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세계 유조선 22%가 ‘그림자 선단’…흔들리는 글로벌 해운시장
세계 해운시장이 사실상 두 개로 쪼개지고 있다는 경고가 나왔습니다.
전 세계 18개 주요 해운국의 해운 당국이 참여하는 ‘협의해운그룹’, CSG는 8일 공동성명을 내고 이른바 ‘병렬 시스템’의 등장으로 국제 해운시장이 이중 구조로 변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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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G에는 한국과 일본, 영국, 독일, 캐나다, 덴마크 등 주요 해운국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들 국가의 선박은 전 세계 선박의 약 20%를 차지합니다.
CSG가 특히 우려한 것은 이른바 ‘그림자 선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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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이란 등에 대한 제재가 확대되면서 기존 서방 중심의 보험과 금융, 선박관리 체계를 우회해 원유 등을 운송하는 별도의 선박 네트워크가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S&P글로벌에 따르면 그림자 선단과 관련된 유조선은 현재 세계 유조선 선대의 약 22%를 차지합니다. 상당수가 통상적인 보험이나 안전·투명성 체계의 바깥에서 운항하고 있습니다.
같은 바다에서 한쪽 선박들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보험과 안전 기준을 따르지만, 다른 선박들은 이 체계 밖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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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인 해운시장에서는 선주책임보험인 P&I를 비롯해 선박보험과 재보험, 무역금융, 선급, 항만 등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하지만 충분한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그림자 선단에서 충돌이나 원유 유출 사고가 발생하면 누가 피해를 배상할 것인지 불분명해질 수 있습니다. 결국 사고가 발생한 국가나 항만이 비용을 떠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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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오만에서는 이런 문제가 현실화됐습니다.
러시아산 원유 약 80만배럴을 싣고 있던 유조선 ‘캐롤라인 베젠기’가 지난 6월 폭발로 손상된 뒤 오만 인근에서 좌초했습니다. 이후 원유가 계속 유출되면서 오만 당국이 파악한 기름띠 면적만 약 390㎢까지 확대됐고, 결국 오만 본토 해안까지 오염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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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 정부는 직접 방제 작업에 나섰습니다. 악천후로 선박 접근이 어려워지자 공군까지 동원해 전문가와 장비를 사고 선박으로 운송했습니다.
그런데 해당 선박은 공개적으로 확인되는 보험사가 없고 소유구조 역시 불투명합니다. 국제적인 유류오염 보상체계도 이번 사고가 전쟁 행위로 판단될 경우 보상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국 오만 정부가 우선 자국 해안과 해양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비용을 투입하고 있지만, 향후 선주나 보험사 등으로부터 얼마나 돌려받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합니다.
이 같은 지정학적 위험은 정상적으로 운항하는 선박의 보험료까지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재보험사 하우든리에 따르면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의 전쟁위험 보험료는 전쟁 이전 선박가치의 약 0.25%였습니다. 하지만 지난 3월 최대 3%까지 상승했고, 7월에는 3~10% 수준까지 오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1억달러짜리 유조선을 기준으로 하면 전쟁 전 한 차례 운항에 약 25만달러였던 보험료가 300만~1000만달러까지 뛸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지난 8월 11일 기준 국제해상보험연합에 따르면 2월 말 중동 전쟁 발발 이후 약 70건의 해상 사고와 관련한 보험금 청구 규모는 15억~20억달러로 추산됐습니다.
보험료와 운임 상승은 결국 기업들의 원자재와 물류비 증가로 이어집니다. 기업들이 늘어난 비용을 제품 가격에 전가한다면 소비자 물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호르무즈해협에서 실제로 얼마나 많은 원유가 움직이고 있는지 파악하기조차 어려워졌다는 점입니다.
선박정보업체 윈드워드에 따르면 지난 7월 29일 하루 동안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한 선박 20척 가운데 5척이 정상적인 자동선박식별장치, AIS 신호 없이 운항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 때문에 실제 원유 물동량과 선박 추적 데이터 사이에도 상당한 차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페르시아만에서 실제 수출되는 원유가 하루 약 1500만~1600만배럴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반면 일반적인 선박 추적 데이터에서 확인되는 물량은 약 1000만배럴에 불과했습니다.
