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인간을 넘어설 수 있을까. 챗GPT 등장 이후 AI 성능이 빠르게 높아질 때마다 따라붙은 질문이다. 김태훈 서강대 가상융합전문대학원 교수는 "한 두 사람은 뛰어넘을 수 있지만 인류 전체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AI가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정답과 데이터를 따라 학습하는 '모방하는 기계'라는 이유에서다.김 교수는 네이버 클로바 AI 인턴을 거쳐 LG AI연구원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일했다. 초거대 AI 모델 개발 현장을 직접 겪은 뒤 2년 전 학계로 자리를 옮겼다. 최근 펴낸 '모방하는 기계들의 시대'는 1950년 앨런 튜링의 질문에서 출발해 AI 기술사를 훑는 책이다. 다만 그의 관심은 "기술 자체보다 그 기술을 둘러싼 인간의 착각과 쏠림에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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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현재 AI 산업이 마주한 가장 큰 위험으로 기술적 한계가 아닌 자본을 꼽았다. 수익은 나지 않고 자본력으로 버티는 구조가 금리 인상 국면과 맞물리면 과거 '닷컴 버블' 때처럼 꺼질 수 있다는 것. 정부가 추진 중인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에 대해서도 "한국의 산업 아이덴티티(정체성)에 맞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 연구실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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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을 '모방하는 기계들의 시대'로 붙였습니다. 인간도 기존 지식을 학습해 새로운 것을 만드는데, AI의 본질을 '모방'으로 규정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AI가 빠른 속도로 발전했지만 기본적인 학습 원칙은 아직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결국 정해진 답과 가장 비슷해지도록 학습하는 방식입니다. 한마디로 정답을 모방하는 거죠.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설까 걱정하지만, 결국 사람을 모방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 전체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 책에서는 'AI 창작물에도 아우라가 깃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도 던졌습니다. 어떤 답을 내렸습니까.
"AI는 단순히 복제하는 게 아니라 기존 것을 재조합해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죠. 그런데 결국 중요한 건 사람이 그 작품을 보고 무엇을 느끼느냐라고 생각해요. 그냥 봤을 때 무언가 느껴지고 감동이 있다면 그것도 아우라가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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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초거대 AI 연구가 가장 크게 부딪히는 벽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진입 장벽이 너무 높습니다. LLM(대규모언어모델)이나 AI 에이전트처럼 사람들이 많이 하는 분야는 이미 쌓여 있는 연구가 많아서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쉬워 보이지만,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고 진입 장벽도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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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에서 대규모 모델을 개발할 당시 가장 크게 부딪힌 문제는 무엇이었습니까.
"항상 부딪히는 건 자본력이었습니다. 10억~20억원이 작은 돈은 아니잖아요. 그렇게 큰돈을 들여 실험을 한 번 돌려도 결과가 잘 나온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과학과 공학은 결국 수많은 실패를 거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잖아요. 그런데 AI 분야에서는 그만큼 반복해서 실험하기에 국내 자본력이 많이 부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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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 자체의 한계보다 AI 버블이 무너질 가능성을 더 우려하는 겁니까.
"지금 제가 더 걱정하는 건 닷컴 버블 때처럼 AI 버블이 꺼지는 겁니다. 지금은 AI 기업들이 충분한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고, 그걸 막대한 자본으로 버티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금리가 오르면 시장에 풀린 돈이 줄고 투자 여력도 함께 줄어듭니다. 지금은 그런 시기와 AI, AI 반도체에 대한 기대가 흔들리는 시점이 맞물려 있다고 봅니다. 여기에 촉발제가 하나만 더 붙으면 버블은 터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두 번째는 알고리즘입니다. 2020년 이후에는 사실상 트랜스포머 중심으로 굳어졌습니다. 다만 AI 산업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 그렇다고 AI 산업 자체가 무너질 것으로 보는 것은 아니군요.
"그렇지는 않다고 봅니다. AI도 트랜스포머를 중심으로 어느 정도 정리된 뒤, 서비스 측면에서 개선하면서 필요한 만큼 투자하는 안정기에 들어갈 수 있다고 봅니다. 버블 위에 올라간 거품만 걷히는 거죠."
▶ 정부가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미국·중국과 별개로 독자 모델을 확보해야 한다고 봅니까.
