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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었음(X), 박살 난 고용지표(O).”
청년 고용 관련 기사 댓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반응이다. “‘쉬었음 청년’이라는 말로 국가의 문제를 청년 개인에게 돌린다”, “‘쉬었음’이 아니라 기업이 ‘안 뽑음’인 것 아니냐”는 불만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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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상 ‘쉬었음’은 실업자와 다른 범주다. 취업이나 구직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육아·가사·질병 같은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쉬었다’고 답한 비경제활동인구를 말한다. 통계 분류 자체가 문제라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이 단어가 현실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청년 개인의 선택이나 태도처럼 소비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업도 사정이 있다. 산업구조 변화로 신입보다 당장 투입할 수 있는 경력직 수요가 늘었다. 경기와 생산성, 인건비 부담도 채용을 좌우한다. 정부가 청년 취업 지원 사업을 확대해도 첫 일자리가 안정적인 경력으로 이어지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결국 ‘쉬었음’이라는 단어가 문제가 아니다. 청년이 첫 일자리를 얻고 안정적인 소득을 만들고 집을 구해 자립할 수 있는 경로가 실제로 작동하느냐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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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었음’이라는 말 뒤에 가려진 첫 일자리
청년 고용시장의 문제는 단순히 취업자 수가 줄었다는 데 있지 않다. 노동시장에 처음 들어갈 문 자체가 좁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2026년 7월 청년(15~29세) 취업자는 전년보다 19만1000명 줄어 45개월째 감소했다. 청년 고용률은 44.2%로 떨어졌다. 전체 취업자가 늘어나는 동안 청년 고용은 반대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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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채용도 위축됐다. 올해 1분기 20·30대 신규 임금 근로 일자리는 1년 전보다 감소했고 20대 이하 신규 일자리는 관련 통계 작성 이후 1분기 기준 가장 낮았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첫 직장을 얻고 경력을 쌓아 다음 일자리로 이동할 수 있는 통로다.
한국은행 분석은 ‘쉬었음 청년=눈높이가 높은 청년’이라는 통념과 거리가 있다. 이들의 희망 임금은 다른 미취업 청년과 큰 차이가 없었고 대기업이나 공공기관만 선호한 것도 아니었다. 이전에 어떤 일자리를 거쳤는지도 중요하다. 취업 경험이 있는 ‘쉬었음’ 청년의 상당수는 300인 미만 기업이나 임시·일용직에서 일하다 노동시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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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기 국립부경대 HK연구교수는 “‘쉬었음 청년’으로 분류되는 청년들도 취업에 관한 희망이 없거나 정말 아무런 준비도 하고 있지 않아서 ‘쉬었음 청년’으로 분류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프레임은 노동시장에 진입한 청년들이 빠르게 퇴사하는 경향, 사회초년생들이 심각한 우울증을 겪는 경향에 관해서는 침묵한다”며 “노동시장에 진입하더라도 삶에 관한 희망을 갖게 만들지 못하는 낮은 임금이나 과로, 특히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한 권위적인 조직문화에 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AI 확산이라는 새로운 변수도 더해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줄어든 청년 일자리 28만5000개 가운데 94%가 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에서 감소했다. 정보서비스와 출판, 컴퓨터 프로그래밍, 전문서비스 등 청년층이 경력을 시작하던 분야가 포함된다.
AI가 청년 고용 위축의 유일한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산업구조 변화와 경기, 기업의 경력직 선호가 함께 작용하고 있다. 다만 AI가 신입이 맡던 업무부터 대체하기 시작할 경우 이력서의 첫 줄을 채울 일자리 자체가 줄어들 수 있다. ‘쉬었음’을 줄이는 것과 청년의 첫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다른 정책 과제다.