공식적으로 파악되는 것보다 실제 원유가 더 많이 수출되고 있다는 점 자체는 긍정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시장이 실제 공급량을 정확하게 알기 어려워졌다는 것입니다.
선박 추적 데이터만 보면 공급이 실제보다 크게 줄어든 것으로 오인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공급 부족 우려가 과도하게 반영되면서 유가에 불필요한 지정학적 프리미엄이 붙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실제 공급 차질이 발생했을 때 시장이 이를 뒤늦게 인식하면서 유가가 갑자기 급등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정유사와 원유 수입국 역시 언제 얼마나 많은 원유가 들어오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워집니다. 결국 평소보다 많은 재고를 확보하거나 더 비싼 대체 원유를 계약해야 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다크 크로싱’의 증가는 당장의 원유 공급을 유지해주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동시에 원유시장의 투명성을 떨어뜨리고 가격 변동성과 기업들의 위험관리 비용을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호르무즈해협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홍해와 바브엘만데브해협의 안보 불안으로 상당수 선박이 수에즈운하 대신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가는 장거리 항로를 선택했고, 파나마운하에서도 가뭄으로 선박 운항이 제한된 바 있습니다.
다만 CSG에 미국과 중국 등이 빠져 있다는 점에서 이번 공동성명이 실제 국제 해운질서를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합니다. 그럼에도 세계 해운시장이 지정학적 충격과 제재로 점점 더 분절되고 있다는 위험을 다시 한번 부각했다는 의미는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골드만삭스는 불과 3개월 만에 국제유가 전망을 다시 상향 조정했습니다.
여름까지만 해도 중동 지역의 긴장이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를 반영해 전망치를 낮췄지만, 호르무즈해협을 둘러싼 충돌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으면서 전망을 다시 바꾼 것입니다.
골드만삭스의 원자재 리서치 책임자인 단 스트루이븐은 페르시아만 지역의 원유 공급 차질이 장기화할 경우 브렌트유가 배럴당 120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특히 2027년 페르시아만 지역의 평균 원유 생산량이 전쟁 이전보다 하루 400만배럴 낮은 수준에 머물 경우 브렌트유가 배럴당 120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해상 운송을 겨냥한 공격까지 더욱 거세진다면 유가의 추가 상승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입니다.
2. 5000억원짜리 반도체 장비 선점전
ASML 주가가 이날 2% 이상 상승했습니다.주요 고객사들이 차세대 반도체 장비인 High-NA EUV를 실제 양산에 적용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잇달아 내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도체는 웨이퍼 위에 아주 미세한 회로를 그려서 만듭니다. 이때 빛을 이용해 회로를 그려주는 장비가 노광장비입니다.
ASML은 현재 최첨단 반도체 생산에 사용되는 EUV 노광장비를 사실상 독점적으로 공급하고 있습니다. High-NA EUV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발전한 차세대 장비입니다.
쉽게 말하면 기존 EUV보다 더 작고 정밀한 회로를 그릴 수 있는 장비입니다.
회로를 미세하게 만들수록 같은 면적에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넣을 수 있기 때문에 반도체 성능을 높이고 전력 소비를 줄이는 데 유리합니다.
특히 AI 반도체의 성능이 계속 높아지고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초미세 공정을 구현할 수 있는 노광기술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습니다.
주요 반도체 업체들은 이제 High-NA EUV를 단순히 시험하는 단계를 넘어 실제 양산에 사용하기 시작했거나 구체적인 양산 일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가장 앞서 있는 곳은 인텔입니다.
인텔 파운드리는 이미 High-NA EUV를 일부 반도체 양산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장비 인증과 테스트, 연구개발, 실제 생산 등을 모두 합쳐 지금까지 High-NA EUV로 처리한 웨이퍼가 100만장을 넘어섰습니다.
삼성전자는 2028년까지 D램 대량 양산에 ASML의 High-NA EUV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D램 양산에 High-NA EUV를 사용하는 것은 업계 최초가 될 예정입니다.
이는 High-NA EUV 시장이 첨단 로직 반도체에서 메모리 반도체까지 확대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SK하이닉스도 2028년 High-NA EUV 공정을 D램 양산에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TSMC는 2030년부터 첨단 공정의 대량 양산에 High-NA 기술을 사용할 계획입니다. 특히 AI 반도체의 트랜지스터 구조가 갈수록 복잡해지면서 향후 High-NA EUV가 필요한 공정 단계 역시 점차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다만 High-NA EUV에는 중요한 단점도 있습니다.
