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구니에 담긴 사과가 금방이라도 굴러 떨어질 듯 풍성하게 쌓여 있다. 탐스럽게 잘 익은 새빨간 사과부터 청량한 녹색, 아직 다 여물지 않아 곳곳에 노란빛이 감도는 것까지. 사과 껍질 위로 계절의 변화가 한눈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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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인지 그림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실적인 이 사과의 주인은 화가 윤병락이다. ‘사과 작가’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그는 오랜 시간 사과를 그려왔다. 지천이 사과밭인 경북 영천에서 태어난 그에게 사과는 자연스럽게 작업의 소재가 됐다.
서울 강남 보자르갤러리에서 작가의 개인전 ‘The Season of Time’이 열린다. 윤병락이 20여 년간 탐구해 온 다양한 사과와 마주할 수 있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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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처음부터 사과를 그린 것은 아니다. 대학 졸업 후에는 고가구나 빗자루 같은 생활용품을 그렸다. 2002년 무렵 우연히 사과를 그리기 시작했고, 지금과 같은 작품은 2004년경 나무 상자에 쌓인 과일에서 아이디어를 얻으며 탄생했다.

사과를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해 그는 철마다 여러 상자의 사과를 사다 놓고 오래도록 들여다본다. 사과마다 다른 빛깔과 반질거리는 표면, 꼭지 주변의 미세한 굴곡부터 작은 반점과 얼룩, 흠집까지 집요하게 좇는다. 하지만 작가는 “사진처럼 완벽히 사과를 복제하는 것이 목표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가 사과에 담아내는 것은 눈앞의 모습만이 아니다. 고향과 어린 시절의 기억, 그리고 계절의 변화가 겹쳐 있다. 과수원을 하던 아버지와 자식 교육을 위해 과일 행상도 마다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기억부터 한 알의 사과가 무르익기까지 차곡차곡 쌓이는 시간까지 작품에 녹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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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게 사과를 그려왔다는 것 외에도 윤병락의 작품을 특별하게 만드는 두 가지가 있다. 바로 ‘시선’과 ‘화판’이다. 그는 전통적인 정물화의 익숙한 눈높이에서 벗어나 사과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부감 시점을 택했다. 이 시선은 관람객이 실제 사과 상자를 눈앞에서 들여다보는 듯한 감각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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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판 역시 직접 제작한다. 정형화된 사각 틀을 벗어나 작품의 형태와 구도에 맞게 화판의 외곽선을 달리한다. 작품의 형태와 분위기에 어울리는 캔버스는 작품의 공간감을 극대화한다. 사과의 둥근 윤곽을 그대로 살리기도 하고, 상자를 덮은 신문지가 접히고 구겨진 모양까지 화판의 형태로 이어지며 현실과 회화의 경계를 흐린다. 전시는 9월 30일까지.
강은영 기자 qboo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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