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실종 신고를 허위로 종결한 사실이 잇따라 드러나면서 경찰 수사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최근 경찰 가족이 연루된 사건에서 증거인멸이나 수사 외압 의혹까지 이어진 상황에서, 오는 10월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에 따른 경찰의 권한 확대를 앞두고 내부 통제와 수사 역량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하는 모습이다. "아버지 살릴 수 있었는데"…경찰 믿었던 가족의 울분
23일 경찰 등에 따르면 제주서부경찰서 소속 A경장은 실종자의 안전을 확인하지 않은 채 2건의 실종 사건을 임의로 끝낸 혐의로 긴급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다.문제가 된 사건 중 하나는 지난달 2일 접수된 60대 남성 B씨 실종 신고다. B씨는 최초 신고 이후 51일 만인 지난 22일 숨진 채 발견됐다. 가족이 경찰에 다시 신고한 지 하루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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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씨 유족은 이날 제주서부경찰서를 찾아 초동 대응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밝혀달라며 강하게 항의했다.
B씨 아들은 "아버지를 살릴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조금만 더 빨리 찾아볼 수는 없었나"라며 경찰 대응에 울분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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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에 따르면 B씨가 연락되지 않자 지난달 2일 실종 신고를 했지만 담당 경찰관은 실종자와 연락이 됐다는 취지로 설명했다고 한다. 이후 가족이 추가로 도움을 요청했을 때도 "아버지가 자신의 위치를 알리지 말라고 했다"는 설명을 들었다는 게 유족 주장이다.
그러나 경찰 조사에서는 A경장이 실제 B씨와 접촉하지 않은 채 가족에게 거짓 내용을 전달하고 상부에도 실종자를 확인했다는 취지로 보고한 정황이 파악됐다.
B씨 아들은 "이후에도 계속 아버지가 연락되지 않아 다시 경찰을 찾았지만 경찰은 '실종자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가족들이 개인적으로 알아보라'고 했을 뿐"이라며 "우리 가족은 경찰을 믿었지만 충분한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결국 가족은 다른 실종 사건이 허위로 종결됐다는 언론 보도를 접한 뒤 지난 21일 다시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휴대전화 위치 등을 토대로 수색에 나섰고 하루 뒤 B씨를 숨진 상태로 발견했다. 현재까지 타살 혐의점은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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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은 단순 사과를 넘어 최초 신고 당시 경찰의 판단과 조치가 적절했는지를 규명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B씨 아들은 "단순히 사과가 아니고 최초 신고 당시 어떤 판단이나 조치가 적절했는지, 적극적인 수색이 이뤄졌는지를 밝혀달라. 잘못된 대응이 있으면 책임 또한 물어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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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유족도 "사람이 백골이 될 때까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 경찰은 무엇을 했냐"며 경찰의 늑장 대응을 강하게 비판했다.

실종 신고 2시간 만에 '허위 종결'…CCTV는 이미 삭제
A경장이 실종 사건을 허위로 처리한 의혹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ADVERTISEMENT
앞서 A경장은 지난 5월 15일 장미란(37)씨의 남자친구로부터 실종 신고를 접수한 뒤 약 2시간30분 만에 사건을 종결했다. 당시 신고자에게 장씨와 연락이 닿아 안전을 확인했다는 취지로 알렸지만, 이후 확인된 장씨 휴대전화 기록에는 실종 이후 경찰과 통화한 내역이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장씨는 지난 5월 13일 새벽 제주시 한림읍 자택을 나선 뒤 현재까지 소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초기 신고가 종결되면서 수색 역시 중단됐다. 가족이 지난달 다시 신고했을 때는 장씨 이동 경로를 추적할 수 있는 폐쇄회로(CC)TV 영상 상당수가 보관 기간을 넘겨 사라진 뒤였다. A경장이 실종 프로파일링 시스템의 관리 목록에서 장씨 관련 정보를 삭제한 사실도 뒤늦게 확인됐다.
제주경찰청은 A경장에게 직무유기와 공전자기록 위작·행사,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적용했다. 비슷한 방식으로 처리된 다른 사건이 있는지도 추가로 들여다보고 있다.

국수본부장 뒤늦게 '제주행'…철저한 조사 지시
논란이 확산하자 경찰 지휘부도 직접 제주를 찾았다.홍석기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이날 제주경찰청에서 약 2시간 동안 수사회의를 열어 관련 사건의 진행 상황과 후속 대응을 보고받았다.
