이 추후 '아리랑'을 유네스코 문화 세계 유산으로 등재할 가능성도 크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아리랑'은 인류무형문화유산에 해당하고, 이 경우 유네스코에 공동 신청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아리랑'은 한국이 2012년, 북한은 2014년에 각각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올렸습니다. '아리랑'은 2015년 국가무형유산으로도 지정되어 보존·전승되고 있는 명백한 '우리'의 문화임을 잊지 말아야 할 시기입니다.

    한편 중국 동북 3성에서 조선족 관련 전통문화를 국가급 비물질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사례는 아리랑 외에도 판소리, 추석, 김치 제작 기술, 씨름, 장고춤, 학춤, 농악무, 가야금, 전통 복식, 회갑례 등 총 23건(중복 포함)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이에 국가유산청은 "우리 무형유산의 정체성을 철저하게 지키겠다"며 "한민족의 무형유산 전승체계를 강화하고, 정부와 민간의 협력을 통해 세계에 대한민국의 무형유산을 널리 알리겠다"고 밝혔습니다. 그 일환으로 소외된 비지정 무형유산을 위한 '보전 목록 제도'를 신설하기로 했습니다. '보전 목록 제도'는 무형유산으로 지정하기 전 단계로, 국가무형유산이나 시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보전 가치가 큰 유산을 미리 발굴해 목록으로 만들겠다는 취지입니다. 아울러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지속 확대해 무형유산 정체성 보호에 관한 국제적 의제를 선점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음악·공연·영상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즐거움을 주는 시대. 숨은 이야기를 알면 더 보이고, 더 들립니다. 당신의 취향을 찾을 때까지 같이 깊게 파고드는 '디깅메이트'가 되어드리겠습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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