"파운데이션 모델을 직접 개발하는 데는 분명 명암이 있습니다. 개발하는 기업에선 직접 해봐야 독자적인 노하우가 생긴다고 말하고, 반대로 경험해본 분들 중에는 돈과 데이터만 충분하면 생각보다 개발 자체는 어렵지 않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투자 규모입니다. 현실적으로 자본 규모만 놓고 정면승부가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이 있습니다. 우리 강점은 한국어와 한국 이용자에 특화된 서비스를 잘 만드는 데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정작 한국어에 특화된 모델보다 글로벌 프런티어 모델과 정면으로 경쟁하는 방향을 택하고 있어요. 우리나라 산업이 성장해온 방식을 봐도 무언가를 세계 최초로 처음부터 만들기보다 기존 기술을 빠르게 개선하고 특화하는 데 강점이 있었습니다. 자동차도 그랬고 스마트폰도 마찬가지죠. 스마트폰 운영체제를 독자적으로 만들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결국 안드로이드를 활용하면서 하드웨어와 서비스 경쟁력을 높여 세계 시장에서 경쟁했습니다. 그런데 왜 AI에서는 꼭 모든 것을 처음부터 직접 만들어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 자체 모델로 미국·중국과 정면승부하기 어렵다고 보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데이터와 GPU 모두 이미 자본력만으로 따라잡기 어려운 단계에 왔다고 봅니다. 그럼 앞으로 어디서 차이가 나느냐. 저는 사용자 피드백이라고 봅니다. 사용자가 어떤 답변을 선호하고 어떤 답변을 싫어했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지금 AI 학습에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오픈AI, 앤트로픽, 구글은 이미 3~4년 동안 실제 사용자 데이터를 쌓아왔습니다. GPU도 단순히 많이 산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GPU를 돌릴 전력이 필요하잖아요. 전력망은 소프트웨어처럼 단기간에 구축할 수 없습니다. 발전소와 송전망, 데이터센터까지 갖추려면 2~3년이 걸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GPU의 세대교체 주기는 빠르죠. 지금 대규모로 투자해도 몇 년 뒤에는 다시 새로운 장비로 교체해야 할 수 있습니다."
▶ 여러 모델을 가져와 조합하는 방식에 부정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소프트웨어는 원래 그렇게 발전해왔습니다. 기존에 잘 만들어진 것을 가져와 조합하고, 그 위에 새로운 기능을 얹고, 다시 더 큰 시스템으로 만드는 게 소프트웨어 개발의 기본적인 방식입니다. AI도 서비스를 먼저 만들고 필요한 기술을 점차 확보하는 방식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자동차도 비슷합니다. 처음부터 모든 부품을 독자 개발한 뒤 자동차를 만든 게 아니잖아요. 필요한 기술을 가져와 완성차부터 만들고, 이후 핵심 기술을 점차 내재화해왔습니다. AI도 서비스를 먼저 만들고 필요한 기술을 점차 확보하는 방식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지금은 순서가 너무 반대로 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 그렇다면 한국 AI의 경쟁력은 무엇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봅니까.
"하나를 꼽으라면 사용률입니다. 좋은 서비스라면 사람들이 쓰겠죠. 챗GPT 대신 국내 AI 서비스를 선택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가 경쟁력을 보여주는 지표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저는 모델의 벤치마크 성능만으로 경쟁력을 평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 기업 연구자에서 교수로 자리를 옮긴 뒤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무엇입니까.
"기업이 할 수 있는 역할과 학교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아예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 기업은 자본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이론을 빠르게 검증하고 실제 서비스나 제품으로 만드는 데 강점이 있습니다. 반면 학교는 자본력은 부족하지만 완전히 새롭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작은 규모로 검증해볼 수 있습니다."
▶ 학생들에게는 어떤 조언을 합니까.
"저는 학생들한테 LLM 관련 연구는 하지 말라고 합니다. 지금 모두가 몰리는 LLM이나 AI 에이전트만 피하더라도 실패할 확률은 낮아질 수 있다고 봅니다. 컴퓨터공학 50년 역사에서 계속 중요한 분야는 운영체제, 분산처리, 데이터베이스 같은 기반 기술이었습니다."
▶ 컴퓨터공학과 신문방송학을 함께 전공한 이력이 현재 AI 연구에도 영향을 미쳤습니까.
"2016~2017년쯤 데이터 기반 뉴스가 유행했는데, 그걸 하려면 결국 데이터를 크롤링하고 정제해야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데이터 분석까지 하게 됐고, 다시 컴퓨터공학 쪽으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예전에 한국어능력시험을 공부했던 경험도 결국 도움이 됐습니다."
▶ 국내에서 개발한 모델은 이런 한국어 표현에서 강점이 있다고 봅니까.
"한국어를 잘한다는 게 어려운 단어를 많이 쓰는 것과는 다릅니다. 결국 얼마나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하죠. 이런 미묘한 차이를 국내에서 개발한 모델들이 좀 더 잘 잡아낼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 앞으로 어떤 연구자로 활동하실 계획입니까.
"연구실 이름을 미믹랩(MIMIC Lab), 한국말로 모방지능연구실이라고 정했습니다. 제가 목표로 하는 건 사람보다 더 똑똑한 AI가 아니라 사람을 더 잘 모방하는 AI를 만드는 겁니다. 여러 분야를 연구하더라도 결국 '사람을 모방하는 인공지능'이라는 하나의 축으로 모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독자들이 책에서 무엇을 읽어내길 바랍니까.
"인공지능에 대한 막연함을 줄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홍민성/김대영 한경닷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