더 미세한 회로를 그릴 수 있는 대신 한 번에 노광할 수 있는 영역은 기존 EUV보다 작습니다. 쉽게 말하면 더 정밀하게 볼 수 있지만 시야는 좁아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크기가 큰 AI 반도체를 만들 때는 회로의 한쪽을 먼저 노광하고 다른 부분을 다시 노광한 뒤 두 패턴을 정확하게 이어 붙여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스티칭’입니다.
문제는 여러 번 나눠 노광하면 공정이 복잡해지고 생산성에도 부담이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도체 업계가 추진하고 있는 것이 포토마스크 자체를 크게 만드는 것입니다.
포토마스크는 쉽게 말해 반도체 회로의 ‘원본 도면’입니다. 회로 패턴이 새겨진 포토마스크에 빛을 쏘아 그 패턴을 웨이퍼 위로 옮기는 방식입니다.
반도체 업계는 수십 년 동안 6인치 포토마스크를 사용해왔지만 장기적으로 이를 12인치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마스크가 커지면 더 큰 회로 패턴을 담을 수 있기 때문에 High-NA EUV의 좁은 노광 영역에서 발생하는 제약을 줄일 수 있습니다.
가격도 상당합니다.
기존 EUV인 NXE 계열은 최근 판매 실적을 기준으로 대당 약 2억~2억5000만유로, 우리 돈으로 약 3000억~4000억원 수준입니다.
High-NA EUV인 EXE 계열은 이보다 훨씬 비쌉니다. 초기 장비는 대당 약 3억5000만유로 안팎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환율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한 대에 약 5000억~6000억원에 달하는 장비입니다.
High-NA EUV 도입은 중국과의 첨단 반도체 기술 격차를 유지하는 중요한 장벽이 될 수도 있습니다.
중국이 아직 자체 EUV 생태계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인텔은 이미 High-NA를 양산에 적용했고 삼성전자와 TSMC도 도입 일정을 제시했습니다. 중국이 기존 EUV를 따라잡기도 전에 선두 업체들이 한 세대 앞선 High-NA EUV로 이동하고 있는 셈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공급입니다.
ASML이 High-NA EUV를 독점 생산하고 있지만 ASML 역시 마음대로 생산량을 늘릴 수는 없습니다. EUV 빛을 다루는 초정밀 거울 등 핵심 광학부품을 독일 자이스(ZEISS) 같은 극소수 업체만 생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와 TSMC, 인텔, SK하이닉스가 모두 High-NA 장비를 원한다고 해도 단기간에 대량 공급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결국 제한된 장비 한 대의 생산성을 얼마나 높이느냐가 중요해집니다. 12인치 대형 포토마스크가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장비를 누가 먼저 확보하느냐만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High-NA EUV는 5000억원짜리 장비를 사서 공장에 설치한다고 바로 생산을 시작할 수 있는 장비가 아닙니다.
삼성전자나 TSMC, 인텔, SK하이닉스가 설계한 회로가 High-NA 장비에서 실제 원하는 모양으로 구현되도록 ASML과 수년 전부터 공정을 맞춰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장비를 조립하고 정밀하게 보정한 뒤 실제 웨이퍼를 반복적으로 생산하면서 해당 반도체 공정에 맞춰야 합니다.
ASML은 새로운 High-NA 장비가 양산에 사용할 만큼 성숙했음을 입증하는 데 통상 12~18개월이 걸린다고 설명합니다. 완전히 새로운 공정까지 개발한다면 2년 이상 걸릴 수도 있습니다.
결국 High-NA 경쟁에서는 누가 장비를 먼저 확보하느냐와 함께 누가 먼저 수율을 안정시키고 실제 양산에 들어가느냐가 핵심 경쟁력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3. 오라클, 6380억달러 계약 쌓였다…AI 투자의 반전 시작되나
오라클 주가가 최근 반등하고 있습니다.올해 오라클 주가를 짓눌렀던 가장 큰 문제는 막대한 AI 투자였습니다.
오라클은 AI 데이터센터를 짓기 위해 엄청난 자금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돈은 지금 나가지만 여기서 발생하는 매출은 나중에 들어오는 구조입니다.
