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자유’는 서구 사회에서 최상의 가치로 군림하고 있다. 자유는 흔히 서구사회와 다른 사회를 구별하는 고유한 특질로 여겨진다. 영어의 ‘프리덤(freedom)’을 옮길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해 악전고투했던 일본과 중국 번역자의 사례는 이런 고정관념의 근거로 자주 거론된다. 더불어서 ‘자유로운 서구’와 ‘억압적인 비서구’라는 다소 식상해 보이는 클리셰도 우리 사회의식에 굳게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이런 자유에 대한 관념은 어떻게 서구에서 나오게 된 것일까.
저명한 역사학자인 올랜도 패터슨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자유의 역설>은 자유라는 서구적 특질이 어떻게 도출됐는지, 그 연원을 탐구한 책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학작품부터 각종 역사적 제도와 사건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상세하게 논지를 전개해 나간다.ADVERTISEMENT
고대부터 현대까지 자유에 대한 관념은 지속해서 전해왔지만, 동시에 계속해서 변했다. 플라톤이 ‘자유로운’ 민주주의를 최악에 가까운 정체로 바라봤듯 고대에 자유에 대한 인식이 꼭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자유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관념이 굳어진 것은 근대였다.
그렇다면 자유는 어떤 뿌리에서 나와 열매를 맺었을까. 진흙에서 연꽃이 피듯 자유가 ‘박탈된’ 최악의 상황에서 자유에 대한 인식이 도출됐다. 자유라는 개념의 모태가 된 것은 다름 아닌 노예제였다. 흔히 자유라는 개념이 계몽주의 지식인이 부각한 근대의 산물이라는 통념과 결이 크게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많은 사람이 목숨 걸고 수호했던 선의 이면에는 인간이 가장 혐오하는 악이 깃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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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에서 노예는 흔한 존재였다. 이는 그리스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페르시아를 비롯한 다른 고대 제국과 달리 그리스에서는 자유에 대한 인식이 싹을 텄다. 그런 인식의 주체는 때론 여성이었고, 때로는 노예 본인이었으며, 때로는 자유민이었다. 자유가 박탈당함으로써 노예는 자유를 갈망했다. 자유민은 노예의 처지와 자신을 대조하며 자유의 소중함을 느꼈다.
자유의 가치가 높을수록 자유를 추구하는 욕구가 거세졌다. 자유의 소중함에 가장 먼저 눈을 뜬 것은 여성이었다. 여성은 노예화의 공포를 내면화했고, 자유의 부재를 가장 먼저 체감했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에서 노동을 천시하는 관념이 확산하면서 자유의 몸값은 높아졌다. 해방 노예의 수가 늘어나면서 로마 사회에서 자유의 관념은 대중화됐다. 그런 식으로 지배계층이 정치·경제적 필요에 따라 노예제를 강화하거나 완화하면서 자유의 개념이 구체적인 꼴을 갖춰갔다.
놀라운 것은 이런 자유의 개념이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고 질긴 생명력을 보였다는 점이다. 자유의 역사에서 가장 놀라운 특성은 연속성이다. 고대에 탄생한 자유의 개념은 단 한 번도 완전히 사라진 적 없이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개인의 자유’로 출발한 자유 개념은 ‘시민적’ 자유를 거쳐 ‘주권적’ 자유로 위상을 높여왔다.
저자가 논지를 풀어가는 방식은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선보였던 역사사회학의 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스와 로마, 중세 유럽의 수많은 제도와 역사적 사건이 씨줄과 날줄처럼 복잡하게 교차한다. 저자가 그려낸 자유의 역사는 단순한 사상사가 아니다. 권력과 계급, 종교와 정치, 그리고 경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영향을 주고받은 사회 발전의 과정이다. 그 결과, 자유가 인류의 ‘보편적 본성’이 아니라 서구 사회에서 나온 ‘역사적 발명품’이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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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수많은 사료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사도 바울, 아우구스티누스 등의 저작, 에우리피데스와 소포클레스를 비롯한 수많은 그리스와 로마의 희곡 작가의 작품을 논의의 근거로 삼는다. 역사와 문학, 철학, 신학을 넘나들며 빚어내는 솜씨는 놀랍다. 모두가 좁디좁은 세부 전공만 파고드는 시기에 시대와 지역을 넘나들며 ‘큰 그림’을 그려내는 저자의 도전은 경탄스럽다.
다만 서양 고·중세사와 철학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다면 쉽게 읽어 내려가기 힘든 학술서라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독서의 문턱은 높은 편이다. 70쪽이 넘는 주석을 포함해 800쪽이 넘는 분량의 압박도 짧은 콘텐츠에 길든 요즘 독자가 넘어야 할 고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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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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