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 시작점에 만난 우리는 우연처럼 같은 옷을 입었습니다."
배우 고윤정과 허남준이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났습니다.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어딘가 계속 엇갈립니다. 로맨틱 코미디처럼 흘러가던 이야기는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꺾입니다. 그런데 이 영상, 드라마 예고편이 아닙니다. 패션 브랜드 내셔널지오그래픽 어패럴이 만든 광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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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은 빨랐습니다. 지난달 23일 공개된 '코스토니 리버시블 플리스' 캠페인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 주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일주일 만에 합산 조회수 2500만회를 넘어섰습니다. 고윤정과 허남준이라는 '얼굴'에 독특한 스토리텔링으로 유명한 광고 제작사 돌고래유괴단이 붙자 소비자들이 광고를 콘텐츠처럼 보기 시작한 겁니다.
요즘 광고업계에서 일어나는 변화이기도 합니다. "15초 안에 제품의 장점을 알려야 한다"는 TV 광고의 공식 대신 배우와 캐릭터, 서사를 앞세워 끝까지 '보게 만드는' 드라마타이즈(Dramatize) 광고가 늘고 있습니다. 제품을 먼저 보여주고 이야기를 붙이는 게 아니라, 이야기에 빠져들게 한 뒤 제품을 발견하게 하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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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만에 2500만뷰…옷 설명 대신 '반전' 넣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어패럴이 이번 광고에서 내세운 제품은 2026년 가을·겨울(FW) 시즌 주력 상품 '코스토니 리버시블 플리스'입니다. 기존 모델인 고윤정에 이번 시즌 새롭게 합류한 허남준이 처음 연기 호흡을 맞췄고, 돌고래유괴단이 제작을 맡았습니다.흥미로운 건 제품을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코스토니 리버시블 플리스'는 이름 그대로 양면으로 입을 수 있는 제품입니다. 여기에 온도 변화에 따라 패턴이 달라지는 변온 소재를 적용했습니다. 평범한 광고라면 모델이 옷을 뒤집어 입거나 소재가 변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기능을 설명했을 겁니다.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2가지 모습을 보여주는 제품의 특징을 고윤정과 허남준 사이의 관계와 상황이 뒤집히는 '반전'으로 만들었습니다. 양면으로 입을 수 있다는 제품 설명 자체가 이야기의 장치가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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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고윤정과 허남준의 역할도 기존 패션 광고 모델과 조금 다릅니다. 멋진 옷을 입고 포즈를 취하는 대신 2사람이 광고 속 등장인물이 됐습니다. 고윤정은 담담한 캐릭터를, 허남준은 진지함과 코믹함을 오가는 인물을 연기합니다. 소비자가 2배우의 관계가 어떻게 끝날지 궁금해 영상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제품의 특징까지 보게 되는 구조입니다.
기업들이 톱 배우에게 기대하는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얼굴을 빌려 제품에 이미지를 덧씌우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배우가 가진 연기력과 캐릭터 소화력까지 광고 콘텐츠의 재료로 쓰기 시작한 겁니다.
재미로 끝나지 않았다…판매까지 이어진 2500만뷰
조회수가 아무리 많이 나와도 제품이 팔리지 않으면 기업 입장에서는 '재미있는 광고'로 끝날 수 있습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어패럴이 주목할 만한 건 콘텐츠에 쏠린 관심이 초기 판매 지표로도 이어졌다는 점입니다.ADVERTISEMENT
회사는 이번 신제품을 무신사에서 단독으로 선보이고 전용 프로모션을 진행했습니다. 광고 공개와 단독 판매를 맞물리면서 캠페인으로 끌어모은 관심을 구매로 연결하는 방식을 택한 겁니다.