첫 월급 받아도 월세 내고 나면 빠듯
고용 문제는 곧 주거 불안으로 이어진다. 일자리가 흔들리면 소득도 함께 출렁이고 소득이 빠듯해지면 주거 선택지는 좁아진다. 월세와 관리비를 내고 나면 저축할 여력이 남지 않는다. 국토연구원 분석에서도 저소득 청년 임차 가구의 소득 대비 주거비 부담은 중장년·고령층보다 높게 나타났다.
민달팽이유니온 분석에 따르면 서울 소규모 주택의 평균 월세 지출은 최근 2년간 8.8% 올라 최저임금 상승률(6.7%)을 웃돌았다. 문제는 공급량만이 아니다. 2025년 7월 기준 행복주택 공가율은 10.1%, 공실 물량은 1만4710호였다. 청년을 위한 주택을 공급해도 입지와 교통, 직장과의 거리, 임대 조건이 실제 생활과 맞지 않으면 비어 있을 수 있다.
‘청년 안심주택’ 논의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름만 바꾸고 공급 물량을 늘리는 것으로 주거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청년에게 필요한 주택이 어디에, 어떤 조건으로 공급되는지가 중요하다.
전세가 줄고 월세 비중이 높아지는 흐름도 부담이다. 서울 아파트 임차 가구에서 전세 비중은 2017년 69.7%에서 2024년 61.9%로 낮아졌다. 같은 기간 월세 비중은 30.3%에서 38.1%로 높아졌다.
청년에게 월세는 단순한 주거비가 아니다. 매달 빠져나가는 고정비다. 첫 월급에서 월세를 내고 나면 자산을 만들 기회 자체가 줄어든다. 고용에서 소득으로, 소득에서 주거로, 주거에서 자산으로 이어져야 할 사다리가 여기서 멈춘다.

폐버스에서 용산공원까지…청년주택 논란이 남긴 질문
최근 정치권에서 벌어진 청년 주거 논란은 정책과 청년 현실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지난 8월 더불어민주당 황희 의원이 폐버스를 개조해 대학가 청년들의 단기 주거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가 논란이 일자 사과하고 게시물을 삭제했다. 당 지도부도 공식 정책이 아니라는 취지로 선을 그었다.
청년층의 반응은 단순했다. “왜 폐버스에서 살아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논란의 핵심은 버스가 주택으로 적합한지 여부만이 아니다. 청년들이 요구하는 것은 비를 피할 공간 하나가 아니라 정상적인 주거환경과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최근 용산공원 일대 부지를 활용한 청년주택 공급 방안도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도심의 희소한 공공부지를 주택 공급에 활용할 것인지, 녹지와 공원의 기능을 보존할 것인지가 맞섰다. 두 사안은 성격이 다르다.
폐버스는 한 정치인의 제안이었고 용산 부지 활용은 공공부지와 주택 공급을 둘러싼 정책 논의다. 같은 선상에서 비판할 수는 없다. 다만 두 논란은 같은 질문을 남긴다. 청년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어디에 집을 더 지을 것인가’에만 머물러도 되는가.
공급 확대는 필요하다. 서울 주거비가 높은 만큼 가용 부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도 피할 수 없는 과제다. 하지만 집 한 채를 공급하는 것만으로 청년의 자립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첫 집에서 다음 주거 단계로 이동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까지 함께 만들어야 한다.

분양과 임대, 숫자가 보여준 다른 역할
주거와 혼인·출산의 관계를 분석한 최근 연구는 흥미로운 결과를 내놨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저출생 대응 주거지원 사업 효과성 분석’에 따르면 2020~2024년 대규모 신혼부부·생애 초기 분양주택이 공급된 지역에서는 공급 후 24개월 동안 미공급 지역보다 월평균 혼인 건수가 5.7건, 출산 건수가 10.2건 증가했다.
