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The Odyssey)'가 연일 화제입니다. 풀 아이맥스 70㎜ 필름으로 촬영한 영화사 최초의 작품으로 개봉 전부터 관심을 받더니, '용아맥(서울 CGV 용산아이파크몰 아이맥스관)' 티켓을 예매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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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관객의 발길이 끊겨 긴 시간 시름에 잠겼던 영화관은 오랜만에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오디세이'와 '스파이더맨 : 브랜드 뉴 데이'의 쌍끌이 흥행 덕에 지난 연휴 기간 극장이 관객들로 붐비는 장관이 펼쳐졌는데요. 특히 '오디세이'는 걸작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아이맥스 등 특별관은 여전히 '박 터지는 티켓팅'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개봉 3주차에도 '용아맥' 티켓은 매진입니다.
암표까지 등장할 정도로 '오디세이' 열풍은 식을 줄 모르고 더 거세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디세이'는 꼭 특별관에서 봐야만 좋을까요? 한마디로 답하자면 "아닙니다". 일반관에서도 작품의 완성도를 충분히 느껴볼 수 있습니다. 놀란 감독 역시 "압도적인 해상도로 찍었기 때문에 아이맥스관이 아니어도 최상을 경험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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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관에서도 작품에 강하게 몰입할 수 있는 데에는 화질 외에 또 다른 하나의 장치가 큰 역할을 합니다. 바로 음악인데요. 약 3시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을 꽉 채운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OST)이 단 한 순간도 긴장감을 놓을 수 없도록 심장을 조여옵니다. '오디세이'에서 음악은 단순히 멜로디컬한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데에 그치지 않습니다. 투박하고 간결하게 구현된 악기 소리가 서사와 배경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하나의 언어로서 놀라운 존재감을 드러내죠.
놀란 감독은 '오디세이'에 완전히 독창적인 음악이 들어가길 원했습니다. 통상적으로 장르극에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투입돼 웅장한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것과는 정반대되는 흐름이었죠. 그는 영화가 고대 그리스 배경일지라도 현시대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는 세계처럼 느껴지길, 기존의 고전 세계를 다룬 영화들처럼 보이지 않길 바랐습니다.




'시대의 초월.' 이 같은 주문을 받은 음악감독 루드비히 고란손은 새로운 소리를 찾는 데 집중했습니다. 고란손은 고문서를 뒤져가며 당시 사람들이 사용했을 법한 악기를 연구했고, 고대 그리스 악기인 아울로스, 리라를 복원해 연주까지 현실화했습니다. 배경이 청동기 시대임을 고려해 청동으로 만든 징의 소리도 담았습니다. 여기에 신시사이저도 추가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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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 감독이 추구했던 방향성을 고란손은 예리하게 이해하고 소리로 표현해냈습니다. 때로는 낮고 묵직하게, 때로는 거칠고 임팩트 있게 귀에 꽂히는 악기 소리는 다이내믹한 서사, 그 안에서 섬세하게 그려지는 인물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부각했습니다. 마치 이야기의 흐름 곳곳에 스포트라이트 조명을 비추는 것과 같은 강도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서사, 영상미 못지않게 음악에 호평이 쏟아지는 이유입니다.
'오디세이' 음악을 담당한 고란손이 놀란 감독과 협업한 건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원래 놀란 감독은 '영화음악의 거장' 한스 짐머와 오랜 시간 호흡했습니다. 둘은 '다크 나이트', '인셉션', '인터스텔라', '덩케르크' 등으로 환상의 시너지를 내왔죠. 그러나 2020년 개봉한 '테넷'의 음악을 돌연 고란손이 맡게 됩니다. 당시 한스 짐머가 드니 빌뇌브 감독의 '듄' 작업으로 참여할 수 없게 되면서 놀란 감독의 옆자리가 바뀌게 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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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손은 '테넷'을 시작으로 '오펜하이머', '오디세이'까지 놀란 감독과 함께하게 됐습니다. 다수의 작품을 통해 고란손은 이미 '천재 작곡가'로 불리고 있습니다. 한스 짐머의 빈 자리에 들어갔지만, 이제는 그와 견줄 수 있을 정도로 영화음악계에서 두드러지게 활약하고 있죠. '블랙팬서', '오펜하이머', '씨너스'까지 오스카에서 음악상을 무려 3번이나 수상했습니다.
루드비히 판 베토벤에서 따온 이름값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 것인데요. 고란손의 아버지는 아들의 이름을 블루스 뮤지션 앨버트 킹에서 따와서 앨버트로 짓고 싶어 했지만, 어머니가 베토벤을 따서 지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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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팬들에게는 '고서방'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가 한국계 바이올리니스트와 결혼했기 때문입니다. 아내인 세레나 고란손 역시 '토이스토리3', '라푼젤', '리오2',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오펜하이머' 등 다양한 작품의 스코어 녹음에 참여했습니다. '씨너스: 죄인들'에는 총괄 음악 프로듀서로 참여해 부부가 함께 시너지를 내기도 했습니다.


'오디세이' OST는 영화음악계 또 하나의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오디세우스가 활을 튕길 때 '댕~' 하고 나는 악기 소리에 중독됐다는 반응까지 쏟아지고 있습니다. 활소리를 듣고 싶어서 영화를 한 번 더 봐야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죠. 이는 하프와 비슷한 현악기인 리라로 구현됐습니다. 놀란 감독은 리라의 독특한 뜯는 소리가 오디세우스가 활을 튕기는 동작을 할 때 사용될 수 있을 거라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트래비스 스캇의 랩과 제임스 블레이크의 보컬이 들어간 엔딩곡 '웬 아임 홈(When I'm Home)'은 놓쳐선 안 될 핵심 트랙입니다. '웬 아임 홈'은 음악적 측면에서 고전 세계와 현대의 분위기를 같이 아우르고자 했던 놀란 감독의 취지를 충실히 반영합니다. 아울러 긴 여정 끝에 집으로 돌아오는 오디세우스의 트라우마, 실향, 귀향의 정서를 모두 담아낸 작품의 축소판과도 같은 곡입니다.
고대 그리스 배경에 웬 힙합 래퍼냐 싶겠지만, 놀란 감독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가 문자로 읽히기 전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진 구전시였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이를 전달했던 음유시인의 역할이 현대 대중문화 영역에서는 래퍼와 결이 유사하다고 보고 트래비스 스캇을 음유시인 역으로 캐스팅하기도 했죠.
스캇과 블레이크, 고란손은 지난 3월 '오디세이' 편집본을 봤고, 그날 밤 바로 스튜디오로 향해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곡이 바로 '웬 아임 홈'입니다. 스캇은 호메로스의 원작 서사시를 참고했고, 블레이크는 유령 같은 후렴을 담당했으며, 고란손은 약 5분 동안 랩과 코러스, 독특한 비트와 부드러운 선율을 오가는 다채로운 구성을 짜임새 있게 연결했습니다. 놀란 감독도 이 곡의 공동 작사가로 이름을 올렸는데요. 오디세우스의 여정을 떠올리며 그가 어떤 노랫말을 썼을지 생각해 보면 곡이 더 흥미롭게 들릴 겁니다.
음악·공연·영상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즐거움을 주는 시대. 숨은 이야기를 알면 더 보이고, 더 들립니다. 당신의 취향을 찾을 때까지 같이 깊게 파고드는 '디깅메이트'가 되어드리겠습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