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일 해 질 무렵인 저녁 7시 서울 인현동. ‘스티커’ ‘봉투’ ‘약’이라고 적힌 빛바랜 간판 아래로 빨갛고 파란 플라스틱 의자가 늘어섰다. 폭 2m 남짓한 인현시장 골목에서는 중년 남성과 젊은 커플이 작은 테이블을 둘러싸고 뒤섞여 소주잔을 기울였다.
“오, 또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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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주인이 낯익은 손님을 발견하고 환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한 남성은 “추석이라 당분간 못 오니 와야지”라고 한 채 웃으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테이블에서도 주인과 단골이 서로 안부를 묻고 술잔을 채웠다. 정장을 입은 인근 직장인들이 퇴근 후 찾은 골목의 풍경이었다.

시장 밖으로 몇십m만 나가자 손님들의 얼굴이 달라졌다. 오래된 약국과 인쇄업체 간판 옆으로 빨강·초록 네온사인이 번쩍였다. 타코 가게 앞에는 1020대가 줄을 섰고 인근 바와 식당에서는 젊은 외국인들이 맥주를 마셨다. 빛바랜 간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었다. 시장 안에서는 중년 단골이 소주잔을, 골목 밖에서는 젊은 한국인과 외국인이 맥주잔을 들었다.
인현동 상권은 오래된 가게를 밀어낸 자리에 새 점포가 들어서는 방식으로 바뀌지 않았다. 인쇄·제본업체와 노포, 낡은 차양을 그대로 둔 채 카페와 바, 이자카야가 골목 사이사이에 들어섰다. 오래된 간판과 복잡한 골목은 젊은 방문객이 사진을 찍고 숨은 가게를 찾아다니게 하는 배경이 됐다.인현시장은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 사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영화 전단을 찍던 인쇄소가 모인 충무로 인쇄골목은 1980년대 을지로의 인쇄업체들이 옮겨오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지금도 낮은 건물 사이에 인쇄·제본·스티커 업체가 촘촘히 자리한다. 서울시는 이 일대를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수십 년 된 단골의 술자리와 외국인 관광객의 저녁 식사는 이날도 같은 골목에서 이어졌다. 오래된 시장을 걷어내지 않고 그 사이로 새 가게가 스며들면서 서로 다른 세대의 손님이 인현동에 모이고 있다.
강윤지 기자 yuntor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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