여기에 부채 부담까지 커지면서 시장에서는 오라클이 AI에 지나치게 많은 돈을 투자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AI 투자 부담은 여전히 크지만 기존 소프트웨어 사업이 예상보다 잘 버티고 있고, AI와 클라우드 사업 역시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시장이 다시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오라클이 이미 확보한 막대한 계약입니다.
오라클의 RPO, 즉 잔여계약가치는 6380억달러입니다.
고객과 계약은 이미 맺었지만 아직 매출로 인식되지 않은 금액입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오픈AI와 연결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오라클의 수주잔고 가운데 오픈AI와 연결된 부분이 약 3000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라클 입장에서는 엄청난 기회입니다.
오픈AI가 챗GPT를 비롯한 AI 서비스를 확대할수록 더 많은 GPU와 데이터센터가 필요합니다. 오라클은 이러한 컴퓨팅 파워를 제공하면서 매출을 올릴 수 있습니다.
오픈AI가 성장하면 오라클의 AI 클라우드 사업 역시 함께 커질 수 있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동시에 위험이기도 합니다.
오픈AI의 성장 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앤트로픽 같은 경쟁업체에 시장점유율을 빼앗길 경우 오라클 역시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오픈AI는 오라클의 가장 큰 성장 기회 가운데 하나인 동시에 상당한 고객 집중 위험을 의미합니다.
오라클의 기존 데이터베이스 사업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데이터베이스는 기업의 핵심 정보를 저장하고 관리하는 소프트웨어입니다.
쉽게 말하면 데이터베이스는 기업의 정확한 ‘원본 장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AI는 이 장부를 읽고 분석하고 답을 만들어주는 두뇌에 가깝습니다.
예를 들어 은행 고객의 현재 계좌잔액이 10만달러라고 했을 때 고객이 1만달러를 송금하면 잔액은 즉시 9만달러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처럼 실시간 원본 기록을 정확하게 저장하고 관리하는 것이 데이터베이스입니다.
AI는 이런 데이터를 장부처럼 정확하게 보관하는 기술이라기보다,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정보를 가져와 분석하고 요약하고 예측해 사람이 이해하기 쉬운 답을 만들어주는 데 강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AI가 발전한다고 데이터베이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두 기술이 연결되는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라클은 여기에 멀티클라우드 전략까지 추진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 등 다른 회사의 클라우드를 사용하더라도 그 안에서 오라클 데이터베이스를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기업이 어느 클라우드를 선택하든 오라클의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하도록 만들겠다는 전략입니다.
이 멀티클라우드 AI 데이터베이스 사업은 여러 지역에서 400%가 넘는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다만 오라클이 풀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결국 데이터센터입니다.
오픈AI 등과 아무리 큰 계약을 맺어도 실제 서비스를 제공할 데이터센터가 없다면 매출로 연결할 수 없습니다.
오라클은 현재 막대한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고 있지만 일부 프로젝트에서는 전력과 가스 공급 등 기반시설 문제로 건설이 지연될 위험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프로젝트 주피터입니다.
이 프로젝트 역시 인프라와 공급망 문제를 겪고 있으며 추가적인 지연을 막기 위한 계획 변경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월가에서도 오라클의 AI 성장 가능성 자체에는 대체로 긍정적이지만 막대한 투자가 언제 실제 현금으로 돌아올지를 놓고 의견이 갈리고 있습니다.
번스타인은 오라클에 ‘아웃퍼폼’ 의견과 목표주가 325달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OCI가 전년 대비 93% 성장하는 등 AI 클라우드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는 만큼 지금의 대규모 데이터센터 투자가 결국 높은 매출 성장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제프리스도 ‘매수’ 의견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최근 목표주가는 320달러에서 290달러로 낮췄지만 AI 투자비와 부채, 현금흐름에 대한 우려가 이미 주가에 상당 부분 반영됐다고 평가했습니다.
반면 모건스탠리는 목표주가를 207달러에서 210달러로 높였지만 투자의견은 ‘동일비중’을 유지했습니다.
