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6,912.95

  • 60.37
  • 0.88%
코스닥

801.94

  • 38.95
  • 4.63%
1/2

"샤넬·디올 안 사요"…엄마가 들던 가방인데 Z세대 푹 빠졌다 [안혜원의 명품의세계]

페이스북 노출 0

핀(구독)!


뉴스 듣기-

지금 보시는 뉴스를 읽어드립니다.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샤넬·디올 안 사요"…엄마가 들던 가방인데 Z세대 푹 빠졌다 [안혜원의 명품의세계]

주요 기사

    글자 크기 설정

    번역-

    G언어 선택

    • 한국어
    • 영어
    • 일본어
    • 중국어(간체)
    • 중국어(번체)
    • 베트남어

    코로나19 이후 가격을 경쟁적으로 올려온 유럽 명품 브랜드들이 소비 둔화에 고전하는 사이 전성기를 맞은 브랜드들이 있다. 20만~100만원대에 접근할 수 있는 롱샴, 코치, 폴로 랄프로렌 등이다.

    젊은 소비자들이 디자인과 품질, 브랜드 헤리티지를 갖고 있으면서도 실제 구매할 수 있는 가격대의 제품을 찾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초고가 명품과 패스트패션 사이에 놓인 이른바 ‘접근 가능한 프리미엄’ 시장이 다시 커지고 있다.
    엄마들이 사던 가방…Z세대가 든다

    대표적인 브랜드가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롱샴이다. 롱샴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은 전년보다 10% 증가했는데, 그중 북미 매출이 46% 급증했다. 장 카세그랭 롱샴 회장은 프랑스 명품협회 코미테콜베르와의 인터뷰에서 “2022년부터 2025년 사이 매출이 거의 두 배가 됐다”고 했다. 2022년 이후 매년 두 자릿수 성장세를 이어왔다는 설명이다.

    ADVERTISEMENT


    성장의 중심에는 1993년 출시한 나일론 가방 ‘르 플리아쥬’가 있다. 출시된 지 30년이 넘은 이 스테디셀러 제품이 젊은 소비자에게 각광받고 있다. 천이라 무게가 가벼운데다가 쉽게 접을 수 있어 쉽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실용성을 갖춘 데다, 초고가 명품 가방과 비교하면 진입 장벽이 훨씬 낮다. 최근에는 가방에 키링과 참을 달아 자신의 취향대로 꾸미는 방식까지 유행하면서 과거 통학·출근용 가방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패션 아이템으로 다시 소비되고 있다.

    코치의 성장세는 더욱 가파르다. 모회사 태피스트리가 발표한 2026회계연도 4분기 실적에서 코치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15% 증가했다. 환율 영향을 제외해도 14% 늘었다. 연간 코치 매출은 24%, 환율 영향을 제외하면 23% 증가했다. 최근 명품·패션업계에서 두 자릿수 성장 브랜드를 찾기 어려운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성적이다.

    ADVERTISEMENT



    코치는 한때 미국 아웃렛을 중심으로 할인 판매를 늘리면서 브랜드 가치가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근에는 정반대 전략을 쓰고 있다. 할인 판매 비중을 줄이고 태비·브루클린 등 대표 제품을 집중적으로 키웠다. 무작정 싸게 파는 대신 제품 디자인과 브랜드 이미지를 끌어올리면서도 유럽 초고가 명품보다는 낮은 가격대를 유지하는 방식이다.

    효과는 신규 고객 유입으로 나타났다. 태피스트리에 따르면 2026회계연도 코치는 전 세계에서 약 900만명의 신규 고객을 확보했다. 특히 젊은 세대의 유입이 성장을 이끌었다. 회사는 2026회계연도 코치의 핸드백 평균 판매가격도 두 자릿수 올랐다고 밝혔다. 가격을 낮춰 성장한 게 아니라 ‘살 만한 가격’ 안에서 브랜드 가치를 높이면서 판매를 늘린 것이다.
    가격 올린 폴로, 그래도 잘 팔린다

    의류에서는 랄프로렌이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랄프로렌은 최근 발표한 2027회계연도 1분기 실적에서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14% 늘었다고 밝혔다. 아시아 매출은 24% 뛰었고, 중국에서는 40% 넘게 성장했다.


