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관점에서 봤을 때 ‘오디세이’의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중간 관리자다. 각 회사의 허리를 담당하는 부장, 차장, 과장과 같은 존재다. 오디세우스는 사실 트로이 전쟁을 마땅치 않게 생각하는 이타카의 성주다. 그는 전쟁에 나가기 전 아내인 페넬로페에게 이번 전쟁은 길 것이고, 자신은 아예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주군인 아가멤논이 뭔가에 미쳤다고 생각한다. 이 전쟁은 잘못된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장군은 자기 딸조차 제물로 바쳤어. 빠져나올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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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우스는 자신뿐 아니라 자신을 따르는 부하들 모두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의 충군들은 결국 모두 죽는다. 영화가 심금을 울리는 것은 오디세우스가 그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부하들과 자신의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점이다. 올바른 중간 관리자는 오디세우스처럼 윗선의 다소 불편한 명령이 있을 때 일단은 받아들이며 자신이 완충지대가 된다. 부하 직원의 희생을 최소화하는 차원 이상으로 그들을 살아내게 하고, 무엇보다 지금 하는 일의 사명감을 느끼게 한다. 동시에 자신이 하급자와 하등 다름이 없으며 늘 그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유대감과 연대 의식을 심어 준다. 중간 관리자는 말 그대로 중간에 끼인 부조리함을 일상의 역동성으로 바꿔 낼 줄 알아야 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알고 보면 무척 고독한 존재다.
‘오디세이’의 오디세우스를 보고 있으면 멜 깁슨이 나온 2002년 영화 ‘위 워 솔저스’가 떠오른다. 거기서 할 무어 중령은 1965년 베트남으로 데리고 가기 직전 부하들을 연병장에 모아놓고 비장한 연설을 한다. “우리가 전투에 투입되면 내가 맨 먼저 적진을 밟을 것이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적진을 나올 것이다. 단 한 명도 내 뒤에 남겨 두지 않을 것이다.” 무어든 오디세우스든 맨 먼저와 맨 마지막의 자기 철칙을 지키려고 무던히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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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지도자는 그래야 한다. 그러나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고대 그리스든, 1960년대 미국이든, 2020년대 현재 한국이든 위의 명령을 받들고 아랫사람을 지켜내는 일은 어쩌면 자기 몸을 불사르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와 동시에 나와 약속을 나눈 이들, 가장 소중한 존재를 지켜내야 하는 일이다. 이 세상 모든 샐러리맨과 그들 사이의 과장과 차장, 부장들이여. 당신들이 ‘오디세이’로 조금이나마 위로를 얻었기를 바랄 뿐이다.오동진 영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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