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지하철 신당역 10번 출구 인근 지하 유휴공간(약 2980㎡)은 오랫동안 방치돼 있었다. 10호선 환승 통로로 계획됐다가 무산된 이후 잊힌 공간이었다. 2023년 서울시가 패션 브랜드 반스와 손잡고 이곳에 디제잉, 스케이트보드, 맥주를 즐길 수 있는 '반스 스테이션 신당' 행사를 열자 이틀간 약 1만명이 몰렸다. 동대문과 가까워 외국인이 접근하기 쉽고 인근 철공소 거리에 맛집과 디자인 작업실 등 젊은 세대가 자리 잡으며 '힙당동'으로 거듭나고 있는 걸 포착한 덕분이다. 지난해 이곳에서 선보인 '서울패션로드' 전시는 올해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 2026'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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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스 스테이션 신당'을 비롯해 지하철 역사 혁신 프로젝트를 기획한 이지현 서울시 기획총괄특보는 "처음 행사를 기획했을 때는 안전 우려 등으로 시청 내부가 발칵 뒤집혔다"며 웃었다. 그는 "담당 공무원들과 안전 대책을 보완하며 프로젝트를 추진했다"며 "서울시 곳곳의 지하철역을 지나가는 공간이 아니라 머무는 공간, 일부러 찾아가는 공간으로 만들면 도시의 매력을 한껏 높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특보는 서울시의 각종 브랜드 전략과 수립 과정을 다룬 책 <도시의 해상도>를 최근 출간했다.
이 특보는 서울시 비전전략특보를 거쳐 기획총괄특보로 일하며 서울시의 핵심 시정 철학인 '동행·매력'의 가치를 알리는 여러 프로젝트를 이끌어왔다. 서울시 브랜드인 '서울 마이 소울'을 기획하고, '해치' 등 캐릭터 사업과 서울 굿즈를 구상해 서울 브랜드 대중화에 앞장섰다. 이방호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의 차녀인 그는 7·8대 서울시의원을 거쳐 여의도연구원 객원연구위원, 바른정책연구소 부소장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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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공'인 그는 일을 시작하면 공직을 재정의하는 작업부터 했다. 그가 생각하는 공무원은 행정가이자 '도시 마케터·기획자'다. 이 특보는 "누군가는 '시청이 행정 업무만 빈틈없이 하면 되지, 왜 도시에 브랜딩 전략이 필요하냐'고 할 수도 있다"며 "하지만 행정이 '늘 하던 대로'를 벗어나려면 혁신과 비전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곧 브랜딩"이라고 했다. 이어 "도시는 그곳을 찾는 사람을 환대하고, 즐겁게 해주고, 시간을 아껴줄 수 있어야 한다"며 "그런 청사진이 관광이나 안전, 교통, 고용 등 행정으로 다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예컨대 시가 최근 강조하고 있는 '야간경제'가 그렇다. '밤에도 활력과 도파민 넘치는 도시'라는 목표는 침체한 골목상권을 되살리기 위한 콘텐츠다.
흔히 공무원은 복지부동의 아이콘으로 평가절하되지만 이 특보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일하다 보면 '이런 거 꼭 해보고 싶었다'고 눈을 빛내는 공무원들이 많다"며 "도시를 바꾸고 시민들의 만족을 경험해보면 그게 또 새로운 동력이 되기 마련"이라고 했다. 시청 내부의 활력을 높이기 위한 기획도 그의 작품이다. 지난해 서울시청 직원들이 모두 모인 신년 하례회장의 대형 스크린에는 '기후동행카드' 담당 주무관의 아버지와 오세훈 서울시장이 통화하는 영상이 상영됐다. 오 시장이 "따님의 정책이 서울시민들의 삶을 바꿨다. 훌륭한 딸을 키워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하자 몇몇 공무원들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이 특보는 "브랜딩의 종착지는 결국 그 모든 시스템을 굴러가게 만드는 위대한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책에는 공직이 아니더라도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참고할 만한 '업무 전략'도 담았다. 이 특보는 "놀랍지 않으면 보고가 아니다"고 말한다. 서울시와 풀무원이 협업한 '서울라면'을 오 시장에게 보고할 때는 출출한 오후 시간에 직접 라면을 끓여가기도 했다. 서울라면·서울짜장은 19개국에서 166만 봉 이상 팔리고 해외 마트에서도 판매되고 있다. 서울시는 민간 기업과 협업한 브랜드 상품의 판매 수익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이 특보는 "일은 결국 내외부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설득의 과정"이라며 "문제 해결을 넘어 마음을 얻어야 일의 해상도가 선명해진다"고 말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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