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 네이버는 GS풍력발전의 재생에너지를 직접 공급받기로 하고 해당 풍력 발전소 지분 30%까지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 GS가 건설 중인 경북 영양 풍력발전단지에서 생산한 전력을 네이버의 세종과 춘천 데이터센터로 2028년부터 끌어오는 내용이었다. 네이버는 당시 “이번 계약을 시작으로 양사의 파트너십은 전략적이고 지속적인 협력 관계로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 회사의 위치는 명확했다. 네이버는 고객사, GS는 공급사였다. 하지만 이 관계는 3개월 만에 바뀌었다. 풍부한 에너지를 보유한 GS그룹이 직접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사업에 뛰어들면서다.AI 산업이 국내 기업들의 기존 권역을 뒤흔들고 있다. AI 수요가 폭증하자 업계의 울타리를 넘어 이종(異種)기업 간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네이버와 GS그룹뿐 아니다. 내수 통신사였던 SK텔레콤은 15GW(기가와트)에 달하는 SK그룹의 글로벌 데이터센터 사업 ‘지휘자’로 낙점되면서 이제 경쟁의 전선을 달리하고 있다. KT와 LG유플러스가 아니라 네이버와 GS, 나아가 글로벌 네오클라우드와 같은 낯선 경쟁자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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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센터 사업에 발을 담그는 회사는 이 세 그룹 외에도 삼성SDS·LG CNS 등 시스템통합(SI) 업체, KT·LG유플러스 같은 통신사, 대우건설·DL건설 등 건설사, 이지스자산운용·코람코자산신탁 등 자산운용사들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서버 보관 건물이었던 데이터센터가 대규모 자본과 부지, 전력, 반도체, 냉각시설, 네트워크 등이 필요한 ‘AI 팩토리’로 변모하고 있다”며 “기존 업권의 ‘레드오션’화를 고민하던 회사들이 앞다퉈 AI 데이터센터 사업을 겨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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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센터뿐 아니다. AI의 태동은 각 산업에서 ‘빅 블러’(경계가 허물어지는 현상)를 가속화하고 있다. 단일 제품의 성능에 좌우되던 기업의 경쟁력이 이젠 AI 생태계 결합으로 옮겨가면서다. 예컨대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온디바이스 AI와 에이전트 기술을 접목해 주거·공간 업권을 넘나들고 있다. 건물 전체의 에너지와 가전을 스스로 제어하는 ‘AI 모듈형 주택’ 사업을 본격화한 것이다. 가전을 단순 판매하던 기존 방식에서 주택과 가전, 스마트홈 서비스를 연계하는 ‘주거 AI 플랫폼 사업’으로 진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전통 제조업에선 ‘AI 붐’이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 10일 미국 코반에너지그룹과 약 1조원 규모의 힘센엔진 기반 발전설비를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전력 병목을 겪고 있는 미국 AI 데이터센터에서 자체 발전설비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으로, 선박용 엔진에서 출발한 제품이 AI의 엔진으로 변모하는 ‘업권의 확대’라는 분석이다.
AI는 AI 산업 자체의 구도도 재조정하고 있다. 한국 진출 초기 삼성SDS·LG CNS와 ‘리셀러’ 협력 계약을 맺었던 오픈AI와 앤트로픽이 최근 영업인력들을 직접 채용하며 경쟁 관계가 형성된 게 대표적이다. IT업계 관계자는 “AI 빅테크가 국내 직접 영업을 확대하면 국내 SI와 경쟁 구도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PwC는 올해 발간한 보고서에서 현재를 ‘산업 간 경계가 사라지는 시대’로 규정하며 “거대한 기술 변화가 새로운 사업 모델을 만들어내며 경계의 붕괴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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