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에는 약속이 담겨 있다. 국밥집 간판 앞에서 우리는 따뜻한 국물을 기대하고, 소아과 문앞에서는 아픈 아이를 안고 망설임 없이 들어선다. ‘심리상담’이라는 이름도 그렇다. 한 사람이 자신의 가장 내밀한 아픔을 내어놓을 때, 그 마음 곁에 앉은 이가 충분히 배우고 수련했으며 자신의 판단과 개입에 책임을 질 것이라고 믿는다.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그 이름 뒤에 쌓인 배움과 시간, 전문성과 윤리적 책임을 믿는다는 뜻이다. 이름을 정한다는 건 그러한 믿음을 누구에게 맡길지 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 법의 탁자 위에 ‘심리상담’이라는 이름이 올라왔다. 그 둘레에는 현행 정신건강전문요원 네 직역에 법적으로 보장된 의자가 놓여 있다. 그러나 심리상담을 전공하고 수천 시간 수련을 거쳐 오랫동안 상담실을 지켜온 상담심리사의 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심리상담을 법 안으로 들이는 자리에, 정작 상담심리사를 위한 의자는 놓이지 않았다.
ADVERTISEMENT
보건복지부가 입법예고한 정신건강복지법 시행령 개정안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시행하는 ‘심리상담 및 재난심리지원 사업의 수행’을 정신건강전문요원 전체의 공통업무로 추가하려 한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정신건강임상심리사뿐 아니라 정신건강간호사, 정신건강사회복지사, 정신건강작업치료사 모두에게 심리상담이 법적 공통업무로 명시된다. 그러나 현행 정신건강전문요원 체계에는 상담심리사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물론 상담심리 분야의 학회들도 그동안 의견을 전달하고 관련 논의에 참여해왔다. 그러나 협의과정에 참여에 의견을 내는 것과 법률이 인정하는 당사자로서 정식 자리를 갖는 것은 다르다. 심리상담이 논의의 중심에 놓여 있는데도, 심리상담을 주된 전문영역으로 삼아 온 상담심리사에게는 법적으로 보장된 의자가 없는 셈이다.
ADVERTISEMENT
정부는 정신건강전문요원들이 2024년부터 심리상담 바우처 사업에 참여해왔기 때문에 실제 수행 중인 업무를 법령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2025년 12월 기준 이 사업에 등록된 제공인력 자격은 중복을 포함해 1만 368건이다. 이 가운데 한국상담심리학회 상담심리사는 25.2%, 한국상담학회 전문상담사 21.5%로 상담분야의 두 학회 자격이 절반 가까이 차지한다. 정신건강전문요원은 7.6%다.
상담심리사와 전문상담사는 이 사업의 핵심 제공인력으로 참여해 왔다.‘이미 이 사업에 참여해 왔다’는 것이 심리상담을 법정 업무로 명시할 근거가 된다면, 훨씬 큰 비중으로 참여해 온 심리상담 분야 전문가들의 법적 지위부터 마련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할 때는 이들의 전문성과 노동이 필요하지만, 정작 심리상담의 법적 자리를 정할 땐 그 전문가가 보이지 않는다.
심리상담은 마음씨 좋은 사람이 따뜻하게 이야기들어 주는 일과 다르다. 상담자는 한 시간 남짓한 대화 안에서 말 뒤에 놓인 고통과 위험을 알아차려야 한다.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기대는 마음을 다루고 돕고 싶은 마음이 오히려 상처가 되는 순간도 구별해야 한다. 자신의 개입이 한 사람의 삶에 미칠 영향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 이러한 역량은 선의만으로 생기지 않는다.
현재 심리상담 바우처 사업이 상담심리사 1급과 같은 민간자격을 전문인력으로 인정하기 위해 석사학위 취득 후 최소 2000시간 이상 또는 박사학위 취득 후 최소 1,000시간의 심리상담 수련이 필요하다. 2급 제공인력에도 최소 1000시간 이상의 수련을 요구한다. 아무리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따뜻하게 위로해주는 친구라도 우리가 그를 전문적인 상담자라는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ADVERTISEMENT
간호사와 사회복지사, 작업치료사가 정신건강 현장에서 건네 온 돌봄과 지원이 얼마나 귀한지 우리는 잘 안다. 임상심리사의 전문성 또한 정신건강서비스에 없어서는 안된다. 이들의 역할을 낮추거나 심리상담을 어느 한 직역이 독점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서로 다른 교육과 수련을 거친 모든 자격에 동일한 심리상담 업무를 일괄적으로 부여하려면, 자격의 명칭만이 아니라 심리상담에 필요한 구체적인 교육과 수련, 역량 기준이 먼저 확인되어야 한다. 협업은 서로의 전문성을 흐리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늦은 밤 축어록을 풀며 자신의 말과 판단을 되짚던 시간, 적지 않은 비용을 감당하며 수퍼비전을 받고 부족함과 마주한 시간, 고된 수련 시간에 눈물을 흘리다가도 숨을 고르고 다시 교육을 받으러 나섰던 시간이 상담심리사들에게 켜켜이 쌓여 있다. 이들에게 심리상담은 단순한 업무 명칭이나 행정 용어가 아니다. 오랫동안 배우고 수련해 온 전문영역이며 매일의 일이자 직업적 정체성이다. 현재 우리 학회에서 자격을 유지하고 있는 6,700여명의 상담심리사들은 대학과 학교, 기업과 공공기관, 지역사회와 국가 심리지원사업에서 오늘도 내담자를 만나고 있다. 다만 법에 그 이름이 없을 뿐이다.
ADVERTISEMENT
그러나 그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가 그렇게 오래, 그렇게 공들여 배운 것은 심리상담이 그만큼 무겁고 귀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 노력이 법 밖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우리는 이 질문을 멈추지 않으려 한다.
정부에 바라는 것은 복잡하지 않다. ‘심리상담’이라는 이름을 법에 올리고자 한다면, 그 일을 주된 전문영역이자 직업적 정체성으로 삼아 교육받고 수련해 온 사람들의 법적 자리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심리상담의 정의와 전문성 기준을 세우고 독립된 국가자격체계를 조속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 만일 정부가 심리상담을 정신건강전문요원 체계 안에서 다루고자 한다면, 상담심리사의 포함 가능성 역시 배제하지 않고 제도적 대안의 하나로 검토해야 한다. 어느 길을 택하든 상담심리사는 법 밖에 둔 채 ‘심리상담’이라는 업무만 법안으로 가져오는 방식은 온전한 해법이 될 수 없다.
ADVERTISEMENT
심리상담을 정하는 일이라면, 그 일을 해온 사람들에게도 물어봐 주었으면 한다. 그 탁자에 상담심리사를 위한 의자 하나를 놓아 주었으면 한다.
안수정 명지대 교수
(사)한국상담심리학회 국가자격추진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