홍 본부장은 "현재 전국적으로 실종사건 처리 과정에서 허위 종결이 없었는지 전수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제주청도 철저하게 조사하라"며 "가용 인력을 최대한 동원해 현장 수색을 진행하라"고 주문했다.
이어 "개선 전이라도 체계적이고 빈틈없는 수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담당자뿐 아니라 관리자들의 책임 있는 사건 처리를 당부했다.
회의를 마친 뒤에는 장씨 수색 현장을 직접 찾아 진행 상황을 살폈다.
홍 본부장은 "내 가족을 찾는다는 마음으로 실종자의 안전과 소재 발견을 위한 단서를 찾는 데 노력해 달라"며 "실종 사건 하나하나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만큼 보다 정확하고 신속하게 수사가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를 두고 사과의 뜻도 밝혔다. 홍 본부장은 "국민들께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하겠다"고 했다.
경찰은 현재 전국 실종 사건 가운데 실제 안전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해제한 사례가 있는지 전수 점검에 착수한 상태다.
재발 방지를 위한 절차도 손을 보겠다는 계획이다. 앞으로 실종 사건을 종결하려면 관리자가 해제 사유와 전산 입력 내용, 수사 보고가 서로 일치하는지 다시 확인한 뒤 최종 승인하도록 이중 확인 절차를 마련할 방침이다.
정부도 경찰에 강도 높은 점검을 요구했다.
한성숙 국무총리는 이날 경찰청에 "이번 실종 사건의 수사 과정 전반에 대해 철저히 진상을 조사하고, 경찰이 실종신고 접수와 처리 과정에서 허위로 사건을 종결하는 등의 행위가 없는지 면밀히 확인, 근본적인 재발방지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한 총리는 가용 경찰력을 최대한 투입해 실종자 수색에 나서는 한편, 가족들을 괴롭히는 장난전화나 가짜뉴스에도 엄정 대응하라고 했다.
한편 경찰을 둘러싼 논란이 실종 사건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도 부담이다.
경찰을 향한 불신은 최근 다른 사건에서도 누적돼 왔다.
광주 여고생 살인 사건에서는 피고인 장윤기의 아버지가 경찰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뒤, 일부 증거가 사라지고 경찰 내부 인사들이 사건 처리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번졌다.
또 다른 사건에서는 경찰관이 자신의 아들이 여교사를 휴대전화로 불법 촬영했다는 의심을 받자 핵심 증거물인 휴대전화를 폐기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경찰 가족이 연루된 사건에서 수사 공정성을 둘러싼 의혹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일선 경찰관이 실종자의 안전 여부 자체를 확인하지 않고 사건을 끝낸 정황까지 드러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덕분에 경찰 괴물 됐다"
정치권에서는 경찰의 수사 권한 확대와 맞물려 비판이 나오고 있다.김종혁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민주당 덕분에 경찰은 견제받지 않는 막강한 권력을 소유한 괴물처럼 돼버렸다"고 적었다.
이어 "실종신고가 접수되자 담당 경찰관은 '실종자와 통화됐다'며 종결처리했다"면서 "이렇게 덮어버린 두 건 중 한 건은 남성 실종자가 주검으로 발견됐고 다른 한건은 실종여성 행방이 지금까지 묘연하다"고 주장했다.
김 전 최고위원은 "모든 경찰이 이 사람 같을리는 없다. 마찬가지로 모든 검사가 악마일리도 없다"면서 "검사와 경찰뿐 아니라 기자, 의사, 교사, 회사원, 운동선수. 예술인, 시장상인도 다 마찬가지다. 인간이 원래 그렇듯 누구나 적절히 선하고 적당히 악하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그래서 제도와 시스템을 통한 견제와 균형이 필요한데, 민주당은 이재명 대통령 한사람 구하려고 검경관계뿐 아니라 사법시스템 전체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다"면서 "앞으로 경찰의 무능과 비리, 부패와 인권유린이 터져나올 때마다 민주당의 책임이 거론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는 10월 개정 형사소송법 시행으로 경찰의 수사 권한이 한층 확대될 예정인 만큼 이번 논란의 파장은 더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권한 확대에 상응하는 내부 감시와 통제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을 경우 개별 사건의 부실 대응이 경찰 수사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번질 수 있어서다.
특히 실종 사건은 초동 대응이 생명과 직결되는 만큼 허위 보고나 임의 종결이 반복될 경우 경찰의 기본적인 사건 처리 능력 자체가 의심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희선 한경닷컴 기자 gimme_s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