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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으면 추락한다"…3주기에 박서보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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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으면 추락한다"…3주기에 박서보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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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에게 화풍을 바꾼다는 건 오랫동안 쌓아 올린 자기 세계를 스스로 허무는 일이다. 그만큼 변화는 어렵다. 한번 성공을 거두면 그 화풍을 평생 고수하는 화가가 많은 이유다. 그런데 박서보(1931~2023)는 화풍을 여러 번 바꿨다. 연필로 선을 긋다가 한지를 사용했고, 무채색 화면을 고수하다가도 단풍과 옥의 색을 작품에 칠했다.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 브랜드인 단색화를 대표하는 화가인데도 그는 변화를 멈추지 않았다. "변하지 않으면 추락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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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변하는 변하지 않는’은 박서보의 3주기를 맞아 열린 대규모 회고전이다. K1과 K3, 한옥 등 세 공간에 40점을 걸었다. 1967년 시작한 첫 '연필 묘법(描法)'부터 세상을 뜨기 직전인 2023년의 '신문지 묘법'까지 다양한 화풍의 작품이 고루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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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서보를 상징하는 대표 연작 묘법의 시작은 1967년이다. 박서보는 어린 아들이 형처럼 글씨를 쓰려다 뜻대로 되지 않자 연필을 마구 휘갈기는 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이게 '체념'과 '비움'의 몸짓이구나."

    여기에서 착안한 게 캔버스에 흰 안료를 바르고 마르기 전에 연필로 선을 반복해 긋는 그림, '글을 쓰듯 그린다는 뜻'의 묘법이다. 이런 작업을 통해 박서보는 마음을 비우고, 그 흔적을 작품으로 만들었다. 선이 꺾일 때마다 밀려난 안료가 쌓이면서 화가의 호흡과 리듬이 그대로 화면에 남은 작품이다.


    1982년부터 박서보는 작품에 한지를 쓴다. 서양 종이와 달리 한지는 안료를 빨아들여 손의 움직임과 한 몸이 된다. 물기를 머금으면 도구를 밀어내며 저항하기도 한다. K1 바깥쪽에 걸린 작품 세 점이 한지를 실험하던 시기의 기록으로, 그간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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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까지 이어진 '지그재그 묘법'은 이런 연구 끝에 탄생했다. 밀리고 뭉친 한지 섬유가 화면에 골과 이랑, 응어리를 만들면서 평면은 낮은 부조로 변신했다. 색도 재료에서 나왔다. 그는 쑥과 담뱃잎을 우려낸 물, 먹물 같은 수성 안료를 쓰며 무채색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K3를 채운 '색채 묘법'(2001~2018)이 등장한다. 박서보는 생전 인터뷰에서 "이미지가 무차별로 쏟아지는 디지털 시대에 회화는 더 이상 자기표현의 도구로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그래서 그림의 역할을 바꾸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전의 그림이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이었다면, 이제 그림은 보는 사람의 스트레스를 빨아들이는 도구가 돼야 한다는 게 박서보의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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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대 자연의 색을 다시 보게 된 그는 단풍과 풀, 꽃의 색을 화면에 들이며 이를 '치유의 색'이라 불렀다. 관념이 아니라 관찰의 산물이었다. "단풍이 절정에 달했을 때 시간과 빛의 각도, 공기에 따라 달라지는 색을 유심히 관찰한 뒤 수없는 시행착오를 거쳐 있는 그대로의 색을 재현하는 식으로. 나는 그걸 '그림 속으로 색을 유인한다'고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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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공간인 한옥에서는 박서보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렸던 작품들이 걸려있다. 2019년 그는 1986년에 접었던 연필 묘법을 33년 만에 다시 꺼냈다. 수행과 반복의 원리는 지키되 색을 적극 끌어들인 '연필 색채 묘법'이다. 말년의 제한된 움직임에 맞춰 작업 규모를 줄였다. 그는 "한 번에 그어내는 묘법 덩어리는 내 '숨'의 단위"라고 설명했다.




    2022년부터는 오래된 신문지 위에 유성 안료를 칠하고 연필로 그어 나간 '신문지 묘법'에 몰두했다. 1977년 파리의 호텔에서 신문 르 몽드(Le Monde)에 붓을 닦다가 붓 자국 사이로 활자가 비치는 데 매력을 느꼈던 기억을 45년 만에 되꺼낸 작업으로, 세상을 뜰 때까지 이어졌다. 폐암 판정을 받은 뒤에도 그는 붓을 놓지 않았다.

    박서보의 작품세계 변천사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드문 기회다. 전시는 10월 18일까지. 서울 연희동에 최근 문을 연 박서보미술관과 함께 관람한다면 그의 작품세계를 더욱 충실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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