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시장 전반에서 'K자형' 양극화가 뚜렷해지면서 주얼리 업계에서도 '중간'이 사라지고 있다. 수백만원에 달하는 해외 명품 주얼리에 과감히 지갑을 열거나 저렴한 제품을 여러 개 구매하는 식으로 소비 행태가 재편하면서다. 수요가 양극단으로 갈리면서 그간 시장의 허리를 담당해 온 토종 중가 브랜드가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토종 주얼리 브랜드 줄줄이 역성장…불가리·티파니는 '훨훨'
24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10만~수십만원대 제품을 주력으로 판매해 온 국내 주얼리 브랜드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중가 주얼리 브랜드 로이드, 그레이스 등을 운영하는 이월드의 지난해 매출은 887억원으로 전년(1085억원) 대비 18.2% 감소했다. 같은 기간 영업손실은 약 4억2000만원에서 32억원으로 불어나며 적자 폭도 크게 확대됐다.이월드 전체 매출의 64.4%가 주얼리 사업에서 발생하는 만큼 해당 부문의 부진이 실적에 고스란히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지난해 이월드의 액세서리 제조·판매를 담당하는 주얼리사업부 매출은 571억원으로 전년보다 20.8% 줄었다. 2022년 860억원에서 2023년 749억원, 2024년 721억원으로 줄어든 데 이어 지난해까지 3년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ADVERTISEMENT
다른 토종 주얼리 업체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스톤헨지 등을 전개하는 우림에프엠지도 지난해 매출이 약 1120억원에서 1100원으로 1.8% 감소했으며 영업이익은 53억원에서 36억원으로 약 32.1% 쪼그라들었다. 같은 기간 제이에스티나 매출도 744억원에서 722억원으로 줄었다.
반면 고가 명품 주얼리 브랜드들은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불가리코리아의 지난해 매출은 약 5741억원으로 전년(약 4191억원) 대비 37%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643억원에서 1090억원으로 69.5% 뛰었다. 같은 기간 티파니코리아도 매출이 약 3779억원에서 4504억원으로 19.2%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20.4% 늘어난 약 260억원을 기록했다.
명품 아니면 가성비…양극단으로 갈린 주얼리 수요
이 같은 흐름은 고가와 저가 양 끝으로 수요가 쏠리는 'K자형' 소비가 시장 전반에 확산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코로나19 이후 화려한 명품 로고보다 절제된 디자인을 선호하는 '조용한 럭셔리' 트렌드가 자리 잡으면서 유행을 덜 타고 오래 착용할 수 있는 고가 주얼리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반면 고물가에 가격 부담이 커진 소비자들은 어정쩡한 중간 가격대 대신 아예 저렴한 초저가 제품으로 눈을 돌리면서 주얼리 시장의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ADVERTISEMENT
월곡주얼리산업연구소가 발간한 '패션주얼리 소비자조사 2025'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소비자가 구매한 패션주얼리의 평균 가격은 4만3955원으로 전년 대비 30.7% 하락했다. 반면 지난해 국내 패션주얼리 시장 규모는 약 7026억원으로 전년(약 5753억원) 대비 22.1% 늘었다. 시장 규모는 커졌지만 제품당 지출액은 낮아진 셈이다. 연구소는 저렴한 제품을 여러 차례 구매하면서 구매 빈도는 늘고 단가는 낮아지는 방향으로 주얼리 소비 행태가 재편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가격 애매하면 안 산다"…고급화 나선 중가 브랜드
이 같은 변화는 전체 주얼리 시장의 구조적 격차로 이어진다. 월곡주얼리산업진흥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주얼리 시장 규모는 9조7744억 원으로 전년(약 8조7732억 원) 대비 11.4% 증가했다. 하지만 세부 시장별로 들여다보면 해외 럭셔리 주얼리와 국내 토종 브랜드 간 희비가 엇갈렸다. 같은 기간 수입 주얼리 시장 규모는 3조8035억 원으로 전년 대비 39.2% 급증했으나 국산 주얼리 시장 규모는 5조9709억 원으로 오히려 1.1% 감소했다.실제 오프라인 공간에서도 중가 주얼리 브랜드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다. 이월드가 운영하는 주얼리 매장은 2023년 188개에서 지난해 146개로 2년 새 42개 점포가 문을 닫았다. 백화점에 입점한 제이에스티나 매장도 2024년 58개에서 지난해 54개로 줄었다.
이에 중가 주얼리 브랜드들은 브랜드 정체성을 재정립하며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국내 주얼리 브랜드 디디에 두보는 2024년부터 백화점 채널을 중심으로 다이아몬드 등 하이엔드 라인업을 확대하며 브랜드 고급화에 나섰다. 이 같은 전략이 성과를 내면서 올 상반기 디디에 두보의 백화점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두 자릿수 증가했다.
김민주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 책임연구원은 "국내 주얼리 시장이 럭셔리와 가성비 양극단으로 나뉘면서 중간 가격대 브랜드들은 강한 차별화 압박을 받고 있다"며 "소비자들이 가격 외에도 브랜드 정체성과 디자인, 개인화 등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뚜렷한 차별화와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ADVERTISEMENT
박수림 한경닷컴 기자 paksr365@hankyung.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