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디지털단지의 한 정보기술(IT) 기업에서 일하는 30대 개발자 A씨는 "업무 시작 시간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을 켜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같은 시간에 처리하는 일이 늘었다"면서도 "AI가 만든 결과물을 그대로 쓰기는 어렵다"고 털어놨다. 오류를 확인하고 손보는 과정은 여전히 A씨 몫이다. A씨는 "주변 회사에서도 경영난 때문에 사람을 줄였단 얘긴 들었지만 AI를 쓰면서 개발자를 대놓고 내보냈단 얘긴 못들어봤다"고 했다. AI가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지만 '사람을 대체하는 중'인 것으로 단언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AI는 업무 기본…직장 내 연차도 '흔들'
A씨와 같이 AI를 업무 도구로 쓰는 모습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최근 발간한 '생성형 AI의 노동시장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 재직자 중 76.1%는 생성형 AI를 활용해 업무를 처리했다. 조사는 화이트칼라 중심인 57개 직업 재직자 1512명을 대상으로 지난 5월6~19일 온라인을 통해 진행됐다. AI가 가장 먼저 파고든 업무는 '찾고, 쓰고, 정리하는 일'이었다. AI 고활용 과업을 1~3순위로 나열하도록 하자 자료 조사 60%, 문서 작성 41%, 데이터 분석·시각화 25.5%, 기획·전략 수립 18.7% 순을 나타냈다. 직업 하나가 통째로 AI에 넘어가는 현상은 두드러지지 않았다. 대신 직장 내 개별 업무를 하나씩 대체하는 흐름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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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변화는 직장 내 '연차의 공식'도 흔들고 있다. 30년 경력의 임원이 입사한 지 6개월 된 20대 직원에게 챗GPT로 제안서 쓰는 법을 배웠다는 사연이 앞서 직장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인적자원(HR) 플랫폼 딜이 리멤버에 의뢰해 직장인 1000명을 조사한 결과 82.4%는 AI 역량을 커리어 성장의 핵심 요소로 봤다.
AI 역량은 '남는 시간'을 만들어냈다. 예정처 조사에선 AI 사용자 56.6%가 "실제 업무시간이 줄었다"고 답했다. AI를 쓰기 전 1주간 업무 처리량을 100으로 봤을 때 사용 이후 평균은 121.2를 기록했다.
CHRO 80% "오류 수정 업무 늘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업무 속도가 빨라졌다고 해서 그만큼 일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AI가 결과물을 만들어낼수록 이를 검증하고 판단하는 또 다른 업무가 생겨서다. IBM 기업가치연구소(IBV)가 21일(현지시간) 공개한 조사를 보면 최고인사책임자(CHRO) 71%는 'AI 결과물을 감독·검증하고 필요할 경우 이를 뒤집을 수 있는 능력'을 핵심 역량으로 꼽았다. CHRO 1500명·근로자 8800명을 지난 4~6월 조사한 결과다. ADVERTISEMENT
CHRO 중 80%도 AI 도입으로 추천 결과 검증, 오류 수정, 맥락 제공, 예외 처리와 같은 업무가 새로 생겼다고 털어놨다. 근로자 가운데 42%는 "AI 때문에 일이 늘거나 추가 업무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60%는 AI 사용으로 자신의 역량이 약화될 가능성을 우려했는데, 특히 '비판적 사고력'이 떨어지진 않을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가장 높았다. AI를 많이 쓸수록 오히려 결과물을 의심하고 걸러낼 능력이 중요해진 것이다.
국내 상황도 다르지 않다. 예정처 조사에선 '경험·지식·판단력 같은 인간 고유 능력이 더 중요해졌다'는 응답이 39.1%로 '덜 중요해졌다'는 응답(20.3%)을 웃돌았다. AI 대체 위협을 높게 느낀 비율은 24.5%였지만 같은 직업군의 인력·채용이 줄었다는 응답은 15.3%에 그쳤다. 62.6%는 '변화가 없다'고 답했다. 생산성 향상과 인력 대체가 반드시 같은 속도로 움직이진 않았다.
'AI 도입=고용 감소' 뚜렷한 증거 없어
직업마다 AI가 미치는 강도도 달랐다. AI 사용에 따른 평균 생산성 증가율을 '노출도'로 계산한 결과 직업별 개선폭은 4~64.7%로 벌어졌다. IT 관련 전문가, 연구직, 금융·법률 전문가 등이 고노출 직업군에 포함됐다. 여기서 노출도는 AI가 해당 직업의 생산성을 얼마나 변화끌어올렸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노출도가 높다고 해서 고용이 감소하진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예정처가 2018년 1월~올해 6월 고용행정통계와 2018년 상반기~지난해 하반기 지역별고용조사를 분석한 결과 AI 고노출 직업의 고용·임금에 생성형 AI가 통계적으로 유의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것. 20대 청년 고용도 마찬가지였다. 청년 채용은 중저·저노출 직업과 비교할 경우 유의한 양(+)의 효과가, 비노출 직업과 비교하면 유의하지 않은 음(-)의 효과가 나왔다. AI가 업무를 바꿔놓은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 일자리를 밀어냈다고 볼 수 없다는 얘기다.
통계 분석을 종합하면 '생성형 AI가 노동수요를 감소시킨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화이트칼라 청년 고용 부진도 AI 노출도가 높을수록 더 크게 나타나는 흐름은 포착되지 않았다. 오히려 팬데믹 이후 산업 경기 둔화로 설명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예정처는 "증거 부족이라는 결론은 어디까지나 잠정적인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며 기술 적용의 시차와 미시적 충격을 계속 추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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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AI 노출도는 위험 판정지표가 아닌 관찰대상 선별지표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노출도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고용위험을 단정하기보다 실제 AI 활용과 고용·채용·소득 변화를 확인하고 이상 징후가 반복될 때 심층조사, 고용영향평가, 직무전환·전직·소득지원으로 대응 강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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