이번 광고의 의미가 더 큰 건 내셔널지오그래픽 어패럴 운영사 더네이쳐홀딩스가 실적 반등이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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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네이쳐홀딩스의 지난해 연결 매출은 4775억원으로 전년 대비 7.6% 감소했습니다. 영업이익은 2024년 301억원에서 지난해 70억원으로 줄었습니다. 2023년 5484억원이었던 매출은 2년간 연속 감소했습니다. 올해 상반기에도 연결 기준 매출은 2083억원, 영업손실은 27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잘 만든 광고 1편으로 이런 실적 흐름을 뒤집을 수는 없습니다. 광고 조회수와 회사 전체 실적은 더욱 직접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핵심 브랜드인 내셔널지오그래픽 어패럴에 다시 소비자의 시선을 끌어와야 하는 시점에 2500만뷰를 기록한 캠페인이 나왔다는 점은 의미가 있습니다. 이제 중요한 건 이 관심이 한 시즌의 화제성을 넘어 매출 회복으로 얼마나 이어지느냐입니다.
5분짜리 광고도 본다…변우석·채수빈도 통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어패럴만 이런 실험을 하는 건 아닙니다.퍼시스그룹의 생활가구 브랜드 일룸은 지난해 배우 변우석과 채수빈을 앞세운 '일룸이 이룸' 캠페인을 선보였습니다. 역시 돌고래유괴단이 제작했습니다.

광고는 1990년대 멜로물처럼 시작합니다. 첫사랑의 설렘과 추억을 따라가다 예상 밖의 반전을 만나는 방식입니다. 소파의 소재가 무엇인지, 침대의 크기가 얼마인지를 먼저 설명하지 않습니다. 가구를 2사람의 감정과 기억을 연결하는 장치로 집어넣었습니다.
소비자들은 긴 광고도 봤습니다. '일룸이 이룸' 캠페인은 공개 10일 만에 누적 조회수 1000만회를 넘어섰습니다. 광고는 짧아야 사람들이 본다는 기존 상식과는 정반대입니다. 영상이 몇 분이냐보다 그 몇 분을 소비자가 광고라고 느끼지 않고 볼 수 있느냐가 중요해진 겁니다.
패션 브랜드 와키윌리도 비슷한 방법으로 성과를 냈습니다. 배우 고경표와 강혜원을 기용해 '짝사랑'과 '고백'을 소재로 한 '그 남자 그 여자 :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캠페인을 만들었습니다.
본편 하나만 만든 것도 아닙니다. 본편과 에피소드, 숏폼 등 모두 13편을 제작했습니다. 1개의 영상을 길이만 다르게 잘라 배포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긴 영상과 짧은 영상으로 계속 뻗어나갈 수 있도록 이야기를 설계한 겁니다.
성과는 숫자로도 나타났습니다. 구글이 공개한 유튜브 웍스 사례에 따르면 캠페인 이후 와키윌리 매출은 300% 증가했습니다. 이 캠페인은 '2025 유튜브 웍스 어워즈 코리아'에서 신규 브랜드 론칭 부문 수상작으로도 선정됐습니다. 심사위원단 역시 제품과 브랜드가 콘텐츠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장편·단편·숏폼 등으로 확장 가능한 구조를 높게 평가했습니다.

"삼양이 라면 회사 아니었어?"…기업광고도 드라마로
제품을 파는 소비재 브랜드만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소비자가 평소 관심을 두기 어려운 기업광고에서도 이런 방식이 등장하고 있습니다.삼양그룹은 지난해 배우 박정민을 모델로 '당연해서 몰라봤던 스페셜티' 캠페인을 선보였습니다.
삼양그룹은 식품뿐 아니라 화학, 의약바이오 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지만 일반 소비자에게는 이를 일일이 설명하기 쉽지 않습니다. 광고에서는 이런 약점을 오히려 소재로 활용했습니다.
박정민을 등장시켜 연애 상황처럼 이야기를 끌고 간 뒤 알룰로스와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수술용 봉합사 등 삼양그룹의 사업을 콘텐츠 속에 집어넣었습니다. 이후에는 숏폼과 박정민이 소비자 댓글을 읽는 후속 영상으로까지 이야기를 확장했습니다. 삼양그룹 공식 유튜브에 공개된 관련 영상 가운데 일부는 2700만회의 조회수를 넘겼습니다. 딱딱한 기업 소개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방법으로 '연애 이야기'를 가져온 셈입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어패럴과 일룸, 와키윌리, 삼양그룹이 파는 것은 모두 다릅니다. 그런데 광고 방식은 닮았습니다. 제품부터 설명하지 않고 먼저 볼거리를 만듭니다. 배우에게 제품을 들려주는 게 아니라 캐릭터를 주고, 브랜드 메시지를 대사와 반전, 상황 안에 숨깁니다.
