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미군이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찾아내 사살한 작전에는 한 미국 소프트웨어 기업의 기술이 활용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서로 다른 정보기관에 흩어져 있던 데이터를 연결하고 분석해 빈 라덴의 은신처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이 기업의 소프트웨어가 사용됐다는 것입니다.
이 기업은 바로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입니다. 팔란티어는 실제 빈 라덴 추적 작전에 참여했는지 공식적으로 답변한 적은 없지만 월가에서는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입니다.
ADVERTISEMENT
미국 정보기관의 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로 출발한 팔란티어가 최근 월가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인공지능(AI)이 기존 소프트웨어 산업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한 지 불과 몇 개월 만입니다.
올해 초 월가에서는 이른바 ‘사스포칼립스(SaaSpocalypse)’ 공포가 불거졌습니다.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와 종말(Apocalypse)을 합친 말로, AI가 코드를 작성하고 기업 데이터를 분석하며 업무까지 자동화하면 기존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사업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였습니다.
ADVERTISEMENT
팔란티어도 이러한 우려에서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최근 시장의 평가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예상보다 강력한 실적이 확인된 데다, 기업들이 AI를 실제 업무에 도입하는 과정에서 팔란티어와 같은 플랫폼의 중요성이 오히려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입니다.
특히 골드만삭스는 8일 팔란티어의 투자의견을 ‘중립’에서 ‘매수’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AI 기술의 발전이 팔란티어의 경쟁력을 약화하기보다 새로운 성장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판단입니다.
이번 월가 아나토미에서는 정보기관의 데이터 분석 기술에서 출발한 팔란티어가 어떻게 기업용 AI 플랫폼으로 진화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기업들이 팔란티어에 높은 비용을 지불하는 이유와 AI 시대에 이 회사의 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는 배경, 그리고 높은 주가에 반영된 위험 요인까지 분석했습니다.
1. CIA 정보 분석 기술에서 출발한 팔란티어
팔란티어는 2003년 설립됐습니다. 창업을 주도한 인물은 페이팔 공동창업자인 피터 틸입니다.
틸은 페이팔에서 활용하던 금융사기 탐지 기술에 주목했습니다. 온라인 결제에서 사기 거래를 찾아내려면 서로 다른 계정과 거래 기록, 금융정보 사이의 관계를 분석해야 합니다. 틸은 이러한 기술을 테러 조직이나 범죄 네트워크를 추적하는 데도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당시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 정부가 정보기관 간 데이터 공유와 분석 역량을 강화하던 시기였습니다.
팔란티어는 서로 다른 기관과 시스템에 흩어진 정보를 연결해 분석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습니다. 이후 CIA와 연계된 벤처투자회사 인큐텔의 초기 투자를 받으며 미국 정보기관과 국방부를 중심으로 사업을 확대했습니다.
ADVERTISEMENT
대표적인 제품이 ‘고담(Gotham)’입니다. 고담은 인물과 조직, 사건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고 복잡한 네트워크를 파악하도록 지원하는 소프트웨어입니다.
팔란티어가 대중에게 알려진 계기는 2011년 빈 라덴 사살 작전이었습니다. 당시 팔란티어의 기술이 빈 라덴 추적 과정에 활용됐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회사가 공식 확인한 사실은 아니지만, 이후 '빈 라덴을 잡은 기술'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습니다.
팔란티어는 이후 민간기업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했습니다. 제조업과 금융, 에너지, 항공, 의료 등에서 기업 데이터를 연결하고 운영 효율을 높이는 소프트웨어를 공급하기 시작했습니다.
민간기업을 위한 대표적인 제품이 ‘파운드리(Foundry)’입니다. 2020년 뉴욕증권거래소에 직접상장했고, 2023년에는 생성형 AI를 기업 업무에 연결하는 ‘AIP(Artificial Intelligence Platform)’를 출시했습니다.
팔란티어의 역사는 정보기관의 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에서 기업 운영 플랫폼으로, 다시 AI 기반 운영 플랫폼으로 진화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기업들은 왜 팔란티어를 쓸까
팔란티어의 역할을 이해하기 위해 자동차 회사를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 회사는 미국에 공장 5개를 운영하고 있으며 부품 공급업체는 500개입니다. 이미 SAP와 오라클, 세일즈포스 등 다양한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요 반도체 공급업체의 생산에 문제가 생기면서 반도체 공급량이 갑자기 30% 줄었습니다.
