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이브로우를 계속하다가는 정말 작품을 못하겠다 싶었어요. 사람들에게도 '사업하는 사람', '목수'라는 말만 듣게 될 것 같았고요."
배우 이천희가 13년간 키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하이브로우' 대표직을 내려놓고 다시 배우로 돌아왔다. 필요한 가구를 직접 만들어 쓰던 취미가 캠핑용품·가구 브랜드로 커졌고, 코로나19 당시 캠핑 붐을 타면서 한때 직원이 20명 가까이 되는 회사로 성장했다. 하지만 브랜드가 커질수록 '배우 이천희'의 시간은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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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너무 많았어요. 시즌별 제품을 확인해야 하고 회의도 계속해야 했죠. 처음엔 작품을 1~2년 정도 쉬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2~3년이 지나 있더라고요."
이천희는 13년간의 '대표 이천희' 생활을 이렇게 돌아봤다. 처음부터 사업가가 될 생각은 없었다. 건축가인 친동생 이세희 씨와 취미처럼 시작한 목공이 출발점이었다. 하이브로우라는 이름도 두 사람의 이름의 '희'(Hi)와 '형제(Brother)'에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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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물건을 직접 만들어 쓰다 수납용 플라스틱 박스 위에 나무 상판을 얹으면 캠핑장에서 테이블로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최소 주문 수량을 맞추다보니 너무 많이 시켜야 해서 팔기 위해 사업을 하게 됐다. 하이브로우의 대표 상품이 된 '밀크박스'의 시작이다.
"원래 제게 필요한 것 2개만 만들려고 했어요. 그런데 플라스틱 박스 최소 주문 수량이 300개인 거예요. 298개가 남으니 팔아야겠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했는데 사람들이 '이걸 캠핑 가서 테이블로 쓸 수 있겠다'면서 하나둘 찾기 시작했죠."

처음에는 남은 298개를 어떻게 처분할지가 고민이었다. 하지만 캠핑 장비를 담아 이동하고 현장에서는 테이블과 수납 가구로 바뀌는 쓰임새가 입소문을 탔다. 캠핑 의자와 테이블, 리빙 제품으로 제품군이 늘어났고 방송과 다른 브랜드와의 협업도 이어졌다. 특히 JTBC '효리네 민박'에서 이효리가 하이브로우 밀크박스와 휴대용 의자를 사용하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주문이 밀려들었다. 취미는 그렇게 '일'이 됐다.
"물건 2개 만들려다 회사가 됐죠"
제품이 잘 팔리면 사업이 편해질 것 같았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주문이 늘자 창고가 필요했고, 제품군이 많아지자 신제품을 계속 만들어야 했다.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페어와 행사를 열고 판매 채널을 확대하자 직원과 조직을 운영해야 하는 책임까지 생겼다."처음에는 제가 필요한 물건만 만들면 됐어요. 그런데 브랜드를 알리려면 페어(박람회)도 나가야 하고 행사도 해야 하잖아요. 직원이 늘어나면 그만큼 더 많이 팔아야 하고요. 해야 할 일이 계속 퍼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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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는 하이브로우의 성장에 기회가 됐다. 해외여행길이 막히고 캠핑을 시작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장비 수요가 늘었다. 하지만 캠핑 붐이 지나자 상황은 달라졌다. 시장에는 수많은 브랜드가 생겼고 비슷한 제품도 쏟아졌다.
"코로나 때는 캠핑을 처음 시작하는 분들이 많아서 장비를 새로 사는 수요가 컸어요. 지금은 브랜드도 정말 늘어났고, 카피 제품도 많아졌죠. 요즘은 어떻게든 버티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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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히 오토캠핑용 제품 수요는 크게 줄었다. 다행히 집이나 카페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리빙 제품이 버팀목이 됐다. 한때 20명 가까이 됐던 직원도 현재 7명 안팎으로 줄었다. 회사를 서울에서 경기도 양평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출퇴근이 힘들어져 퇴사한 직원들도 있었다.
"직원들에게는 주말 출근도, 양평 출퇴근도 힘든 일이었을 거예요. 사업을 처음 해본 형제가 다른 방법을 더 빨리 찾지 못했던 부분은 아쉬운 부분이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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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를 만드는 일과 회사를 경영하는 일이 다르다는 것도 배웠다. 하이브로우는 대형 프랜차이즈와 협업하고 큰 행사를 열면서 실제 회사 규모보다 큰 브랜드로 받아들여지곤 했다. 이천희 역시 브랜드를 알리는 일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브랜드의 이미지가 커진다고 회사의 수익이 따라오는 것은 아니었다.
"브랜딩을 열심히 해온 건 맞아요. 행사를 크게 열고 가수를 부르면 브랜드 이미지를 만드는 데는 좋죠. 그런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그게 수익과 맞는지는 다시 봐야 해요."
동생과 이천희의 역할도 달랐다. 이천희가 행사와 마케팅 등 브랜드를 외부에 알리는 일에 적극적이었다면 동생은 비용과 운영의 균형을 따지는 쪽이었다. 그는 "전체적인 판은 동생이 더 많이 짰고 저는 뒤에서 서포트하는 역할이 컸다"며 "이제는 동생이 잘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사업하는 사람, 목수로만 남을까 겁났어요"
대표직을 내려놓기로 한 것은 단순히 사업이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배우와 대표, 2개의 역할을 동시에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컸다.회사의 월급은 매달 나가는데, 배우 이천희로서의 정체성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회사를 떠나 촬영하거나 작품을 준비해야 했다. 회사에 있는 시간이 줄어들수록 '내가 지금 회사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고 있는가'라는 고민도 커졌다. 그는 어느 순간 자신에게 물었다.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답은 연기였다.
"2개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이제는 제 본업을 더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유튜브를 시작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연기 공백이 길어지면서 사람들에게 '이천희가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창구가 필요했다.