    흥미로운 점은 가격을 내리지 않았는데도 판매가 줄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랄프로렌의 직접판매 채널 평균판매가격(AUR)은 같은 기간 15% 상승했다. 할인 판매를 줄이고 정가 판매를 늘렸는데도 글로벌 직접판매 동일점포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다. 회사가 저가 경쟁보다는 브랜드 고급화와 정가 판매 확대에 힘을 쏟은 결과다.

    폴로 랄프로렌 셔츠와 니트처럼 오래된 대표 상품도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유행을 빠르게 반영한 제품보다 브랜드의 역사와 정체성이 분명한 기본 상품을 선호하는 소비 흐름과 맞물렸다. 랄프로렌은 폴로 랄프로렌뿐 아니라 퍼플라벨, 더블RL 등 여러 브랜드를 운영하는 만큼 회사 전체 실적을 곧바로 폴로 단일 브랜드 실적으로 볼 수는 없지만, 최근 실적 호조는 랄프로렌이라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전체에 대한 수요가 강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명품시장서 5000만명 이탈
    롱샴·코치·랄프로렌의 약진 배경에는 초고가 명품시장의 변화가 있다. 베인앤드컴퍼니와 이탈리아 명품업계 단체 알타감마에 따르면 글로벌 명품 소비자는 2022년 약 4억명에서 2024년 약 3억5000만명으로 줄었다. 불과 2년 사이 약 5000만명이 명품시장에서 이탈한 것이다. 베인은 지속적인 가격 인상과 거시경제 불확실성이 특히 젊은 소비자의 명품 구매를 위축시킨 원인으로 분석했다.

    ADVERTISEMENT


    소비 양극화도 심해졌다. 명품업체들이 소수 최상위 고객에게 집중하는 ‘브랜드 고급화(elevation)’ 전략을 펴면서 극소수 부유층의 소비 비중은 커졌지만, 1년에 한두 번 명품을 사던 이른바 ‘열망 소비층(aspirational consumers)’은 시장에서 밀려났다. 베인은 명품업계가 젊은 고객을 다시 끌어들이려면 가격에 걸맞은 가치와 창의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틈을 롱샴·코치·랄프로렌 같은 브랜드가 파고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들은 샤넬이나 에르메스처럼 최상위 명품은 아니다. 그렇다고 SPA 브랜드처럼 가격만을 무기로 삼지도 않는다. 롱샴에는 1948년부터 이어진 프랑스 브랜드의 역사와 르 플리아쥬라는 아이콘이 있고, 코치는 80년 넘게 쌓은 가죽 브랜드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 랄프로렌 역시 반세기 이상 미국식 라이프스타일 이미지를 구축해왔다.

    ADVERTISEMENT


    과거에는 이 같은 ‘중간 위치’가 약점으로 꼽혔다. 소비자가 명품 아니면 SPA 브랜드를 택하면서 중간 가격대 브랜드가 설 자리가 좁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상위 명품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상황이 뒤집혔다. 무조건 싼 제품 대신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가격에 역사와 디자인, 브랜드 이미지를 함께 살 수 있는 상품을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패션업계에서는 이를 ‘저가 명품의 인기’라기보다 ‘접근 가능한 프리미엄의 귀환’으로 본다. 명품업계 관계자는 “1000만원짜리 가방을 사지 않는 소비자가 패션 소비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수십만원대 롱샴이나 수백~1000달러 안팎의 코치 가방, 폴로 랄프로렌 의류처럼 자신이 가격을 납득할 수 있는 브랜드로 소비를 이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ADVERTISEMENT


    안혜원 기자 anhw@hankyung.com



    실시간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