ADVERTISEMENT
구매팀은 반도체가 얼마나 부족한지 확인해야 합니다. 생산팀은 어느 공장의 생산량을 줄여야 하는지 계산해야 합니다. 영업팀은 고객의 차량 인도 일정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해야 합니다. 재무팀은 생산 차질에 따른 손실을 추정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 모든 정보가 서로 다른 시스템에 저장돼 있다는 점입니다.
기업에 데이터가 부족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데이터는 충분하지만 이를 종합해 최적의 의사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ADVERTISEMENT
팔란티어는 이처럼 흩어진 데이터를 연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어떤 반도체가 어느 공장에서 사용되고, 어떤 차량에 들어가며, 어떤 고객 주문에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AI를 활용하면 여러 대응 방안도 비교할 수 있습니다. 수익성이 높은 SUV에 반도체를 우선 배정하거나, 특정 공장의 생산량을 줄이거나, 비용이 더 들더라도 다른 공급업체에서 부품을 구매하는 방안 등입니다.
각각의 선택이 생산량과 매출, 비용, 고객 납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팔란티어가 단순히 분석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업이 승인한 결정을 실제 생산관리 시스템이나 구매 시스템에 반영하도록 연결할 수도 있습니다.
기업들이 팔란티어를 구매하는 이유는 결국 데이터를 실제 의사결정과 업무 실행에 연결해 비용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3. 핵심 경쟁력은 ‘온톨로지’
이러한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기술이 ‘온톨로지(Ontology)’입니다.
온톨로지는 기업의 실제 운영 구조를 소프트웨어 안에 구현하는 기술이라고 이해하면 쉽습니다.
일반적인 데이터베이스에는 반도체 재고 1만 개, 공장 가동률 80%, SUV 주문량 3000대와 같은 숫자가 저장됩니다.
하지만 이 숫자들만으로는 서로 어떤 관계인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온톨로지는 데이터를 실제 사물과 관계로 연결합니다. A공장은 SUV를 생산하고, SUV 한 대에는 특정 반도체 4개가 필요하며, 해당 반도체는 B공급업체가 납품한다는 식입니다.
여기에 기업의 업무 규칙과 접근 권한까지 연결합니다.
생산 계획을 변경하려면 공장장의 승인이 필요하고, 일정 금액 이상의 부품을 구매하려면 재무책임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규칙 등이 포함됩니다.
이를 통해 AI는 단순히 질문에 답하는 것을 넘어 기업의 실제 업무를 지원할 수 있습니다.
팔란티어의 파운드리는 이러한 온톨로지를 구축하는 데 활용됩니다. AIP는 여기에 대규모언어모델과 AI 에이전트를 연결합니다. 아폴로(Apollo)는 소프트웨어를 다양한 클라우드와 자체 서버, 보안 환경 등에 배포하고 업데이트하는 역할을 합니다.
팔란티어의 경쟁력은 AI 모델 자체보다 AI가 기업의 데이터와 업무 규칙을 이해하고 실제 업무에 활용될 수 있도록 만드는 기반에 있다는 평가입니다.
4. 월가를 흔든 사스포칼립스
올해 초 소프트웨어 산업을 둘러싼 시장의 우려는 극에 달했습니다.
이른바 사스포칼립스입니다. 제프리스의 주식 트레이딩 데스크에서 만들어낸 것으로 알려진 이 표현은 AI가 기존 소프트웨어 산업을 대체할 수 있다는 공포를 의미합니다.
2026년 2월 앤트로픽의 AI 업무 도구 ‘클로드 코워크(Claude Cowork)’가 시장의 주목을 받으면서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주가가 급락했습니다. 관련 우려가 확산한 이틀 동안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시가총액 약 2850억달러가 사라졌습니다.
소프트웨어 업종 ETF인 IGV는 지난해 9월 고점 대비 3분의 1 넘게 하락하며 4월 저점을 기록했습니다.
시장의 우려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AI가 코드를 작성하고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할 수 있다면 기업들이 외부 소프트웨어를 구매할 필요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AI 에이전트가 직원의 업무를 대신하면 직원 수에 비례해 사용료를 받는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수익모델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팔란티어 역시 영향을 받았습니다.
팔란티어의 엔지니어들이 고객 데이터를 연결하고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업무를 AI가 수행할 수 있다면 고객들이 높은 비용을 지불할 이유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였습니다.
AI가 팔란티어의 성장 동력이면서 동시에 사업을 위협하는 기술이 된 것입니다.
