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6,579.48

  • 16.76
  • 0.26%
코스닥

790.21

  • 13.77
  • 1.71%
1/3

축구 질서를 쥐락펴락하는 ‘돈 많은 국가들’…신간 <스포츠워싱, 축구를…>

페이스북 노출 0

핀(구독)!


뉴스 듣기-

지금 보시는 뉴스를 읽어드립니다.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축구 질서를 쥐락펴락하는 ‘돈 많은 국가들’…신간 <스포츠워싱, 축구를…>

주요 기사

    글자 크기 설정

    번역-

    G언어 선택

    • 한국어
    • 영어
    • 일본어
    • 중국어(간체)
    • 중국어(번체)
    • 베트남어


    북중미 월드컵이 한창이던 지난 7월 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미국 축구대표팀 공격수 폴라린 발로건이 받은 출전정지 처분을 다시 살펴봐 달라는 것이었다. 이후 FIFA는 출전정지를 풀었고 발로건은 다음 경기에 나섰다. 국제정치가 얼마나 깊숙이 스포츠에 개입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ADVERTISEMENT


    영국의 축구 저널리스트 미겔 딜레이니의 <스포츠워싱: 축구를 집어삼킨 자본과 국가들>은 2024년 현지에 처음 출간돼 이 사건을 직접 다루지는 않는다. 하지만 600쪽이 넘는 책을 읽고 나면 트럼프의 전화가 예고된 일처럼 느껴진다. 저자는 국가들이 막대한 자금과 영향력을 앞세워 세계 축구의 질서를 바꿔온 지난 수십 년의 역사를 끈질기게 추적한다.

    저자가 특히 날을 세우는 대상은 중동 국가들이다. 막대한 ‘오일머니’를 쌓은 이 국가들은 구단 인수와 대회 유치를 통해 세계 축구의 주요 행위자로 떠올랐다. 2008년 아랍에미리트(UAE)의 왕족 셰이크 만수르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구단 맨체스터 시티를 인수했을 때만 해도 초갑부의 개인적 취미쯤으로 여기는 시선이 많았다.

    ADVERTISEMENT


    하지만 저자는 국가가 해외 축구 클럽을 소유하는 가능성을 열어젖힌 사건으로 분석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2011년에는 카타르 국부펀드 산하 카타르 스포츠 인베스트먼트가 파리 생제르맹(PSG)을 인수했고, 2021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가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품었다.

    문제는 축구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 목적이다. 저자는 이를 단순한 마케팅이 아니라 독재와 인권 문제 등에 쏠리는 비판적 시선을 분산하는 ‘스포츠워싱’으로 규정한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인터넷에서 검색했을 때 인권 문제보다 축구 관련 결과가 훨씬 많이 눈에 띄게 되는 것 자체가 이런 전략의 성과다. 저자는 “뉴캐슬 인수 불과 몇 달 후 사우디아라비아는 하루에 81명을 처형했다”며 “아부다비의 인권 상황은 2008년보다 최근 더 악화됐다”고 지적했다.




    스포츠워싱의 문제는 국가 이미지를 세탁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저자가 더 심각하게 보는 것은 국가가 축구에 뛰어들면서 스포츠의 재미를 떠받치는 경쟁 자체가 흔들린다는 점이다. 축구의 매력은 누가 이길지 알 수 없다는 데 있지만, 국가의 지원을 바탕으로 다른 구단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팀이 등장하면 승부의 불확실성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ADVERTISEMENT


    실제로 돈은 금세 성적으로 이어졌다. 막대한 자금력을 등에 업은 구단들은 스타 선수와 감독을 끌어들이고 훈련시설 등 시스템을 갖췄다. 맨체스터 시티는 잉글랜드의 기존 ‘빅4’ 구도를 무너뜨렸고, PSG는 프랑스 리그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했다. 저자에 따르면 2008~2024년 유럽 5대 리그에서는 ‘트레블(3관왕)’이 11차례 나왔다. 그 전에는 한 차례뿐이었다.

    국가의 영향력은 구단 소유에서 끝나지 않는다. 카타르의 2022년 월드컵 유치 과정에는 축구 행정뿐 아니라 무역 협정과 무기 거래, 정치가 얽혔다고 저자는 추적한다. 대회의 마지막 장면은 카타르가 대가로 얻은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아르헨티나가 우승한 뒤 리오넬 메시가 트로피를 들어 올리기 직전, 카타르 국왕은 그의 어깨에 검은색 전통 의상 ‘비슈트’를 둘러줬다. 저자는 카타르가 월드컵에 국가적 자원을 총동원한 끝에 ‘돈으로 살 수 없는 사진 한 장’을 얻었다고 꼬집는다.

    ADVERTISEMENT


    트럼프와 인판티노의 관계에 대해서도 분석한다. 저자는 트럼프의 두 번째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인판티노가 참석한 것에 주목한다. 정치적 행사에 FIFA 회장이 참석한 것 자체가 드문 일이었는데, 인판티노는 곧이어 트럼프의 플로리다 별장에 가는가 하면 한 행사에서 트럼프가 자신을 공개적으로 치켜세우자 가슴에 손을 얹기도 했다. 저자는 이런 장면들은 공정성을 지켜야 할 세계 축구의 수장이 국가 권력과 개인적 관계까지 쌓아 올리는, 현대 축구의 문제적인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이 책의 강점은 밀도 높은 취재다. 프리미어리그가 세계 최고의 리그로 성장하는 과정부터 첼시와 맨체스터 시티, PSG, 뉴캐슬의 인수, 재정적 페어플레이(FFP) 규정 집행을 둘러싼 논란, 카타르 월드컵까지 현대 축구의 주요 사건을 촘촘하게 따라간다.

    ADVERTISEMENT


    다만 투자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걸린다. 유럽 밖 초국가적인 자본의 유입을 경계하는 다소 폐쇄적인 태도도 엿보인다.

    그럼에도 투자자로서 새겨들을 대목은 분명하다. 2021년 레알 마드리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유럽의 12개 빅클럽은 창립 구단에 사실상 상시 출전권을 보장하는 유러피언 슈퍼리그(ESL)를 추진했지만, 팬들의 반발과 주요 구단의 잇따른 이탈로 계획은 사실상 좌초되는 모양새다. 인판티노 역시 거센 사퇴 압력을 받으며 리더십 위기에 놓여 있다. 수익성만 앞세워 팬들이 중시하는 가치를 건드릴 경우 오히려 큰 반발과 손실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고로 읽힌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



    실시간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