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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의 임원 인사가 빨라지고 있다. 10월 초부터 내년도 사업을 이끌 사장단과 주요 임원을 확정하는 기업이 잇따르는가 하면 정기인사와 별개로 필요한 자리에 외부 인재를 영입하거나 계열사 간 핵심 인력을 옮기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단순히 인사 시점이 앞당겨진 것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사업 환경이 빠르게 바뀌면서 연말에 조직과 사람을 한꺼번에 정하는 방식에서 벗어나고 있어서다. 정기인사로 조직의 큰 방향을 정하되 사업에 필요한 인재는 시기와 관계없이 확보하는 ‘상시 인사’가 재계의 새로운 인사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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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HD현대…10월부터 내년 사업 책임자 정한다
올해 재계 인사의 출발점은 예년보다 빨라졌다. 한화그룹은 10월 1일 2027년 정기 임원인사를 발표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16명, 한화시스템 5명, 한화솔루션·한화첨단소재 10명 등 주요 계열사에서 신규 임원을 발탁했다. 신규 임원 가운데 1980년대생도 6명에 달했다.
한화시스템에서는 글로벌 사업과 AX 분야 인력도 임원으로 발탁했다. 에코프로는 같은 날 최상운 에코프로 대표와 박종환 에코프로에이치엔 대표를 선임했다. 통상보다 약 두 달 앞선 인사다. 호반그룹도 2일 사장단 인사를 단행했다.
HD현대는 7일 이상균 HD현대중공업 부회장을 조선사업 총괄로 선임했다. HD한국조선해양·HD현대중공업·HD현대삼호의 전략과 실행을 아우르는 역할이다. 조선사업뿐 아니라 데이터센터용 엔진발전, SMR 등 연관 신사업까지 맡는다. 인사 시점보다 중요한 것은 사업 변화에 맞춰 사람을 먼저 배치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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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커리어케어 인사이트본부 전무는 “단순히 인사가 빨라졌다고 보기보다는 대기업의 인사 의사결정 방식 자체가 바뀌고 있는 신호”라고 말했다. 기업들이 “지금 이 사업에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가, 누가 이 상황에서 결과를 확실히 낼 수 있는가”를 먼저 묻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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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인사 밖의 외부 영입…‘출신’보다 ‘해본 일’ 본다
정기인사와 별개로 필요한 인재를 외부에서 데려오는 움직임도 뚜렷하다. SK그룹은 올해 정승일 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을 SK(주) 사장으로 영입했다. 박성택 전 산업부 차관도 SK 중국사업 관련 조직에 합류했고 SK텔레콤은 박성준 전 산업부 통상안보정책관을 영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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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역시 산업·에너지 정책 분야 관료 출신 인재를 잇달아 영입했다. 반도체 투자 확대 과정에서 전력망과 인허가, 산업정책 등 외부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이 커진 결과다.
현대자동차그룹의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최근 아마존에서 알렉사와 AGI 조직을 이끌었던 AI 전문가 로히트 프라사드를 신임 CEO로 영입했다. 대화형·생성형·멀티모달 AI와 AGI 기술 개발뿐 아니라 제품화·사업화 경험을 갖춘 인재다.
외부 영입의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박 전무는 외부 전문가를 과거처럼 내부 역량의 ‘보완재’로만 보지 않고 “성장전략의 핵심 인재”로 보는 수요가 커지고 있다고 했다. “우리 회사에서 몇 년 일했는가”보다 “우리 회사에 없는 경험을 가지고 있는가”가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헤드헌팅 시장에서도 “어느 회사 출신인가”보다 “그래서 그 사람이 실제로 무엇을 만들어봤는가, 어떤 성과를 냈느냐”를 따지는 방향으로 기준이 바뀌고 있다고 했다.

