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국제공항이 올해 상반기 국제선 여객 세계 1위(3839만 명)를 차지했다. 개항 25년 만에 이룬 쾌거다. 미국·이란 전쟁 여파로 경쟁자인 두바이공항이 주춤한 덕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세계 1234개 국제공항 가운데 1위에 오른다는 게 운만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니다.인천공항의 성공에는 ‘입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에 인접해 있으면서 56.06㎢ 면적의 너른 부지를 활용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에 공항이 들어선 것이다. 하지만 이 천혜의 입지는 하루아침에 뚝딱 발견한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이 걸리고, 시행착오를 반복한 끝에 찾아낸 최선의 해답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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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국제공항을 대체할 신공항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81년이다. 서울올림픽 개최 등으로 기존 공항의 포화 우려가 커져서다. 처음에는 경기 수원과 이천, 군자(시화지구), 남양(화성) 등 네 곳이 후보지로 거론됐다. 1984년에는 군사적 이유로 충북 청원군에 신공항 건설을 추진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오랜 검토 끝에 1988년 영종도와 시화지구 두 곳으로 후보지가 압축됐다. 영종도로 최종 결정된 것은 1990년이다. 서울 도심 100㎞ 이내에 검토된 후보지만 22곳에 이른다.
국가의 명운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업인 만큼 인천공항 개항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안개가 잦다는 우려부터 철새 도래지를 파괴한다는 환경단체 반대까지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공항 건설 과정에 판단 착오도 적지 않았다. 기존 결정이 뒤집히기도 했다. 하지만 공항 부지를 선정하기까지 10년 가까이 이어진 지루한 검토와 반복된 논의가 오늘날 세계 최고 공항으로 우뚝 서는 바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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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의로 일군 인천공항의 성공 사례와 대조적으로 결론부터 서둘러 내놓고 보는 오늘날 대형 사업은 걱정스러운 면이 한둘이 아니다. 투자 규모가 800조원이 넘는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사업은 반도체 팹이 들어설 지역부터 ‘기습적’으로 선정했다. 공식 선정 절차도, 공개 논의도 생략됐다. 광주 군공항을 공장 부지로 쓴다면서 국가 안보의 중요한 축인 미국과의 협의는 건너뛰었다. 안정적인 전력과 용수 마련은 여전히 뒷전이다.
계획과 논의가 부족하기는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검찰 수사권을 박탈하고 형사사법 체제를 통째로 뜯어고치는 일은 공청회만 거친 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결정됐다. 금융산업의 근간인 신용 시스템은 고위 경제 관료가 SNS에 올린 뜬금없는 감상문을 계기로 원칙도 없이 뒤죽박죽됐다. “전세는 사라져야 할 제도”라거나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는 법적 근거도 없는 정책당국의 한마디에 100년 넘게 구축된 부동산시장 질서도 흔들렸다. 준비 없이 뜯어고친 부동산 세제는 1주택과 다주택, 거주와 비거주, 부동산 가격에 따라 세무사도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누더기가 됐다.
여기에 서울 용산공원 부지에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정부의 급조된 구상이 가세했다. 주거난이 심각한 만큼 공원을 없앤 자리에 청년임대주택을 짓는 결정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용산에 국가공원이 조성된 것은 1990년 한·미가 미군 기지 이전에 합의한 이후 십수 년간의 논의를 거쳐 2007년 용산공원조성특별법을 제정하며 내린 결정이다. 오랜 숙의 끝에 내린 결론을 뒤엎으려면 그에 합당한 근거와 많은 사람이 납득할 만한 논의 과정이 필요하다. 불가역적인 결정에는 더 신중해야 한다. 10년이 걸리더라도 철저하게 준비해야 할 일을 덮어놓고 벌인 뒤에 좋은 결과가 나오길 바라는 것은 과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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