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6,971.35

  • 133.31
  • 1.95%
코스닥

894.29

  • 38.38
  • 4.48%
1/2

"추석 상품권 받았을 뿐인데…" 30년 다닌 직장서 '날벼락' [김대영의 노무스쿨]

페이스북 노출 0

핀(구독)!


뉴스 듣기-

지금 보시는 뉴스를 읽어드립니다.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추석 상품권 받았을 뿐인데…" 30년 다닌 직장서 '날벼락' [김대영의 노무스쿨]

주요 기사

    글자 크기 설정

    번역-

    G언어 선택

    • 한국어
    • 영어
    • 일본어
    • 중국어(간체)
    • 중국어(번체)
    • 베트남어
    회사 살림을 맡는 총무팀장이 30년 넘게 다닌 직장에서 하루 아침에 해고됐다. 임원의 유흥비를 협력업체가 대신 내도록 하고 허위 도급비 청구를 알면서도 회사에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경찰 수사에선 일부 사안에 대해 '무혐의' 판단을 받았지만, 법원은 해고가 정당하다고 봤다. 예산과 비품, 협력업체를 관리하면서 회사 자산을 지켜야 했던 총무팀장은 그렇게 30년 직장을 떠났다.
    임원 유흥비, 협력업체가 내도록 관여
    1994년 7월 입사한 A씨는 2014년 1월 회사 총무팀장을 맡았다. 2019년 2월 인재개발팀 등에서 근무하던 그는 지난해 2월 징계해고됐다. 회사가 내세운 징계사유는 모두 여섯 가지였다.

    징계사유 중 하나는 임원의 유흥비 처리 방식이다. A씨는 임원·팀원과 공모해 협력업체를 상대로 유흥비를 대신 내게 한 뒤 해당 금액에 30%를 얹어 기념품을 산 것처럼 허위 품의를 거친 다음 비용을 처리한 것으로 조사됐다. 2016년 12월부터 2018년 9월까지 11차례에 걸쳐 이 같은 방식으로 회사에 약 3605만원의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ADVERTISEMENT


    법인카드 대금도 비슷한 방식으로 처리했다고 회사 측은 판단했다. 임원이 회사에 현금으로 돌려줘야 할 법인카드 사용액을 협력업체가 대신 내게 했다. 이후 회사에선 협력업체에 대납액보다 30% 많은 돈을 기념품 구매비인 것처럼 꾸며 지급했다는 것이다. 회사는 이 과정에서 A씨가 팀원에게 현금 처리를 지시한 것으로 파악했다.

    협력업체에서 명절 상품권을 받은 일도 징계사유에 포함됐다. A씨는 2014년께부터 설·추석 때 협력업체에서 제공한 백화점 상품권을 팀원을 통해 건네받았다.

    ADVERTISEMENT


    회사 비용으로 재무담당자 집에 에어컨을 설치하고, 팀원이 회사 비용으로 협력업체에서 물품·금품을 제공받은 데 대한 관리책임 등도 문제로 지적됐다. 에어컨 36대분에 이르는 비용을 지급하고도 실제 회사엔 30대만 설치됐다는 내용도 징계사유에 포함됐다.
    협력업체 허위 도급비 '7억' 눈감아주기도
    핵심 징계 사유는 협력업체의 도급비였다. 회사는 협력업체 대표가 2011년 6월부터 2018년 11월까지 실제 일하지 않은 사람을 근무한 것처럼 꾸며 6억9700만원을 받아간 사실을 A씨가 알면서도 묵인한 것으로 봤다.

    징계해고된 A씨는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냈다. 경기지방노동위원회는 도급비 문제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 가지 징계사유를 인정했다. 반면 중앙노동위원회는 여섯 가지 징계사유를 모두 인정했다.


    A씨는 이에 불복했다. 법인카드 대금을 현금으로 처리할 것을 팀원에게 지시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관련 예산이 이미 확보돼 있었던 만큼 굳이 협력업체를 동원해 현금을 마련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경찰 수사에서도 '혐의없음'으로 결론 난 사안을 다시 징계사유에 포함해 부당하다는 논리도 폈다.

    도급비 문제에 관해서도 책임을 다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2018년 10월께 감사팀장이 관련 내용을 물었을 당시 문제가 없다고 답했지만 이후 협력업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허위 인원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해당 인원을 빼도록 했고 같은 해 11월께부터 관련 도급비가 더 이상 청구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뒤늦게 문제를 알았더라도 즉시 시정했기 때문에 총무팀장으로서 해야 할 조치를 다했다는 것이다.
    법원 "경찰서 무혐의, 징계 부정 근거 안 돼"
    법원에선 쟁점이 두 갈래로 좁혀졌다. 경찰이 형사사건에서 혐의가 없다고 판단한 사안을 회사가 별도로 징계할 수 있는지, 허위 도급비 청구 사실을 뒤늦게 파악한 뒤 앞으로의 청구만 중단시키면 관리자로서 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 있는지였다.

    ADVERTISEMENT


    서울행정법원 제14부(재판장 이상덕)는 A씨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 중노위 판단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경찰의 '혐의없음' 판단에 대해선 "징계사유를 부정하는 근거가 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경찰이 불송치한 이유는 A씨가 지시하지 않았다고 봤기 때문이 아니었다. 해당 임원에게 회삿돈을 가져가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그러면서도 불송치이유서에 '회사 사칙에 따라 징계할 수 있는지는 별개'라는 취지의 내용을 명시했다.

    ADVERTISEMENT


    재판부는 "형사처벌과 징계처분은 그 기초, 목적, 내용, 대상 등이 서로 달라 그 판단을 달리 할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형사사건에서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해서 회사 내부 규정을 어긴 행위도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는 판단이다.

    법인카드 대금 처리와 관련해서도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현금 처리를 지시받았다는 팀원의 진술을 단지 "관련 예산이 확보돼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배척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A씨가 법인카드 대금의 30%를 더한 품의서에 결재했고 임원 유흥비도 같은 방식으로 협력업체가 대신 부담했던 만큼 '허위 품의'라는 점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도급비 문제 알면 알렸어야…해고 정당"
    명절 상품권에 관한 징계사유도 인정됐다. 중노위는 A씨가 상품권을 분배하는 등 사용에 가담한 사실을 인정했다. 상품권을 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 나눠줬더라도 협력업체가 제공한 상품권을 사용하는 과정에 가담했다는 사실 자체는 달라지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법원도 이 같은 중노위 판단을 받아들였다.

    ADVERTISEMENT


    도급비 문제에선 '총무팀장'이란 A씨의 지위가 판단 근거로 제시됐다. 법원은 허위 인원을 발견한 뒤 이후 추가 청구를 막았다는 것만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미 지급한 도급비에 대해선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A씨가 처음 감사팀장에게 "문제가 없다"고 답한 뒤 실제 허위 청구 사실을 발견했다면 이를 다시 회사에 알렸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재판부는 "A씨가 감사팀장과 통화 당시엔 허위 인원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이후 도급비 편취라는 중대한 사실을 알게 됐다면 협력업체에 관한 지출을 관리하는 총무팀장으로서 '문제가 없다'고 한 본인의 잘못된 답변을 바로잡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 노무법인 대표노무사는 "형사절차에서 관련 혐의가 인정되지 않았다고 해서 회사 내부의 징계책임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라며 "기업 인사노무 담당자는 수사 결과만을 근거로 징계 여부를 판단하는 것보다 취업규칙·사내 규정 위반 여부를 비롯해 담당자의 직무상 책임, 사후 조치를 함께 확인하고 징계사유를 구체적으로 정리해둬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



    실시간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