임대주택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 청년·신혼·신생아 대상 대규모 임대주택 공급 지역은 같은 기간 월평균 혼인과 출산 건수가 미공급 지역보다 각각 적었다. 이 결과를 임대주택이 결혼과 출산을 막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임대주택은 소득과 자산이 충분하지 않은 청년이 독립 초기에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혼인 이후 지원 자격이 달라지는 이른바 ‘결혼 페널티’ 가능성도 연구에서 거론됐다.
핵심은 분양과 임대 중 어느 쪽이 더 낫다는 게 아니다. 임대주택은 독립 초기의 주거비 부담을 낮추는 안전망이고 분양주택은 장기 거주와 자산 형성에 대한 기대를 제공한다. 생애 단계에 따라 정책의 역할이 달라져야 한다는 뜻이다.

결혼·출산 독려하기 전에 자립의 길부터
통계청의 2024년 사회조사에서 미혼자가 결혼하지 않는 이유로 가장 많이 꼽은 것은 결혼자금 부족이었다. 취업이 늦어지면 소득이 늦어진다. 소득이 불안정하면 주거 선택지가 좁아진다. 월세 부담이 커지면 자산 형성은 뒤로 밀린다.
지금까지 청년정책은 취업 지원, 주거지원, 자산지원으로 나뉘어 추진됐다. 행정적으로는 서로 다른 사업이지만 청년의 삶에서는 하나의 과정이다. 청년이 실제로 넘어야 할 문턱은 여전히 첫 일자리와 첫 월급, 첫 집으로 이어진다. 다만 이 경로 자체를 모든 청년이 반드시 따라야 할 유일한 삶의 기준으로 삼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교수는 “오늘날 이른바 청년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근본적인 중요 원인은 불평등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세대 내, 세대 간의 다차원적인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청년이라는 집단을 불평등 프레임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단일한 생애 경로가 이미 붕괴한 상황에서 해당 경로의 중심성을 유지하는 정책은 청년들을 과도한 경쟁 속으로 더욱 내모는 문제로도 연결될 수 있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청년들의 다양한 삶의 방식을 인정하고, 또 그 실험을 지원함으로써 한국 사회가 지금의 한계를 넘어 미래로 이행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는 청년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돋보기]
김선기 국립부경대 HK연구교수(청년문화 연구가·문화학 박사) 인터뷰
“청년을 부르는 말이 늘수록 정책은 더 복잡해졌다”
김선기 국립부경대 HK연구교수(청년문화 연구가·문화학 박사) 인터뷰
“청년을 부르는 말이 늘수록 정책은 더 복잡해졌다”
‘쉬었음 청년’, ‘고립·은둔 청년’처럼 청년을 설명하는 정책 용어가 계속 늘고 있다. 문제를 세분화해야 맞춤형 지원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김선기 국립부경대 HK연구교수는 정책 대상을 촘촘히 나누는 방식이 오히려 청년의 혼란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책 대상을 세분화하는 것은 청년 입장에서도 혼란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청년센터를 체계화하려 했던 취지는 청년들이 여러 정책을 찾아 헤매지 않고 한곳에서 필요한 지원으로 연결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책 대상과 사업이 늘어나면서 현실은 오히려 복잡해졌다는 게 김 교수의 진단이다.
“청년을 부르는 말들이 계속 생겨나고 부처 칸막이뿐 아니라 어떤 정책은 이 센터에서, 또 다른 정책은 저 센터에서 관장하는 어려움이 생깁니다.”
그는 정책이 늘어난다고 청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반드시 나아지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새로운 청년정책 사업과 예산이 늘어날수록 청년을 ‘지원하거나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강해질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이 부정적인 인식은 기성세대가 청년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있지만 청년 스스로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스며듭니다.”
김 교수는 “‘쉬었음 청년’이 청년세대 안에서 자조적 밈으로 쓰이는 현상도 이런 맥락에서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책을 더 많이 만들고 대상을 더 세분화하는 것이 곧 문제 해결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청년에게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 묻는 것만큼 정책이 청년을 어떤 언어로 규정하고 있는지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