오라클의 클라우드 매출이 이번 분기에 약 63%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는 등 AI 수요 자체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만 막대한 데이터센터 투자비와 부채 부담, 데이터센터 건설 지연 가능성을 좀 더 확인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오는 10일 발표되는 오라클 실적에 대해 월가는 약 191억달러의 매출과 1.74달러의 조정 주당순이익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실적에서 더 중요한 숫자는 클라우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오라클은 클라우드 매출이 58~64%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고 모건스탠리는 63% 성장을 전망하고 있습니다.
결국 시장이 확인하려는 것은 오라클이 확보한 6380억달러의 막대한 계약이 실제 클라우드 매출로 얼마나 빠르게 전환되고 있느냐입니다.
여기에 막대한 데이터센터 투자로 악화된 현금흐름까지 개선되는 조짐이 나타난다면 오라클의 AI 투자에 대한 시장의 평가도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4. 챗봇 넘어 스스로 일하는 AI로…젠슨 황 “AGI가 왔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 CEO가 “AGI가 도래했다(AGI has arrived)”고 선언했습니다.황 CEO는 오픈AI가 새로운 AI 모델 GPT-6 Astra를 공개한 뒤 자신의 소셜미디어 X에 이처럼 밝혔습니다.
그는 “챗GPT에서 아스트라까지 4년”이라며 불과 몇 년 만에 AI의 능력이 급격하게 발전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AGI는 범용인공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의 약자입니다. 특정 분야에 한정되지 않고 사람처럼 다양한 종류의 문제를 이해하고 배우고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AI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AGI와 AI 에이전트는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AI 에이전트는 AI의 지능 수준이 아니라 AI가 일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사람이 목표를 주면 AI가 단순히 답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단계를 스스로 실행하는 것입니다.
반면 AGI는 AI가 얼마나 범용적으로 똑똑한지를 나타내는 개념입니다. 쉽게 말하면 AI 에이전트가 ‘스스로 일하는 방식’이라면 AGI는 ‘지능의 수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픈AI의 아스트라가 주목받는 이유도 이 두 가지가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스트라는 단순히 질문에 답하는 것을 넘어 컴퓨터를 직접 사용하면서 검색과 소프트웨어 개발, 데이터 분석 등 여러 단계의 업무를 수행하는 능력이 크게 향상됐습니다.
성능도 크게 높아졌습니다. 오픈AI에 따르면 Astra는 새로운 문제 해결 능력을 측정하는 ARC-AGI-3에서 99.9%, 고난도 수학 평가인 FrontierMath Tier 4에서 98%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아스트라를 정말 AGI라고 부를 수 있느냐를 놓고는 논란이 상당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AGI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합의된 정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갖춰야 AGI라고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 자체가 없습니다.
AI 연구자인 게리 마커스 역시 황 CEO가 AGI에 대한 명확한 정의나 이를 입증할 기준을 제시하지 않은 채 “AGI가 왔다”고 선언했다며 비판했습니다.
AI가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것과 실제 세상에서 사람처럼 안정적으로 일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반론도 있습니다.
수학이나 코딩 시험에서는 뛰어난 성적을 거두더라도 몇 시간 또는 며칠 동안 이어지는 복잡한 업무를 실수 없이 수행할 수 있는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지, 자신의 실수를 스스로 발견하고 수정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AI의 능력이 강해지면서 안전 문제 역시 커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사이버 분야입니다.
아스트라는 프로그램을 분석하고 보안 취약점을 찾아내는 능력이 이전 모델보다 크게 높아졌습니다.
보안 전문가가 사용한다면 취약점을 미리 발견하고 고치는 데 유용하지만 공격자가 사용하면 상황은 정반대가 됩니다.
강력해진 AI를 이용해 새로운 보안 취약점을 찾아내거나 해킹 방법을 개발하고 사이버 공격의 여러 단계를 자동화하는 데 악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픈AI가 아스트라의 사이버 관련 위험을 자체 안전평가에서 처음으로 ‘최고 위험(Critical)’ 수준으로 분류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이 있습니다. 왜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가 지금 AGI의 도래를 강조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황 CEO에 따르면 아스트라를 훈련하는 데 10만개가 넘는 엔비디아 그레이스 블랙웰 시스템이 사용됐고 앞으로 추가로 40만개의 엔비디아 GPU가 가동될 예정입니다.
컴퓨팅 수요 측면에서는 AI가 얼마나 똑똑해지느냐뿐 아니라 얼마나 많은 일을 직접 수행하느냐도 중요합니다.
