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주회장이 100% 자회사인 은행장 인사권이 없다면 금융지주가 제대로 돌아가겠습니까.”
한 은행계 금융지주의 인사 담당 임원은 금융당국이 은행 등 금융지주 자회사의 최고경영자(CEO) 승계 문제를 지적한 것을 놓고 “조직의 핵심이 인사와 예산인데 인사권이 없는 금융지주 회장의 영이 서겠느냐”며 이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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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연말 금융지주 계열사 CEO 임기 만료를 앞두고 금융감독원이 지주 회장에게 권한이 집중된 자회사 CEO 선임 관행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금융지주 회장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지주사의 자회사 대표이사 후보추천위원회(자추위)가 자회사 대표 선임권을 사실상 행사하면서 자회사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는 자추위의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자회사 CEO 인사에 모회사(금융지주)의 의중이 반영되는 것을 ‘부당한 개입이라고 볼 수 있느냐’는 지적부터 소유 분산 기업(소유가 분산돼 오너십이 없는 기업)이라는 이유로 정부가 민간 기업의 인사에 개입하려는 ‘관치금융’이라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한 금융지주 전략담당 임원은 “자추위가 은행장 인사권을 행사하면 은행장이 지주회장 말을 듣겠느냐”며 “금융지주의 지배구조가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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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금융지주에서만 연말 임기 만료를 앞둔 계열사 CEO가 54명에 달한다. 하나금융이 13명으로 가장 많고 신한금융 12명, 우리금융 12명, KB금융 10명, 농협금융 7명 등이다. 5대 은행장의 경우 모두 연내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한 차례 연임에 성공한 정상혁 신한은행장뿐 아니라 이환주 KB국민은행장, 이호성 하나은행장, 정진완 우리은행장, 강태영 농협은행장도 올해 말 임기가 끝난다. BNK금융과 iM금융, JB금융 등 지방 기반 금융까지 범위를 넓히면 연말 임기 만료 자회사는 70곳에 달한다.
○금융당국 “자회사 임추위 권한 강화해야”
금감원은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강화해 자회사 임추위에 실질적인 CEO 추천 및 검증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9월 15일 임원회의에서 “대부분 지주사의 자추위가 수립한 자회사 CEO 승계 절차가 미흡하고 자회사 임추위의 역할도 제한적인 것으로 파악된다”며 “향후 후보군 선정, 검증과 평가, 기록 등 CEO 승계 절차 과정에서 투명성과 공정성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며 포문을 열었다.
현재 은행장을 비롯한 자회사 CEO 선임 권한이 금융지주 회장을 비롯한 지주 사외이사가 참여하는 자추위에 집중된 것은 사실이다. 금융지주는 ‘계열사 대표이사 후보추천위원회’(KB금융), ‘자회사 최고경영자 후보추천위원회’(신한금융), ‘그룹 임원후보 추천위원회’(하나금융), ‘자회사 대표이사 후보추천위원회’(우리금융), ‘임원후보추천위원회’(NH농협금융) 등 자추위를 운영하고 있다. 이름은 조금씩 다르지만 지주회장이 직접 위원장을 맡거나 위원으로 참여한 이들 자추위가 자회사 CEO 후보를 단독 추천하면 자회사 임추위를 거쳐 이사회, 주주총회를 통해 선임되는 방식이다. 이를 근거로 자추위가 CEO 인사권을 쥐고 흔들고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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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은 2023년 지배구조 모범관행을 마련하면서 ‘지주사가 자회사인 은행장 선임에 관여할 경우에도 법상 기구인 은행 임추위의 역할을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보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 7월에도 한 은행계 금융지주에 대한 검사 결과에서 “지주가 은행 CEO 최종 후보군 및 최종 후보 승인 시 은행 임추위의 의견 개진 절차가 없어 은행 임추위의 의견이 충분히 평가에 반영되지 않을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의 지적 이후 가장 먼저 움직인 곳은 부산·경남 기반의 BNK금융지주다. BNK금융은 9월 17일 은행 등 자회사 임추위에 CEO 상시 후보군 추천 권한을 부여하고 임추위원장이 지주사 자추위 최종 면접에 참관해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했다. 신한금융도 9월 21일 은행 임추위에 CEO 후보군 추천 권한을 주기로 했다. KB금융, 하나, 우리금융 등도 비슷한 제도 도입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종 후보 추천권은 여전히 자추위가 갖고 있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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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지주 “100% 자회사 CEO도 못 뽑나”
이찬진 금감원장은 임원회의 일주일여 만에 2차 경고를 날렸다. 이 원장은 9월 23일 8개 은행계 금융지주 회장과의 간담회를 갖고 “특정계파나 친소관계에 매몰되지 않고 능력에 바탕을 두고 적임자를 선별해달라”며 “지주사는 CEO 선정 과정에서 자회사 임추위가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자회사 임추위가 의견을 먼저 내고 지주회장은 이를 존중하라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결국 자회사 임추위 역할을 어디까지 확대할 것이냐가 핵심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만약 은행 임추위가 지주사에 행장 후보군을 추천하는 수준이라면 상대적으로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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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자회사 임추위가 면접 등 후보 평가 과정에 직접 개입하거나 최종 후보를 지정해 지주 자추위에 상정하는 구도로 바뀔 경우 자회사 CEO의 인사권이 어디에 있느냐는 논란을 부를 가능성이 크다. 은행·증권·보험·카드 등을 한 지붕 아래 둔 금융지주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금융기관의 부실을 막고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는 차원에서 2000년 금융지주회사법을 통해 출범했다.
금융지주는 은행·증권·보험·카드 등 계열사 지분 100%를 갖고 금융지주 전체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경영전략을 추진한다. 분기마다 나오는 자산, 순이익 등 주요 실적도 금융지주 전체 차원에서 관리한다. 금융지주 실적과 주가 등이 지주 회장의 경영 능력 평가의 기준이 되고 연임 여부를 결정 짓는다. 은행에서 고객 정보 유출이나 불완전 판매 사태가 발생하면 은행장은 물론 금융지주 회장도 함께 책임을 진다. 2022년 한 금융지주 회장은 “과거 사모펀드 관련 사태의 책임을 지겠다”며 연임 도전을 포기하고 용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지주 회장과 은행장 등 주요 CEO를 따로 떼어놓고 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외부 출신 사외이사들이 참여한 임추위의 권한이 은행장 등 CEO 후보군을 수십 년 전부터 지켜봐온 지주 회장보다 커지면 ‘낙하산 인사’ 등 관치금융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금융지주의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은행 임추위의 권한이 커질수록 금융지주 자산, 순이익의 70%를 웃도는 은행장과 지주 회장 간 알력이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은행 지분 100%를 보유한 지주사가 은행 주주총회에서 은행장 선임, 연임에 반대할 경우 상황은 더 꼬인다. 이 때문에 그룹 경영권을 놓고 지주 회장과 지주 사장, 은행장 등이 맞붙은 2010년 ‘신한사태’나 은행 주전산기 교체 문제를 놓고 지주 회장과 은행장이 충돌한 2014년 ‘KB사태’ 등이 재발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 임추위가 행장 선임에 주도권을 쥐면 지주 회장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할 뿐”이라며 “새 은행장이 못마땅한 지주 회장이 은행 주총에서 반대표라도 던지면 예전처럼 또 다른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