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남긴 70억짜리 아파트…그리고 아버지의 여자친구
본하나씨와 본둘희씨 자매는 몇 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정년을 앞둔 공무원인 아버지 본처복씨를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본처복씨는 서울 반포동에 70억원 상당의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아파트는 외할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결혼자금으로 준 돈으로 분양받은 주공아파트가 재건축되면서 탈바꿈한 초고가 아파트입니다. 자매는 아버지와 사이가 매우 좋습니다. 하지만 최근 아버지에게 고향 후배라는 새로운 여자친구가 생기면서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만약 두 분이 덜컥 혼인신고를 해버리고, 이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재산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ADVERTISEMENT
민법상 법정상속인은 배우자와 자녀이며, 배우자의 상속지분은 자녀보다 50%를 가산합니다. 지분을 계산해 보면, 70억원의 아파트 중 약 30억원(7분의 3)은 재혼한 배우자 몫이 되고, 두 딸은 각각 약 20억원(7분의 2)씩만 상속받게 됩니다. 상속세를 떼고 나면 자매가 손에 쥐는 금액은 더 줄어듭니다. 외가에서 마련해 준 사실상 어머니의 유산이나 다름없는 아파트를, 재산형성에 기여한 바도 없는 아버지의 여자친구가 가장 많이 가져갈 수 있다는 사실은 자매로서는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아버지 역시 딸들의 이러한 걱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무원 정년퇴직 후 고향인 해남으로 내려갈 때 아파트를 매각하고, 딸들에게 매각대금을 전부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아버지 자신은 고향에 있는 집이면 충분하다는 겁니다. 하나 씨와 둘희 씨는 이 약속을 법적으로 명확히 못 박아두고 싶습니다.
ADVERTISEMENT

'상속권을 포기하겠다'는 혼인 전 각서는 효력이 없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방법은 아버지의 여자친구로부터 '혼인 후 아버지가 돌아가시더라도 아파트에 대한 상속권이나 유류분을 일절 주장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약정서를 받는 것입니다.하지만 대법원 판례는 '혼인 전 상속포기 계약'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미래에 발생할 상속권을 상속개시(사망) 전에 미리 포기하는 것은 민법에서 금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공증을 받거나 철저하게 계약서를 쓰더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추후 배우자가 된 아버지의 여자친구가 아버지 사망 후 마음을 바꿔 '내 몫의 유류분(법정 상속분의 절반)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하면 딸들은 그만큼 물어내야 합니다. 대법원의 확고한 판례입니다. 현 시점에서는 15억원 정도이지만, 아버지가 사망할 때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유류분 액수도 더 커지게 됩니다.
대법원 1998. 7. 24. 선고 98다9021 판결
상속인 중의 1인이 피상속인의 생존 시에 피상속인에 대하여 상속을 포기하기로 약정하였다고 하더라도, 상속개시 후 민법이 정하는 절차와 방식에 따라 상속포기를 하지 아니한 이상, 상속개시 후에 자신의 상속권을 주장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행사로서 권리남용에 해당하거나 또는 신의칙에 반하는 권리의 행사라고 할 수 없다.
아버지의 혼인신고 전에 증여를 완료하는 방법
그렇다면 아버지 여자친구의 유류분 반환청구로부터 딸들이 재산을 지킬 방법은 없는 걸까요? 여자친구가 상속인(배우자)이 되기 전에 딸들에 대한 증여를 완료하는 게 급선무입니다. 유류분 반환청구는 이미 상속인 지위를 가진 사람의 유류분을 침해한 경우라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ADVERTISEMENT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아버지가 여자친구와 혼인신고를 하기 전에 일찌감치 아파트를 자녀들에게 증여하거나 혹은 그 매각대금을 자녀들에게 증여해야 합니다. 증여가 일어난 시점에는 여자친구가 법률상 배우자(상속인)가 아니었기 때문에, 추후 혼인신고를 하더라도 과거에 자녀들이 받은 증여금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유류분을 주장할 수 없게 됩니다. 깔끔하게 재산 정리를 끝낸 뒤, 자녀들의 축복 속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그림입니다.
증여와 혼인신고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적 간격이 필요
다만 위 방법이 후처로부터의 유류분 반환청구를 100% 방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증여를 마친 후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가 여자친구와 혼인신고를 하는 등 '가까운 시일 내에 결혼이 예정된 상태'라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상속개시 이전에 이뤄진 증여가 향후 유류분 권리자에게 손해를 가할 것을 알고 이뤄진 경우라면 유류분 반환청구가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대법원 2023. 6. 15. 선고 2023다203894 판결ADVERTISEMENT
공동상속인이 아닌 제3자에 대한 증여가 상속개시 1년 전에 한 것이라도 당사자 쌍방이 증여 당시에 유류분권리자에 손해를 가할 것을 알고 증여한 경우에는 그에 대한 유류분반환청구가 허용된다(민법 제1114조 참조). 증여 당시 법정상속분의 2분의 1을 유류분으로 갖는 배우자나 직계비속이 공동상속인으로서 유류분권리자가 되리라고 예상할 수 있는 경우에, 제3자에 대한 증여가 유류분권리자에게 손해를 가할 것을 알고 행해진 것이라고 보기 위해서는, 당사자 쌍방이 증여 당시 증여재산의 가액이 증여하고 남은 재산의 가액을 초과한다는 점을 알았던 사정뿐만 아니라, 장래 상속개시일에 이르기까지 피상속인의 재산이 증가하지 않으리라는 점까지 예견하고 증여를 행한 사정이 인정되어야 한다.
증여와 혼인신고 사이에 어느 정도의 기간을 요구하는지 일률적으로 정해진 바는 없기 때문에, 법원이 개별 사안에 따라 유류분 침해 여부를 판단하게 됩니다. 유류분 반환청구가 인정되지 않는 안전영역에 들기 위해서는 증여와 혼인신고 사이에 충분한 시차를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기간이 길면 길수록, 후처가 전처 자녀들의 과거 증여금을 대상으로 유류분 소송을 제기해 승소할 가능성은 낮아지게 됩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정인국 한서법률사무소 변호사/세무사
ADVERTISEMENT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