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NCT 127, 제로베이스원,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등 정상급 K팝 아티스트들이 대거 집결하자 14만명의 글로벌 관객이 몰려들었다. 성황리에 막을 내린 '케이콘 LA 2026(KCON LA 2026)' 현장에서는 세계 각국의 팬들이 K팝 공연을 즐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K뷰티와 K푸드 부스를 꽉 채우며 한국 소비재를 대량 구매하는 풍경이 펼쳐졌다.글로벌 팬덤에게 K컬처는 더 이상 '보는 콘텐츠'에 머물지 않는다. 이들은 아티스트가 착용한 디자이너 브랜드의 옷을 입고, 영상 속에서 맛있게 먹던 음식이나 디저트를 구매하며, K팝 스타들의 피부 비결인 화장품을 찾아 나선다. K엔터 산업의 외연 확장이 국내 소비재와 관광 산업 전체를 끌어올리는 강력한 '경제 엔진'으로 진화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ADVERTISEMENT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한류산업 수출의 경제 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K콘텐츠 수출이 1억달러(한화 약 1385억원) 늘어날 때 화장품·식품·의류·IT기기 등 연관 산업 수출액은 2억200만달러(한화 약 2797억원)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문화의 흥행이 곧바로 실물 경제의 무역 창출 효과로 이어지는 셈이다.
이러한 현상은 국제무역 학계의 '문화적 근접성(Cultural Proximity)' 이론과 궤를 같이한다. 자크 멜리츠(Jacques Melitz) 등 무역학자들은 문화적 공유를 통해 형성된 친밀감이 양국 간 교역량을 비약적으로 늘린다고 설명해왔다. 특히 이러한 효과는 규격화된 원자재보다 소비자 기호와 취향에 좌우되는 '차별화된 소비재'에서 더욱 유의미하게 나타난다. K팝 향유로 형성된 친밀감이 한국산 소비재 구매 결정으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이 통계적 검증을 통해 입증된 셈이다.
ADVERTISEMENT
보고서는 2025년 기준 K콘텐츠 수출액이 전년 대비 5.9% 성장한 149억1000만달러를 기록하며 견조한 상승 흐름을 이어갔다고 명시했다. 특히 K팝 아티스트들의 해외 진출 확대와 글로벌 라이브 공연 시장 회복에 힘입어 음악 분야 수출액은 전년 대비 32.4%라는 가파른 증가율을 나타냈다. 영화 분야 역시 19.9% 상승하며 성장을 뒷받침했다.
콘텐츠 산업 내 분야별 비중을 살펴보면 게임이 57.7%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가운데, 음악(16.0%)과 방송·영상(9.1%)이 뒤를 이었다. 상위 3개 엔터 분야가 전체 콘텐츠 수출의 82.8%를 점유하며 K문화 확산의 최전선을 담당하고 있다.
이 같은 엔터 산업의 확장 효과는 소비재 수출 지표 및 국내 기업들의 현지 전략에서도 뚜렷하게 확인된다. 한류산업 수출액 1억달러가 늘어날 때 연관 산업에 미치는 품목별 영향을 세부적으로 추산한 결과, IT기기 수출이 1억500만달러 증가해 가장 큰 파급력을 보였으며 화장품(7300만달러), 의류(1700만달러), 식품(1500만달러) 순으로 증가세를 견인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국내 대기업 역시 K콘텐츠와 소비재를 연계한 생태계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CJ그룹은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힐튼 글렌데일에서 열린 K-라이프스타일 비전 발표회를 통해 엔터테인먼트, 푸드, 뷰티 등 핵심 사업군을 결합해 2028년 북미 매출 12조원을 달성하겠다는 구상을 공개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 역시 지난 5월 북미 주요 사업장을 찾아 계열사 간 시너지 창출을 강조하며 미국 소비자의 일상 속 확산을 당부한 바 있다.
ADVERTISEMENT
CJ가 지난해 12월 미국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글로벌 K컬처 영향력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5%가 K푸드·K뷰티·K팝·콘텐츠 중 2개 이상을 접해본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CJ는 비비고, 케이콘, 올리브영, 뚜레쥬르 등의 브랜드를 상호 연계해 문화 경험이 제품 구매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다질 방침이다. 김진식 CJ 아메리카 대표는 "K콘텐츠에 대한 관심을 K푸드와 K뷰티의 습관적·반복적 소비로 확장하고 이것이 다시 오프라인 문화 경험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허민회 CJ 대표는 "CJ그룹은 30년 이상 미국 시장에 지속 투자해 왔으며 식품·콘텐츠·뷰티 분야를 아우르는 독보적인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다"며 "K웨이브를 넘어 K라이프스타일이 미국 소비자의 일상에 자리 잡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ADVERTISEMENT
향후 콘텐츠 시장의 전망도 맑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6년 세계 콘텐츠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5.6% 성장한 2조4281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글로벌 팬데믹 이후 인력 조정 및 출시 지연을 겪었던 게임 시장에서 2026년부터 초대형 대작 신작들이 잇따라 출시되면서, 그간 위축되었던 게임 분야의 수출 성장세가 본격 회복될 것으로 분석됐다. 아울러 음악 시장 역시 라이브 공연, 굿즈 매출 확대, AI 결합 스트리밍의 활성화로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정부는 2024년 10월 '한류산업진흥 기본법'을 제정하고 2025년 4월부터 본격 시행에 나선 상태다. 해당 법안은 한류 및 한류산업 외에도 관광, 농수산식품, 화장품, 전통문화상품 등을 '한류 연관산업'으로 법적 명시해 국가적 통합 지원 대상에 포함했다.
ADVERTISEMENT
보고서는 반도체 등 일부 제조업에 편중된 국내 수출 구조를 다변화할 핵심 열쇠로 한류 산업을 지목했다. K팝이나 드라마 같은 문화 콘텐츠의 단발성 수출을 넘어, 해외 현지 규제와 무역장벽을 넘어서는 소비재 연계 마케팅을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