여기에 높은 밸류에이션 부담까지 겹치면서 주가가 압박받았습니다.
5. 반전의 시작은 실적
하지만 실제 기업 실적은 시장의 우려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팔란티어의 2026년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85% 증가했습니다. 2분기에는 증가율이 93%로 더욱 높아졌습니다.
2분기 전체 매출은 약 19억3500만달러였습니다. 특히 미국 민간기업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49% 증가한 7억6400만달러를 기록했습니다. 미국 정부 매출도 90% 증가한 8억900만달러에 달했습니다.
신규 계약도 빠르게 증가했습니다.
팔란티어는 2분기 100만달러 이상 계약을 220건 체결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전체 계약금액(TCV)은 약 33억73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49% 증가했습니다. 미국 민간기업 계약금액은 153% 늘어난 약 21억3200만달러였습니다.
기존 고객들의 지출 확대도 두드러졌습니다.
순매출유지율(NRR)은 157%를 기록했습니다. 기존 고객 집단의 매출이 1년 전보다 57% 증가했다는 의미입니다.
미국 민간기업 부문의 잔여계약가치는 62억4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24% 증가했습니다. 미국 민간 고객 수도 35% 늘었습니다.
수익성도 시장 기대를 웃돌았습니다. 2분기 조정 주당순이익은 0.41달러로 시장 예상치 0.34달러를 상회했습니다.
팔란티어는 연간 매출 가이던스를 약 81억5000만달러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AI가 기존 소프트웨어를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팔란티어의 고객 지출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6. AI가 발전할수록 중요해지는 기업 보안
실적과 함께 시장이 주목하기 시작한 또 다른 요소는 기업의 보안과 데이터 통제 문제입니다.
AI가 코드를 작성할 수 있다는 사실과 AI가 만든 소프트웨어를 기업의 핵심 시스템에서 안전하게 운영할 수 있다는 사실은 다릅니다.
은행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AI가 고객의 소득과 신용점수를 분석하는 대출 심사 프로그램을 작성할 수 있다고 해도 이를 실제 업무에 적용하려면 여러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고객의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하고, 직원별 데이터 접근 권한도 설정해야 합니다. AI가 승인되지 않은 거래를 실행하지 못하도록 통제해야 하며, 의사결정 과정도 기록해야 합니다.
금융당국의 규제와 내부 감사 요구도 충족해야 합니다.
병원이나 국방기관처럼 민감한 데이터를 다루는 조직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더욱 중요합니다.
팔란티어는 정보기관과 국방 분야에서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 같은 영역에서 경쟁력을 구축해왔습니다.
온톨로지는 기업의 데이터와 업무 규칙, 권한 체계를 연결하고 AIP는 AI 모델을 이러한 운영 환경에 통합합니다.
물론 보안과 접근 통제 기능은 팔란티어만 제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세일즈포스, SAP 등도 관련 기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다만 AI가 발전할수록 검증된 기업용 소프트웨어 플랫폼의 필요성이 오히려 커질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7. 오픈형 AI 모델 확산도 새로운 기회
오픈형 AI 모델의 확산도 팔란티어에 새로운 성장 기회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생성형 AI 시장은 오픈AI와 앤트로픽 등 기업들이 개발한 폐쇄형 모델을 중심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금융기관과 국방기관처럼 민감한 데이터를 다루는 조직에서는 AI 모델을 자체 서버와 보안 환경에서 운영하려는 수요가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목받는 것이 오픈웨이트(Open-weight) 모델입니다.
오픈웨이트 모델은 공개된 가중치를 활용해 기업이 모델을 자체 인프라에서 운영하거나 라이선스가 허용하는 범위에서 추가 학습할 수 있도록 합니다. 모든 소스코드와 학습 데이터를 공개하는 완전한 오픈소스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AI 모델을 자체 서버에 설치했다고 해서 기업의 모든 업무를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데이터 접근 권한과 업무 규칙을 설정하고 기존 시스템에 연결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팔란티어는 다양한 AI 모델을 기업 데이터와 실제 업무에 연결하는 플랫폼을 제공합니다.
오픈형 모델의 성능이 개선되고 선택지가 늘어날수록 특정 AI 모델보다 이를 기업 업무에 안전하게 적용하는 플랫폼의 중요성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엔비디아(NVDA)와의 협력도 이러한 전략을 보여줍니다.
팔란티어와 엔비디아는 지난해 10월 엔비디아의 네모트론 모델과 GPU 가속 컴퓨팅 기술 등을 팔란티어의 온톨로지 및 AIP와 결합하는 협력을 발표했습니다.