"짧아서 본다"는데…기업은 왜 긴 광고 만들까
이런 광고가 늘어나는 배경에는 소비자들의 영상 시청 방식 변화가 있습니다.한국콘텐츠진흥원이 전국 10세 이상 6554명을 조사한 '2025 콘텐츠 이용행태 조사'에 따르면 숏폼 콘텐츠 이용률은 58.6%였습니다. 숏폼을 보는 이유로는 "짧아서 부담이 없어서"라는 응답이 76.0%로 가장 많았습니다. 예능·오락 편집본을 선호한다는 응답은 62.1%, 드라마 편집본은 38.1%였습니다.
언뜻 보면 몇 분짜리 광고를 만드는 흐름과 반대되는 결과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기업들은 오히려 여기서 답을 찾았습니다. 소비자가 긴 영상을 보지 않는 게 아니라 '재미없는 긴 영상'을 보지 않는다고 판단한 겁니다. 본편에는 드라마처럼 볼 수 있는 이야기를 넣고, 재미있는 장면과 반전은 다시 쇼츠와 릴스, 티저로 잘게 나눕니다. 1개의 광고를 여러 플랫폼에서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 원천'으로 만드는 방식입니다.
숏폼이 실제 소비로 연결되는 통로가 되고 있다는 조사도 있습니다. 같은 조사에서 숏폼 이용자의 33.3%는 영상 속 쇼핑 링크에 접속한 경험이 있었고, 이 가운데 31.4%는 실제 상품 구매까지 이어졌다고 답했습니다.
광고주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광고를 피하지 않고 스스로 보고, 마음에 드는 장면을 다시 짧은 영상으로 소비하고, 제품 구매 페이지까지 이동하도록 만드는 구조를 만들 수 있는 셈입니다.
광고인지 드라마인지…진짜 승부는 '제품 기억'
그렇다고 스타 배우와 유명 제작사를 붙인 '짧은 영화'가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오히려 광고가 재미있어질수록 새로운 문제가 생깁니다. 고윤정과 허남준의 로맨스는 기억나는데 무슨 옷 광고였는지 기억하지 못하거나, 변우석과 채수빈의 이야기는 기억하면서 브랜드는 떠올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스타 배우를 여러 명 기용하고 영화에 가까운 콘텐츠를 제작하면 일반적인 디지털 광고보다 비용 부담이 커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조회수만으로 광고 효과를 평가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결국 최근 광고 경쟁은 '얼마나 짧게 보여주느냐'에서 '얼마나 오래 보게 만드느냐'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고윤정·허남준의 2500만뷰, 변우석·채수빈의 1000만뷰, 와키윌리의 매출 증가가 보여주는 것도 같은 흐름입니다.
다만 내셔널지오그래픽 어패럴의 진짜 성적표는 이제부터입니다. 더네이쳐홀딩스의 실적이 꺾인 상황에서 2500만명이 본 '짧은 영화'가 제품 1~2개의 초기 흥행을 넘어 브랜드 전체 매출을 다시 끌어올릴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입니다. 광고를 광고처럼 보이지 않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이제 남은 건 재미있게 본 소비자가 내셔널지오그래픽이라는 이름과 제품까지 기억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브랜드는 왜 하필 그 얼굴을 택했을까요. [얼굴전략]은 연예인부터 인플루언서, 심지어 버추얼 캐릭터까지 브랜드가 앰버서더나 모델로 낙점한 인물의 이미지와 서사를 파고드는 코너입니다. 캐스팅 배경에 깔린 마케팅적 계산, 그리고 그 선택이 실제로 브랜드에 어떤 파급 효과를 남겼는지를 데이터와 반응으로 짚어봅니다. 화려한 얼굴 뒤에 숨은 냉정한 전략, 그 방정식을 하나씩 풀어보겠습니다. 구독하시면 매주 더 쉽고 빠르게 보실 수 있습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