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좌를 놓고 다투던 두 형제는 끝내 서로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반역자의 시신을 매장하지 말라는 통치자와 그 명령을 거스르는 개인은 각자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권력을 향한 욕망과 타협 없는 확신이 빚어내는 고대 비극의 파국은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낯설지 않다. 지난해 시작된 국립극단의 연극 ‘안트로폴리스’ 5부작 시리즈는 고대 그리스 비극을 통해 인간이 쌓아온 문명 속에서 폭력과 대립이 되풀이되는 이유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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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은 30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안트로폴리스 5부작의 후반부를 이끌 세 연출가와 무대디자이너의 구상을 소개했다. 국립극단은 작년 ‘프롤로그&디오니소스’, ‘라이오스’를 선보인 데 이어 올 하반기 ‘오이디푸스’(강량원 연출), ‘이오카스테’(서지혜 연출), ‘안티고네&에필로그’(정영두 연출)를 선보여 시리즈를 완성한다. 독일 현대 연극 거장 롤란트 쉼멜페니히가 그리스 신화를 재창작한 희곡을 원작으로 한다.
고대 비극에서 착안한 작품이지만, 국립극단이 이를 무대에 올린 것은 과거가 아닌 현재를 향한 질문에서 비롯됐다. 전쟁이 반복되고 있는 가운데 인간이 왜 폭력을 되풀이하고 있으며 어떻게 이를 막을 수 있는지에 관한 물음이다. 박정희 국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은 “고전과 신화에는 인간의 뿌리, 역사의 뿌리, 폭력의 뿌리가 있다”며 “우리가 왜 이렇게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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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4일부터 공연되고 있는 ‘오이디푸스’는 완벽에 가까운 오이디푸스가 아닌 소수자로서 오이디푸스를 제시한다. 오이디푸스는 끊임없는 차별 속에서도 자신 안의 결핍 덕분에 타인을 이해하고 품을 수 있는 존재가 된다. 강량원 연출은 “수치와 상처를 겪은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고통에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이것이 잘 보이도록 소품을 없애고 빛으로 무대를 가득 채웠다”고 설명했다.
10월 28일 개막하는 ‘이오카스테’는 반복되는 폭력의 고리를 끊으려는 인물을 중심에 놓는다. 원작에서 죽음을 맞는 오이디푸스의 어머니이자 아내인 이오카스테가 이 작품에서는 살아남아 전쟁을 벌이려는 두 아들을 중재한다. 무대는 관객에게 익숙한 오늘의 장면들과 겹쳐진다. 왕의 전쟁 선포는 기자들 앞에서 하는 대국민 발표로, 성 밖에서 외치는 말은 입장 발표처럼 표현한다. 서지혜 연출은 “고대의 비극이 지금 우리의 얘기와 맞닿아 있다는 점을 중첩해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안트로폴리스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 ‘안티고네&에필로그’는 오는 12월 개막한다. ‘안티고네’는 나의 신념과 다른 사람의 신념이 부딪힐 때 그것을 풀어가는 지혜는 어디서 나오는지 깊이 있게 파고들 예정이다. 정영두 연출은 “신념과 신념이 강하게 맞붙었을 때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떻게 나눌 수 있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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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작품의 무대는 임일진 무대디자이너가 모두 맡는다. 고대 도시를 하나의 고정된 공간으로 재현하기보다 각 연출가의 개성을 살리되, 대형 구조물 ‘빌보드’와 컨테이너는 공통적으로 무대에 등장한다. 임 무대디자이너는 “5개 작품의 선명한 색을 보여주면서도 연결성을 확실하게 드러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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