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11년 만의 미국 국빈 방문은 실질적인 성과 측면에선 큰 결실을 내지 못했다. 대만과 첨단기술, 반도체 수출통제 같은 핵심 현안에서 구체적 합의나 별 다른 돌파구가 없었다.
하지만 중국 관영매체들은 이번 미중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규정하면서 높이 평가하고 있다. 중국 입장에선 가장 중요한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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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가장 원했던 장면은 시 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나란히 서서 중국이 미국과 대등한 강대국이라는 이미지를 세계에 각인하는 것이었다.
29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이번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시 주석은 체면을 세웠고 그의 지도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동등한 지위에 대한 인정을 상당히 얻었다"고 전했다.
반도체도 대만도 못 풀었지만
실제 중국 관영매체는 시 주석의 방미 성과를 대대적으로 띄웠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양국 관계에 대해 강대국이 공존하는 올바른 길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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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통신은 미국 각계가 시 주석의 방문을 높이 평가했다고 보도했다. 인민일보는 주요 강대국들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길이 바로 우리 발밑에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시 주석의 방문 일정을 자세히 소개했다.
이 기사를 통해 푸른 하늘 아래 워싱턴에 도착하는 장면부터 산과 바다를 가로질러 귀국하는 긴 여정까지 묘사했다. "중국과 미국의 관계 변화는 위대한 부흥을 향해 꾸준히 나아가는 동방의 대국 중국이 세계에 가져오는 신선한 기운과 변화의 영향력을 보여준다"는 게 인민인보의 평가였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런 인식을 강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의 전용기가 착륙하기 전부터 앤드루스 기지에서 대기했다. 직접 활주로 영접도 했다. 미국 내에서조차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동안 대외 공식 행사를 자제해 온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 역시 이번 정상회담의 전면에 나섰다. 멜라니아 여사는 중국식 검은색 정장인 마오복(Mao suit)을 입은 시 주석 부부의 만찬 메뉴 등을 직접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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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미국의 국조 흰머리수리 조각상을 선물했다. 중국 역시 자이언트판다 암수 한 쌍인 푸솽과 핑핑을 미국으로 보냈다. 시 주석의 방미 마지막 날엔 벽지와 가구 등이 붉은색으로 꾸며진 백악관의 레드룸에서 티타임을 가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과 개인적 관계를 적극적으로 강조하면서 중국 최고지도자를 미국 대통령의 동등한 상대방으로 부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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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제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 선임연구원은 "시 주석이 미국 대통령과 동급의 지도자로 인식되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국빈 방문을 통해 그 과정을 앞당겼다"고 분석했다. 이것이 시 주석의 미국 국빈 방문의 핵심 목적이며 중국으로선 최상의 결과라고 평가다.
시 주석으로선 외교적 안정이 국내 정치에도 유리하다. 그는 내년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네 번째 5년 임기를 확보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오랜 부동산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국 경제를 되살리면서 동시에 인공지능(AI) 분야에서 미국과 경쟁하기 위한 기술 고도화를 추진할 시간도 확보했다.
시진핑이 워싱턴서 얻은 결정적 한 가지
중국은 지난해 미중 무역전쟁 과정에서 미국의 관세와 수출통제에 희토류 공급 제한으로 맞서며 협상력을 과시했다.ADVERTISEMENT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지난해 10월 시작한 무역 휴전을 두 달 연장하고 희토류 문제 등을 계속 협의하기로 했다. 이어 600억달러(약 81조5000억원) 규모 비민감 품목에 대한 관세를 낮추는 방안도 발표됐다. AI 위험과 이익에 관한 협의도 새로 시작하기로 했다.
중국과 미국 대통령이 6개월 사이 서로 국빈 방문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 하반기만 해도 시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은 1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두 차례 추가 회동을 계획하고 있다.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워지는 관계를 활용해 미국·일본 같은 동맹국 사이를 벌려놓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은 지난해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중국과 대만 간 전쟁이 일본의 존립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발언한 뒤 일본에 수출통제를 가하기도 했다.
중국 공산당 계열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일본의 동맹 후견국인 미국, 한때 일본에 무조건적인 지원을 약속했던 초강대국이 이제 중국과 건설적인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썼다. FT 역시 이같은 글로벌타임스의 논조를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중국의 향후 외교 전략을 분석했다.
물론 첨예한 갈등 요인은 그대로 남았다. 공동성명에는 대만 문제가 빠졌지만 중국은 관영매체를 통해 강경한 메시지를 냈다. 시 주석은 미국이 대만 독립을 지원할 경우 양국이 충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베이징 외교가 한 관계자는 "사실 중국 입장에선 협상 성적표보다 중국이 미국과 대등하게 세계 질서를 논하는 강대국이라는 인식이 더 중요할 수 있다"며 "관영매체들이 긍정적이고 호의적으로 이번 정상회담을 평가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전했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