올해 6월에는 미국 정부기관을 위한 보안 AI 시스템으로 협력 범위를 확대했습니다. 외부 네트워크와 분리된 '에어갭(Air-gapped)' 환경에서도 AI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9월에는 엔비디아 자체 공급망에 관련 기술을 적용하는 협력도 발표했습니다.
엔비디아의 공급망은 반도체 생산부터 첨단 패키징, 메모리 확보, 서버 제조와 고객 인도까지 복잡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엔비디아는 팔란티어의 온톨로지와 자사 AI 기술을 결합해 공급망의 병목을 파악하고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협력이 실제 어느 정도의 비용 절감과 생산성 개선으로 이어졌는지는 추가 검증이 필요합니다.
8. 팔란티어의 또 다른 경쟁력 'FDE'
팔란티어의 또 다른 특징은 고객 기업에 엔지니어를 직접 투입하는 방식입니다.
이들을 'FDE(Forward Deployed Engineer)'라고 부릅니다. 전진 배치 엔지니어라는 뜻입니다.
FDE는 고객 기업의 담당자들과 협력해 실제 업무 문제를 파악합니다. 데이터를 연결하고 필요한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며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합니다.
이 방식의 장점은 고객의 핵심 업무에 깊숙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객의 생산과 공급망, 재무, 보안 시스템에 팔란티어가 연결되면 다른 소프트웨어로 교체하는 데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고객 현장에서 얻은 경험을 제품 개발에 반영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입니다.
한 제조업체의 공급망 문제를 해결하면서 개발한 기능을 다른 제조업체에도 적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고객이 늘어날수록 엔지니어를 추가로 채용해야 한다면 인건비 부담이 커질 수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기업이면서도 컨설팅 기업과 비슷한 비용 구조를 갖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 이유입니다.
9. AI가 FDE의 생산성을 높인다면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AI FDE'에 주목했습니다.
기존에는 인간 엔지니어가 고객의 데이터 구조를 분석하고 코드를 작성해야 했습니다. 서로 다른 시스템을 연결하고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며 오류를 수정하는 작업도 필요했습니다.
이제는 AI가 이러한 업무의 일부를 자동화할 수 있게 됐습니다.
데이터베이스 구조 분석과 시스템 연결 코드 작성, 애플리케이션 초안 개발, 오류 탐지 등에 AI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AI가 인간 FDE를 완전히 대체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고객의 실제 문제를 파악하고 중요한 업무 규칙과 보안 체계를 설계하는 과정에는 여전히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반복적인 기술 업무를 자동화하면 같은 수의 엔지니어가 더 많은 고객을 지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존에 엔지니어 10명이 고객 10개사를 담당했다면 AI 도입 이후 같은 인력이 고객 20개사를 지원할 수도 있다는 가정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생산성 개선이 가능해진다면 팔란티어의 비용 구조는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매출은 빠르게 증가하지만 인건비는 상대적으로 천천히 증가하는 구조가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10. 골드만삭스가 주목한 세 가지 신시장
골드만삭스는 팔란티어가 진출할 수 있는 전체 시장 규모(TAM)가 다시 크게 확대될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핵심은 주권형 AI, 맞춤형 애플리케이션, 산업별 전문화 전략입니다.
첫 번째는 주권형 AI(Sovereign AI)입니다.
국가나 기업이 자체 데이터와 AI 시스템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입니다.
국방기관이 민감한 군사 데이터를 외부 AI 서비스에 맡기지 않고 자체 보안 환경에서 활용하려면 데이터 접근 통제와 기존 시스템 연결, 정보 유출 방지 등의 기능이 필요합니다.
팔란티어는 국방과 정보기관에서 축적한 경험을 활용해 이러한 시장을 공략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맞춤형 애플리케이션입니다.
은행에는 대출 심사와 위험 관리 기능이, 제조업체에는 생산과 공급망 관리 기능이 필요합니다. 병원은 병상과 의료 인력 배분을 최적화해야 합니다.
팔란티어는 공통 플랫폼을 기반으로 고객별 업무에 맞는 애플리케이션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산업별 전문화 전략인 '버티컬라이제이션(Verticalization)'입니다.
제조업과 금융업, 의료업 등 산업별로 반복되는 문제를 공통 기능으로 개발하는 방식입니다.
