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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상반기 신규 벤처투자액은 8조867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4.3% 증가하며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투자 혹한기를 벗어나 시장이 본격 회복 국면에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고무적인 성과다. 다만 투자금의 절반 이상이 인공지능(AI)·반도체 등 특정 기술 분야에 집중돼 회복의 온기가 고르게 확산하지는 못했다.
화려한 실적 뒤에는 불공정 투자 계약
화려한 양적 성장 이면에는 오랫동안 굳어진 투자자(VC)와 피투자기업(스타트업) 간 불공정 계약 관행이 자리하고 있다. 과도한 리픽싱(전환가액 조정) 요구나 창업자 개인에 대한 연대책임 부과 등은 창업가의 재도전 의지를 꺾고 생태계 선순환을 가로막는 대표적 독소조항으로 지적됐다.올해 7월에는 투자 계약상 이해관계인으로 편입된 스타트업 대표에게 과도한 손해배상 및 주식매수 책임이 부과된 사례가 알려지며 계약 관행에 대한 우려가 다시 제기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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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흐름 속에서 두 차례의 '벤처투자법' 개정과 '벤처투자 표준계약서' 개편은 불공정 계약 관행을 법률과 행정 영역에서 본격적으로 수술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중대한 전환점이다.
사적 영역 개입하는 벤처투자법

벤처투자법은 최근 1년 새 두 차례 개정됐다. 지난해 12월 개정된 부분이 기존 고시 수준의 연대책임 금지 조항을 법률로 상향해 규범력을 높였다면, 지난 달 개정된 법안(내년 3월 30일 시행)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불공정 조항의 효력을 무효화하고 위반 시 행정처분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정부가 사적 계약 영역에 개입할 실효적 수단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입법적 의의가 크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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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창업자 연대책임 부과 금지다. 법 개정을 통해 투자기업의 의무를 창업자 등 제삼자에게 연대해 부담시키는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규율 공백 지대였던 일부 개인 투자조합까지 적용 범위를 넓혔다. 다만 배임·횡령이나 기술 유출 등 고의·중과실이 명백한 예외적 경우에만 책임을 물게 해 회수 안정성과 창업자 보호의 균형을 꾀했다.
둘째, 불공정 투자계약 조건의 제한 및 제재다. 정당한 사유가 없거나 유예기간 없는 조기 회수 요구, 기업공개(IPO) 실패를 이유로 한 과도한 리픽싱 등 피투자기업에 독소조항을 요구하는 행위가 금지된다. 위반 시 계약 전체가 아니라 해당 불공정 조항만 무효가 되며, 위반한 운용사(GP)에는 시정명령, 업무정지, 등록취소 등 행정제재가 부과될 수 있다. 사법상 효력 부인과 행정 처분을 결합해 협상력의 불균형을 시정하겠다는 강한 입법 의지다.

셋째, 대주주의 부당 개입 금지다. 벤처투자회사 대주주 등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목적으로 회사와 금전이나 향응을 주고받는 행위를 금지해 투자의사 결정의 독립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다만 과제도 남아 있다. '과도한' 가격조정이나 '정당한 사유'의 구체적 기준은 하위법령에 맡겨져 있어, 시행 전까지 그 기준을 얼마나 명확히 정하느냐가 제도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또한 여신전문금융업법의 적용을 받는 일부 신기술사업투자조합이나 신기사 고유 계정을 통한 투자에는 이 같은 규율이 미치지 않는다는 점도 향후 입법적 정비가 필요한 대목이다.
'표준계약서'의 진화...강제력은?
계약 실무의 변화도 시작됐다. 중소벤처기업부와 한국벤처투자는 지난 6월, 3년 만에 전면 개편한 '벤처투자 표준계약서 및 해설서'를 발표했다. 2025년 개정법의 연대책임 금지 취지를 계약서에 반영하면서 리픽싱·IPO 조항처럼 9월 개정법이 규율하게 된 쟁점에 대해서도 한발 앞서 합리적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새로운 표준계약서의 주요 변화는 다음과 같다.ADVERTISEMENT
첫째, 계약 구조의 분리와 단순화다. 기존에 단일 계약으로 묶여 있던 '투자계약서(SPA)'와 '주주간계약서(SHA)'를 분리해 단계별 권리관계를 구체화했다. 또한 기존에 투자 수단과 주체별로 복잡하게 분절되어 있던 32종의 서식 체계를 실무 핵심 5종(보통주·CPS·RCPS·CB·BW)으로 대폭 통합·정리했다.
둘째, 사전동의권의 합리화다. 초기 라운드 투자자의 개별 동의권이 후속 투자 때마다 걸림돌이 되던 문제를 완화하고자 라운드별 투자자가 집합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방식을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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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투자 유형 및 리픽싱 방식의 합리화다. 상환 부담이 큰 상환전환우선주(RCPS) 대신 전환우선주(CPS)를 권장한다. 지분 가치 희석이 커 창업자에게 독소조항으로 꼽히던 '풀 래칫(Full-Ratchet, 최저가로 조정)' 리픽싱 방식 대신, 후속 투자 규모와 발행주식 수를 안분하는 '가중평균(Weighted Average) 방식'을 기본형으로 채택했다.
넷째, 창업자 연대책임 제한 및 IPO 의무 완화다. 법 개정 취지를 반영해 창업자의 고의·중과실 등 예외적인 상황 외에는 연대책임을 묻지 못하도록 명시했다. 또한 'IPO 이행 의무'를 '달성을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로 낮춰 상장 실패가 곧바로 과한 페널티로 이어지지 않도록 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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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표준계약서는 권고안이어서 법적 강제력이 없다. 실제로 개정 이후에도 여전히 현장에서는 RCPS 계약이 주류를 이룬다. 이에 정부는 모태펀드 출자사업의 운용사(GP) 선정 시 표준계약서를 활용한 투자사에 가점을 부여하는 정책적 유인책을 검토 중이다. 법률로 최소한의 금지선을 긋고, 그 위 영역은 유인책으로 시장 변화를 유도하겠다는 구상이다.
'상생' 향한 행정과 법률의 역할

이번 법 개정과 표준계약서 개편에 대해 VC 업계 일각에서는 "민간의 자율성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리스크가 큰 초기 기업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시장 활력을 고민하는 이들의 주장 역시 충분히 귀 기울일 만하다.
그러나 이번 조치가 어느 일방의 권익만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명확하다. 이는 벤처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행정과 법률의 이름으로 마련한 것이다.
창업자는 과도한 굴레 없이 재도전에 나설 수 있고, 투자자는 합리적인 테두리 안에서 리스크를 관리하며 성장의 결실을 나누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장기적으로 제2, 제3의 벤처붐을 끌어낼 진정한 토대다.
역대 최대 투자 실적이라는 양적 성장에 걸맞게, 이번 제도 변화가 단순한 규제를 넘어 우리 벤처 생태계 참여자 모두가 '상생'의 의미를 되새기고 더욱 건강하고 성숙한 투자 문화를 구축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