임원 승진 기준, 연차보다 ‘무엇을 바꿨나’
임원 평가 기준도 조직관리와 근속연수에서 사업 전문성과 성과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HD현대가 조선사업을 총괄하는 별도 역할을 강화한 것도 조선업의 경쟁구도 변화와 신사업 확대에 맞춰 사업을 이끌 책임자를 전면에 세운 인사로 볼 수 있다.
박 전무는 “사업 전문성과 성과 창출 역량, 즉 검증된 후보를 채용하려고 하는 니즈는 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조직을 잘 관리하는 능력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임원 후보를 볼 때도 “사업을 실제로 해봤는지, 결과는 어땠는지, 성공 DNA를 가졌는지”가 중요한 기준이라고 했다. 매출 확대, 수익성 개선, 신규 사업 창출, 위기 상황에서의 변화 등 구체적인 성과 경험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현승 커리어케어 커리어전략자문본부 전무는 “과거에는 주요 계열사 출신이라는 경력과 조직관리 경험이 임원 선임에서 강점으로 작용했지만 사업에 대한 도메인 이해도가 떨어지면 해당 조직을 이끌기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특히 B2B 산업에서는 개인의 영업 실적만으로 역량을 판단하기 어렵다면서 “개인이 매출을 낸다고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일 경우가 많기 때문에 조직력을 이용한 매출 견인이 이전처럼 훈장이 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AI도 ‘아는 사람’보다 ‘바꿔본 사람’
AI·AX도 인사 기준 변화의 한 축이다. 한화시스템이 이번 정기인사에서 AX 분야 인력을 신규 임원으로 발탁한 것처럼 AI가 기술 조직만의 과제가 아니라 사업과 경영의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박 전무는 임원에게 필요한 AI 역량을 “AI를 잘 아는 능력”과 “AI로 사업을 바꾸는 능력”으로 구분해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임원이 AI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AI가 자기 사업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는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전무도 AI 활용 경험이 인재 평가의 기준이 되고 있다고 봤다. 실제 채용 과정에서 “AI를 활용해 본인의 업무 역량을 향상했던 경험이 있습니까”를 묻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는 설명이다. 임원에게는 더 높은 수준의 활용 능력이 요구된다.
그는 “전략 수립부터 시행까지 전 영역에 AI를 활용해 성과를 도출할 수 있는 로드맵을 그릴 수 있는 것은 이제 임원 승진 평가에 기본”이라고 말했다.
필요한 전문성만 외부에서 가져온다
인재를 확보하는 방식 자체도 유연해지고 있다. 모든 역량을 조직 안에 두기보다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필요한 시점에 외부에서 활용하는 방식이다. 이 전무는 이를 “조직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성만 딱 따서 영입하고 쓰겠다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에서는 이와 유사한 ‘fractional executive’ 시장도 커지고 있다. 미국 노동시장 분석업체 라이트캐스트에 따르면 2025년 미국에서 직함에 ‘fractional’이 포함된 인력은 최소 3만4000명으로 2019년보다 265% 늘었다.
2026년 관련 채용공고도 약 1000건으로 2025년 연간 공고 677건을 넘어섰다. 다만 아직 대기업의 보편적인 인사 모델로 자리 잡은 단계는 아니다. 2026년 관련 채용공고의 97%가 중소기업에서 나왔고 포천1000 기업 비중은 3%에 그쳤다.
국내 대기업 역시 정기인사를 없애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대규모 조직개편과 주요 보직, 승진 인사는 여전히 정기인사를 통해 결정한다. 다만 정기인사 사이에 필요한 인재를 외부에서 확보하고 새로운 사업이 생기면 그 사업을 실제로 해본 사람을 데려오는 수시 인사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박 전무는 앞으로의 인사는 ‘연 1회 사람을 정하는 인사’에서 ‘필요한 역량을 지속해서 확보하는 인사’로 바뀔 것이라고 했다. 정기인사와 수시인사의 경계도 지금보다 약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오너가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고 해서 그 사업에 필요한 인재가 연말까지 기다려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인재가 시장에 나왔을 때 바로 데려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