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안은 돈 안되고 귀찮은 잡일이 아니라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챙겨야 하는 핵심 업무입니다.”
정은아 수산아이앤티 대표(49·사진)는 20일 인터뷰에서 “최근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로 수천억원대 과징금을 맞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지만 정작 중소기업 대표들은 여전히 ‘남의 일’로만 생각해 보안을 후순위에 두는 경우가 많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 대표가 최근 출간한 <대표님, 보안은 IT가 아니라 경영입니다>에도 이런 문제의식이 담겼다. 정 대표는 “돈을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보안 조치가 많은데 그런 기본조차 지키지 않는 기업이 부지기수”라고 지적했다.
◇‘키코 사태’ 해결의 선봉장 되다
정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책장 몇 개를 만화책으로 가득 채울 정도로 ‘만화광’이었다. 서울대 법대에 진학해서도 만화책에 빠져 날이 저문 줄 몰랐을 정도다. 순정만화와 코믹, 역사, 추리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었다. 신간에도 이런 취향이 반영됐다. CEO를 위한 경영지침서임에도 만화책 크기로 제작했고 제목도 자연스러운 구어체로 뽑았다.ADVERTISEMENT
대학 졸업 후 미국 밴더빌트대 로스쿨로 유학을 떠난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급히 귀국했다. 당시 아버지 정석현 회장이 이끌던 수산중공업이 통화옵션상품 ‘키코(KIKO)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 법학 전공을 살려 약 2년간 키코 관련 소송과 피해기업 대책위원회 실무 등을 맡았다. 그러면서도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MBA) 과정을 병행했다. 2010년 수산아이앤티로 자리를 옮긴 뒤 다섯 명의 전문경영인을 보좌하며 경영 수업을 받았다. 2024년 1월 단독 대표에 올랐다.
◇“해킹 100% 못막아…빠른 대처가 중요”
키코 사태는 정 대표가 기업의 리스크 관리에 눈을 뜬 계기가 됐다. 그는 “리스크 관리 실패로 기업이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현상을 목도했다”며 “보안 역시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당장 수익을 내지 못하는 애물단지가 아니라 기업의 존립과 영속성을 위해 필수적인 투자로 봐야 한다는 얘기다. 정 대표는 “회계·재무 담당자는 중요하게 여기면서 보안 담당자가 얼마나 큰 권한을 가진 직책인지 잘 모르는 경영자가 많다”고 했다. 이들 담당자는 업무 특성상 사내 이메일과 메신저 등 민감한 정보에 광범위하게 접근할 수 있지만 일부 중소기업에서는 별도 전문인력 없이 총무팀이 겸임하는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그는 보안을 위해 회사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부터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핵심 자산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임직원 보안교육과 계정·접근 권한 관리, 중요 정보의 정기 백업 등 기본 조치부터 챙겨야 한다. 별도의 저장매체에 공인인증서 보관, 의심스러운 메일은 바로 삭제, 업무용 PC의 주기적인 윈도 재설치 등 수칙만 지켜도 상당한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정 대표는 “해킹을 완벽하게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기본적인 방어 체계를 갖추고 설령 해킹 사고가 나더라도 빠르게 복구해 소비자의 신뢰를 되찾는 것까지 모두 보안의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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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령을 부리지 말고 쉬운 길을 찾지 말라’는 아버지의 경영 철학이 곧 그의 신조다. 보안이 단기 실적보다 기업의 영속성을 위한 기술이라는 점에서 같은 맥락이다. 정 대표는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쌓은 기술력으로 글로벌 빅테크에도 당당히 맞설 것”이라고 다짐했다.
최진영 기자/사진=임형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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