기존 챗봇은 사람이 질문하면 답변을 만드는 데 주로 컴퓨팅 파워를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AI 에이전트는 하나의 업무를 끝내기 위해 검색하고 자료를 읽고 분석하고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AI 에이전트가 확산되면 한 번의 업무를 처리하는 데 필요한 연산량 자체가 크게 늘어날 수 있습니다.
AGI가 실제 컴퓨팅 수요를 몇 배 늘릴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한 전망이 없습니다. AGI 자체의 정의와 도달 시점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AI가 처리할 수 있는 업무의 범위가 넓어지고 이런 능력이 AI 에이전트를 통해 실제 업무에 사용되기 시작한다면 전체 컴퓨팅 수요가 크게 증가할 가능성은 있습니다.
더 똑똑한 AI가 더 많은 일을 스스로 처리하기 시작하면 모델을 학습시키는 데 필요한 컴퓨팅 파워뿐 아니라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추론 과정에서 필요한 컴퓨팅 수요까지 함께 증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엔비디아에는 직접적인 사업 기회입니다.
AI 기업들이 더 강력한 모델을 만들고 이를 에이전트 형태로 실제 업무에 투입할수록 GPU와 데이터센터에 대한 수요도 커질 수 있습니다.
5. 오픈AI·앤트로픽 IPO가 온다…에버코어가 경고한 뜻밖의 매도 위험
AI를 중심으로 한 미국 증시의 강세장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월가의 분석이 나왔습니다.다만 앞으로 예상되는 오픈AI와 앤트로픽의 대형 기업공개, IPO가 일부 기존 상장사에는 오히려 새로운 매도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입니다.
에버코어 ISI의 줄리언 이매뉴얼이 이끄는 전략팀은 최근 보고서에서 AI를 중심으로 한 증시 상승세가 더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습니다.
현재 시장에서는 강세장을 끝낼 만한 주요 조건들이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이유입니다.
에버코어가 꼽은 대표적인 강세장 종료 조건은 경기침체와 미국 10년물 국채금리의 5% 돌파, 미 중앙은행, Fed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입니다.
여기에 투자자들이 주가 상승에서 소외될 것을 우려해 무차별적으로 주식을 사들이는 극단적인 FOMO 현상도 포함됩니다.
하지만 에버코어는 이런 조건들이 지난 6월에도 나타나지 않았으며 현재도 뚜렷하지 않다고 평가했습니다.
미국개인투자자협회(AAII) 설문에서 강세를 전망하는 투자자의 비중 역시 2000년 닷컴버블 당시 고점과 비교하면 아직 크게 낮은 수준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에버코어는 지난 6월 이뤄진 스페이스X IPO가 AI와 기술주 열풍의 정점을 알리는 신호는 아니라고 평가했습니다.
시장에서는 과거 닷컴버블의 경험 때문에 이런 논란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AOL과 타임워너의 초대형 합병입니다.
2000년 닷컴 열풍이 절정으로 치닫던 당시 인터넷 기업 AOL은 전통 미디어 기업 타임워너와 대규모 합병을 발표했습니다.
당시에는 인터넷과 미디어 콘텐츠가 결합해 엄청난 시너지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기대가 컸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닷컴버블이 붕괴했고 AOL의 사업가치 역시 급격하게 떨어졌습니다. 이후 AOL타임워너는 막대한 손상차손을 기록했고 이 합병은 역사적인 기업 합병 실패 사례 가운데 하나로 남았습니다.
이 때문에 AOL-타임워너 거래는 닷컴 열풍이 극단적인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자주 거론됩니다.
AI와 기술주가 크게 오른 지금 스페이스X라는 초대형 인기 기업까지 증시에 등장했으니 이것이 AI 투자 열풍의 마지막 단계 아니냐는 질문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에버코어의 판단은 다릅니다.
에버코어는 스페이스X IPO를 AOL-타임워너보다 1995년 넷스케이프 상장에 더 가깝다고 평가했습니다.
넷스케이프가 상장했던 1995년에는 인터넷이 경제와 기업의 생산성을 얼마나 크게 변화시킬지 아직 충분히 입증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인터넷 산업은 빠르게 성장했고 기업과 경제 전반을 바꾸는 핵심 기술로 자리 잡았습니다.
