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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숲으로 찾아든 료지 이케다…세계 최초 작품을 선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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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숲으로 찾아든 료지 이케다…세계 최초 작품을 선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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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적 미디어 아티스트 료지 이케다가 제주 애월의 숲을 배경으로 관객 앞에 섰다. 검은색 스냅백에 검은색 후드 자켓을 입고 양손 검지에 검정색 반지를 낀 차림이다. 그의 뒤로는 푸른 자연이 펼쳐졌고, 앞으로는 열 개의 턴테이블이 놓였다. 어둠이 깔린 공간 속 환한 조명이 그를 비추자 일정한 박자의 전자음이 하나둘 쌓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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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2일 제주 애월읍 하우스오브레퓨즈에서 료지 이케다가 세계 최초로 선보인 퍼포먼스의 한 장면이다. 대중 앞에 좀처럼 나서지 않기로 유명한 작가가 24일 전시 개막을 기념하며 약 20년 만에 관객 앞에서 라이브 공연을 펼쳤다. 언론과 VIP를 대상으로 작업을 해설하는 대신 그가 선택한 자신만의 작품 설명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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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연주한 것은 분명 전자음악이지만, 해안가에 다다른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 혹은 거센 폭우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린다. 늦여름 목청껏 울어대는 매미 소리가 떠오르기도 한다. 인공적인 전자음에서 자연의 소리가 연상되는 아이러니한 순간이었다.

    이번 전시 ‘료지 이케다(Ryoji Ikeda)’에서도 이 같은 역설이 이어진다.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무엇을 표현하려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 작업에는 숫자와 형상이 빼곡하지만 정작 작가는 ‘설명’ 대신 ‘순수한 감상’을 권한다.


    지난해 7월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시에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도 그는 말을 아꼈다. “작품에 대해 묻지 말고 그냥 느끼라”는 취지였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을 때 질문하지 않고 경청하는 것처럼 작품도 보이는 모습 그대로 감상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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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작가는 작품에 대한 설명 대신 “공간이 작품의 영감이 된다”는 말을 남겼다. “마치 건축가처럼 공간에 어울릴만한 것들을 채워나간다”고 밝힌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장소의 특성을 반영한 작품을 선보였다. 작가는 전시장의 건축적 특성을 고려해 총 1000㎡ 규모의 전시 공간 디자인과 작품 시퀀스를 직접 구성했다.

    공간과 작품의 어우러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은 ‘슬리트(slit)’ 연작이다.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이 작품은 필름의 구멍을 통해 하우스오브레퓨즈의 중정을 들여다보이도록 조성했다. 유일하게 전시장 안으로 들어오는 자연의 빛을 활용한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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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우스오브레퓨즈 관계자는 “중정은 이 공간을 리노베이션할 때 가장 많은 영감을 준 장소”라며 “20년간 버려져 생명력이 꺼져 가던 건물에 유일하게 나무와 꽃과 이끼가 자라나며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곳”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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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료지 이케다의 전시가 열리는 하우스오브레퓨즈는 제주 애월읍 숲속에 방치된 건물을 개조해 만든 복합문화공간이다. 원래 목욕탕으로 사용하려다 버려진 1900평 규모의 공간은 이제 공연과 전시, 미식, 패션 등 다양한 경험이 모인 장소가 됐다.

    지난 2024년 에릭 오 감독의 대형 미디어 체험전에 이어 이번 전시가 이곳에서 열리는 두 번째 전시다. 래퍼 빈지노 등이 소속된 바나(Beasts And Natives Alike, BANA)의 김기현 대표가 이번 전시 콘텐츠 기획에 참여했다.

    일본 기후현 출신의 료지 이케다는 데이터를 시각화하는 아티스트다. 주로 수학적 개념과 코드로 미디어 작품을 만들고, 빛과 LED, 거울, 레이저 등의 장치로 관객이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전자음악을 만드는 작곡가이기도 한 작가는 시각과 청각을 뒤흔드는 작업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언어를 구축했다.



    이번 개인전 ‘료지 이케다(Ryoji Ikeda)’는 지금껏 국내에서 열린 작가의 전시 중 가장 많은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자리다. 전 세계 최초 공개되는 작품들을 비롯해 국내 관객에게 처음 소개되는 작업이 나온다.

    송신 오류로 지지직거리는 화면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백만 자리 숫자가 빼곡하게 들어찬 작품 ‘the irreducible’과 백만자리가 넘는 하나의 수를 35mm 영화 필름에 인쇄한 ‘디 이리덕서블(the irreducible) [nº13]’은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에서 제일 먼저 공개된다.

    사람의 유전체 데이터가 천장을 따라 흐르는 25m 길이의 통로형 작품 ‘더 크리티컬 패스(the critical paths)’을 비롯해 단백질 분자 구조 데이터가 바닥의 화면에서 떠오르는 ‘데이터.텍처(data·tecture) [n°1];’ 등이 국내 관객과 처음 만난다. 전시는 내년 1월 18일까지, 입장료는 성인 2만3000원.

    제주=강은영 기자 qboo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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