한 자동차 회사의 공급망 문제를 해결하면서 개발한 기능을 다른 자동차 회사에도 적용할 수 있다면 고객별 구축 비용을 낮출 수 있습니다.
여기에 AI FDE까지 결합하면 고객 수 증가에 따른 비용 부담을 더욱 줄일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11. 골드만삭스, 2028년 매출 193억달러 전망
골드만삭스의 가브리엘라 보르헤스 애널리스트는 8일 팔란티어의 투자의견을 '중립'에서 '매수'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12개월 목표주가는 230달러로 제시했습니다. 전날 종가인 194.12달러와 비교하면 약 18.5%의 상승 여력이 있다는 판단입니다.
보르헤스는 팔란티어가 진출할 수 있는 시장이 또 한 번 크게 확대될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골드만삭스가 예상한 팔란티어의 2026년 매출은 약 83억7000만달러입니다. 회사가 제시한 연간 가이던스 약 81억5000만달러를 웃도는 수준입니다.
2027년 매출은 약 132억3000만달러, 2028년에는 약 193억4000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2025년 매출이 약 44억8000만달러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3년 만에 매출이 네 배 이상으로 증가한다는 예상입니다.
골드만삭스는 2028년 매출 전망치를 기존 약 168억달러에서 193억달러로 약 15% 상향했습니다. 같은 해 주당순이익 전망치도 3.17달러에서 3.80달러로 약 20% 높였습니다.
다른 투자은행들도 긍정적인 전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DA데이비슨과 UBS는 목표주가를 250달러로 올렸고, 웨드부시도 250달러를 제시했습니다.
투자의견 상향 소식이 전해진 8일 팔란티어 주가는 장중 202달러까지 상승했습니다. 지난해 10월 기록한 사상 최고가 207.52달러에 근접한 수준입니다.
52주 저점인 106달러와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회복했습니다.
12. 문제는 이미 높아진 주가
다만 팔란티어의 주가에는 이미 높은 성장 기대가 반영돼 있습니다.
팔란티어의 시가총액은 약 4600억달러에 달합니다. 지난해 매출 약 44억8000만달러와 비교하면 100배가 넘습니다.
2027년 예상 매출을 기준으로 계산한 주가매출비율(PSR)도 약 35~37배 수준입니다. S&P500 기업 가운데서도 매우 높은 밸류에이션에 해당합니다.
부정적인 의견도 남아 있습니다.
잭스 리서치는 최근 팔란티어의 투자의견을 ‘보유(Hold)’로 낮췄습니다. 회사 내부자들의 주식 매도와 일부 투자자의 공매도 포지션도 시장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영화 ‘빅쇼트’의 실제 인물로 알려진 투자자 마이클 버리의 팔란티어 하락 베팅도 이러한 논쟁의 한 부분입니다.
핵심은 팔란티어가 앞으로도 현재와 같은 높은 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점입니다.
주가가 높은 성장 기대를 반영하고 있는 만큼 분기 실적이 시장 예상에 미치지 못하거나 회사가 가이던스를 낮추면 주가가 크게 흔들릴 수 있습니다.
AI 시대의 경쟁력이 강화된다는 사실과 현재 주가가 매력적인 투자 대상인지는 별개의 문제라는 의미입니다.
13. AI가 소프트웨어를 없애는 대신 더 중요하게 만들 수도
팔란티어는 테러 네트워크를 추적하기 위한 정보 분석 기술에서 출발했습니다. 서로 다른 기관에 흩어진 데이터를 연결하던 기술은 이제 기업의 생산과 공급망, 금융, 보안 시스템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했습니다.
올해 초 월가는 AI가 기존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사업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하지만 기업 현장에서는 AI 모델의 성능을 높이는 것만큼이나 이를 실제 데이터와 업무 규칙, 보안 체계에 연결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AI가 코드를 작성하는 비용은 낮아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AI가 기업의 복잡한 업무를 안전하게 수행하도록 만드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팔란티어는 바로 이 영역에서 새로운 성장 기회를 찾고 있습니다.
특히 AI가 고객 맞춤형 소프트웨어 구축 비용까지 낮춘다면 팔란티어는 더 많은 고객을 상대하면서도 높은 수익성을 유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성장 기대의 상당 부분은 이미 주가에 반영돼 있습니다.
앞으로 팔란티어를 평가할 핵심 기준은 AI 시대의 성장 가능성 자체보다, 실제 매출과 이익 증가가 높은 밸류에이션을 얼마나 빠르게 뒷받침할 수 있느냐가 될 전망입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