에버코어는 현재 AI 역시 이와 비슷한 단계에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AI가 가져올 생산성 향상이 아직 완전히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경제와 기업의 업무 방식을 크게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여기서 역설적인 문제가 하나 발생합니다.
AI 강세장이 계속될수록 일부 기존 종목은 오히려 더 큰 매도 압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에버코어가 주목하는 것은 앞으로 예상되는 오픈AI와 앤트로픽 등 초대형 AI 기업들의 IPO입니다.
이들 기업이 상장하면 투자자들은 새로운 AI 주식을 포트폴리오에 담기 위해 자금을 마련해야 합니다.
투자할 수 있는 자금이 무한정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기존에 보유한 주식 가운데 일부를 매도하고 그 돈으로 오픈AI나 앤트로픽 주식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스페이스X IPO를 앞두고도 에버코어 고객들은 새로운 IPO 주식을 포트폴리오에 담을 자리를 만들기 위해 어떤 기존 상장주식의 비중을 줄이거나 헤지할 것인지 검토했습니다.
오픈AI와 앤트로픽 IPO에서는 이런 자금 이동이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입니다.
특히 시점이 중요합니다.
미국에서는 통상 10월을 전후해 뮤추얼펀드들의 세금 손실 매도, 이른바 ‘택스 로스 셀링’이 활발해집니다.
세금 손실 매도란 손실이 발생한 주식을 팔아 손실을 확정한 뒤 이를 다른 투자에서 발생한 자본이득과 상계함으로써 세금 부담을 낮추는 전략입니다.
에버코어는 오픈AI와 앤트로픽의 대형 IPO 준비와 이 같은 계절적인 매도 시기가 맞물릴 가능성에 주목했습니다.
펀드 입장에서는 어차피 세금 목적으로 부진한 종목을 정리할 계획이라면 매도를 조금 앞당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세금 부담을 낮추는 동시에 오픈AI나 앤트로픽 IPO에 투자할 현금까지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것은 올해 이미 주가가 크게 떨어진 부진주입니다.
에버코어는 이런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찾기 위해 러셀3000지수 구성 종목을 대상으로 별도의 스크리닝도 실시했습니다.
먼저 시가총액이 50억달러 이상이면서 올해 들어 주가가 10% 이상 하락한 종목을 골랐습니다.
동시에 현재 주가가 2026년 저점에서 20% 이상 반등하지 못한 기업으로 범위를 좁혔습니다.
여기에 최근 3개월 동안 애널리스트들의 실적 전망치가 하향 조정되고 있다는 조건까지 추가했습니다.
에버코어는 올해처럼 기업들의 실적 전망치가 전반적으로 큰 폭으로 상향 조정되는 상황에서 오히려 전망치가 낮아지는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더 큰 주가 압력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연말까지 주가가 반등할 것이라는 기대 역시 그만큼 낮아질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이 기준에 포함된 기업은 테슬라(TSLA), IBM(IBM), 아메리칸익스프레스(AXP), 맥도날드(MCD), S&P글로벌(SPGI), 로우스(LOW), 앱러빈(APP), HCA헬스케어(HCA), 보스턴사이언티픽(BSX), 메드라인(MDLN), 로켓컴퍼니즈(RKT), 마틴마리에타머티리얼즈(MLM), 조에티스(ZTS), 라스베이거스샌즈(LVS), 피서브(FISV), 쿠팡(CPNG), 오티스월드와이드(OTIS), NRG에너지(NRG), AST스페이스모바일(ASTS), 마켈(MKL), 퍼스트솔라(FSLR), 피델리티내셔널인포메이션서비스(FIS), 에퀴팩스(EFX), 레나(LEN), 페어아이작(FICO), 페덱스프레이트(FDXF), 타이슨푸즈(TSN), 플러터엔터테인먼트(FLUT), 롤린스(ROL), 칼라일그룹(CG), 솜니그룹인터내셔널(SGI), RB글로벌(RBA), 탈렌에너지(TLN), 앨버말(ALB), 맥코믹(MKC), QXO(QXO), 레녹스인터내셔널(LII), 딕스스포팅굿즈(DKS), 피델리티내셔널파이낸셜(FNF), 드래프트킹스(DKNG) 등입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