유튜브를 본격 운영하자 다시 '배우'로서의 일이 이어졌다. 연극 '비기닝'에 출연하며 6년 만에 무대에 오른 것에 이어 MBC 새 금토드라마 '라이어' 방송도 앞두고 있다.
"제가 계속 작품을 하고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아직 연예계에 있고, 계속 영업 중입니다.(웃음)"
대표직을 내려놨지만 13년 동안 해온 일이 배우 이천희의 삶에서 사라지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사업이었던 목공은 다시 취미가 됐고, 캠핑 역시 여전히 하고 있다. 방식만 달라졌을 뿐이다. 하이브로우를 운영할 때는 많은 장비를 싣고 가는 오토캠핑이 익숙했다면 최근에는 배낭 하나를 메고 떠나는 백패킹에 빠졌다.
"처음엔 왜 굳이 무거운 짐을 지고 산을 가나 싶었어요. 그런데 직접 해보니까 짐을 줄이고 계획을 세우는 과정도 좋고, 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시간도 좋더라고요."
새로운 장비를 계속 사들이는 스타일도 아니다. 오래된 물건을 고쳐 쓰기를 좋아한다. 예전에 산 타프를 여전히 집 마당에 펼쳐놓고 사용한다. "남들은 왜 그렇게 오래 쓰냐고 하는데 저는 좋은 것 1개를 오래 쓰는 편이에요."

하이브로우를 떠난 뒤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목공이다. 한때 취미였던 목공은 사업을 시작하면서 '제품'이 됐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만드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원가는 얼마인지, 반복 생산이 가능한지, 시장에서 팔릴지부터 따져야 했다. 좋아서 만들던 물건에도 손익계산이 따라붙었다. 지금은 다르다. 나무로 컵을 만들다 생각대로 안 되면 그냥 그만둬도 된다.
"취미로 할 때가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예전에는 제품으로 만들어야 하니까 계속 방법을 찾아야 했는데, 이제는 '이건 손이 너무 많이 간다. 하지 말자' 하고 끝낼 수 있잖아요."
13년 만에 목공이 다시 일이 아닌 놀이가 됐다는 것이다.
"안 해본 역할이 너무 많아요"
대표라는 이직함 내려놓은 자리는 다시 연기가 채우고 있다. '비기닝'은 소화해야 할 대사가 많은 2인극이었지만, 처음 대본을 펼친 뒤 단숨에 끝까지 읽었다. 그는 "오랜만에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너무 행복했다"고 했다."매일 똑같은 공연을 하는데도 그날그날 감정이 달라요. 공연이 끝나면 다음 공연이 또 기다려졌어요."
오는 30일 첫 방송될 '라이어'에서는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비밀을 감춘 채 심리전을 벌이는 작품에서 이천희가 맡은 김형수는 세심하고 온화한 성격으로 처제 강지선(서현진 분)을 돕는 인물로 알려졌다.

오랜만에 연기를 하면서 연기에 대한 욕심도 커져갔다. 그동안 이천희에게는 편안하고 친근한 이미지가 따라다녔다. 이제는 조금 더 묵직한 역할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사람 자체가 완전히 바뀌지는 않겠지만 연기자로서의 모습은 조금 더 진득해졌으면 좋겠어요. 생각해보니 안 해본 역할이 너무 많더라고요."
목공과 캠핑, 하이브로우가 배우 이천희에게서 연기를 빼앗아가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작품이 없을 때마다 불안해하는 대신 공방으로 향하고 캠핑을 떠날 수 있었다. 배우라는 직업을 오래 이어갈 수 있도록 버티게 해준 또 다른 세계이기도 했다.
"예전에는 배우 이천희만 있고, 그냥 이천희라는 사람을 위해 하는 일은 없는 것 같았어요. 지금은 작품이 안 돼도 '다음이 있겠지' 하면서 조금 편안해졌어요. 다양한 일들을 해왔던 게 오히려 연기를 더 오래할 수있도록 여유를 주는 자양분이 된 것 같아요."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