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화성에서 농사를 짓는 김윤자 씨(76)는 2년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농지 일부가 고속철도(KTX) 관련 사업 부지에 포함되는 일을 겪게 됐다. 김씨는 이 땅을 국가철도공단에 빌려줬고, 계약은 지난 4월 끝날 예정이었다. 그러나 공사가 늦어지면서 땅을 돌려받은 것은 넉 달가량 지난 8월이었다. 같은 달 정부에서 농지를 전수조사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김씨는 “국가사업 때문에 농사를 못 지은 것인데 농지 전수조사에서 불이익을 받을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농지 전수조사로 농촌 민심이 들끓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전수조사를 둘러싼 반발에 후속 대책을 발표하는 등 한발 물러섰지만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고령화와 가족농, 농지 임대차가 얽힌 농촌의 현실을 일률적인 잣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임차농 내보내는 지주들
28일 전북 완주군 등에 따르면 완주군 고산면 친환경쌀 생산단지 땅기운저탄소작목반의 경작지는 120㏊에서 고령화로 56㏊까지 줄어든 데 이어 전수조사 예고 뒤 올해만 약 10㏊가 추가로 이탈했다. 이 중 3분의 1은 지주가 직접 농사짓겠다며 임차농에게 경작 중단을 요구한 땅이고, 나머지는 고령 농민이 농지은행에 매도한 땅이다. 친환경쌀은 집단화된 농지에서 생산해야 유리해, 일부 이탈이 공동방제와 인증 유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ADVERTISEMENT
농민들은 농지 전수조사가 농촌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정책이라고 항변한다. 나이가 들어 직접 농사짓기 어려운 농민은 이웃 전업농에게 땅을 맡기고, 부모에게 농지를 물려받았지만 도시에서 생활하는 자녀는 지역 농민에게 경작을 맡기는 상황에서 경자유전 원칙만을 들이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전업농은 이런 땅을 빌려 영농 규모를 키웠고, 농지를 살 자금이 부족한 청년농 역시 임차농지에 의존해 왔다.
지주는 행정처분을 걱정해 땅을 돌려받으려 하고, 임차농은 하루아침에 농사지을 땅을 잃을 처지에 놓였다. 농사를 그만두려는 고령 농민은 농지를 팔아 노후자금을 마련하려 해도 가격이 더 떨어질까 걱정한다. 제주지방법원 경매에 나온 서귀포시 성산읍 농지(7090㎡)는 감정가 14억2996만4000원에서 올해 세 차례 유찰돼 다음 경매 최저가격이 34.3%인 4억9047만8000원까지 떨어졌다.
◇“투기와 생계형 임대차 구분해야”
정부는 ‘거래절벽’ 주장에 선을 긋는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16일 낸 설명자료에서 올해 농지 거래량이 지난해보다 2.2% 늘었고, 실거래가 하락률도 4.4%로 지난해(5.3%)보다 낮아졌다고 반박했다. 현장 체감과 전국 평균 통계 사이에 간극이 있는 셈이다.ADVERTISEMENT
반발이 커지자 농식품부는 위반이 확인돼도 곧바로 처분하는 것은 아니며, 중대한 위법이 아니면 1년의 자진 정비 기간을 주고 이후 성실 경작 시 처분명령을 3년간 유예할 수 있다고 한발 물러섰다.
김종호 호서대 법학과 교수는 “농촌은 이미 땅을 가진 사람과 실제 농사짓는 사람이 다른 구조가 광범위하게 자리 잡았다”며 “투기성 농지와 생계형·관행적 임대차를 같은 잣대로 다루면 결국 실제 농민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수원=정진욱/천안=강태우/전남광주=임동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