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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준의 시선] 비유와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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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준의 시선] 비유와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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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2년 5월 4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장영자·이철희 부부를 구속했다. 장영자는 기업들로부터 자신이 대여해준 돈의 많게는 9배에 달하는 액면가의 어음을 받아냈고 그걸로 마련한 현금을 다시 다른 기업들에 빌려주면서 더 많은 어음을 손에 넣었다. 기업의 신용을 인질로 삼은 시한폭탄이었다. 이렇게 운용된 어음은 7111억원어치, 자금은 6404억원에 달했다. 당시 국가예산 9조5000억원의 15분의 1(언론에서는 10분의 1이라고들 말해왔지만)에 가까운 자본이 장영자의 손바닥에서 움직였다.

    ‘장영자 사태’는 대한민국 금융사와 정치사를 한꺼번에 휩쓸고 간 태풍이었다. 은행장 두 명 포함 30여 명이 구속되고 국무총리를 비롯한 주요 장관들이 경질됐다. 서슬 퍼런 5공시절이 아니었던들, 출범한 지 1년 조금 넘은 시점에서 자칫 정권이 망할 뻔한 대형사고였다. 장영자와 정권과의 연관성은 아직까지도 명백히 밝혀진 바가 없지만, 장영자가 그런 소문을 폭넓게 조성해서 적극 활용한 점만큼은 명백했다. 이는 금융기관이나 기업 등에게, 장영자가 하자는 대로 하면 큰 이득을 챙길 수 있다는 욕망에 불을 붙였다. 실지로 그들은 한동안 장영자 덕에 이득 혹은 이득의 환영을 맛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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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데, ‘장영자 어음사기 사건’이라는 명칭이 하도 각인이 돼서 그렇지 이게 ‘증권시장 파괴 사태’이기도 했다는, 자유시장경제의 측면에서는 그게 더 심각한 재앙이었다는 사실은 세월이 흐를수록 덜 조명되곤 한다. 장영자는 어음사기 과정에서 얻어낸 주식정보와 담합, 천문학적인 현금으로 증권시장에 직접 침투해 주가를 ‘인위적으로’ 폭등시켰다. 장영자가 찍은 종목은 정치권의 특수한 ‘자금과 조치’가 들어가 무조건 대박이 난다는 정보(?)에 홀려 특히 개미 투자자들은 빚까지 내서 ‘장영자 주’에 올라탔다.

    주가가 정점에 도달하자 장영자는 차명계좌를 통해 사들였던 주식들을 전량 매도해 시세 차익을 챙겼다. 이윽고 섭리처럼 이어지는 주가 폭락은 장영자의 몰락과 함께 본격적으로 지옥문을 열었다. 기업체들의 줄 도산은 물론이요 신용거래로(증권사에 빚을 내) 주식을 매수한 ‘개미’들은 반대매매(증권사의 강제매도)를 당해 남은 일생이 빚더미에 파묻혔다. 장영자가 안 건드린 종목이 없다는 유언비어가 돌자, 정말 아무 상관이 없는 우량주들까지 겁에 질린 개인 투자자들이 투매를 해버려 한국 증시 시가총액이 며칠 만에 엄청난 단위로 증발했다. ‘관제 자금’이 동원돼 주가를 떠받치려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고, 한국인의 한국 증시에 대한 불신은 상당기간 회복이 어려워 보였다. 이건 일반적인 금융위기, 외환위기 등과는 달랐다. 한국에서 ‘특정인(들)’에 의해 폭발한 경제위기 중 가장 큰 축의 사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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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대 미국 증시는 호황이었다. 증권사는 고객에게 주식가격의 90%를 빌려줬고, 은행 빚 주식투자가 대유행이었다. 자유시장경제(자본주의)에 대한 자료와 지식이 아직 덜 축적된 시대였다. 경제 전문가들조차 증시에 대한 견해가 상반되고 분분했다. 결국 1929년 월가가 몰락하면서 레버리지 투자자들부터 파산했고, 대공황이 들이닥쳤다. 그 지경까지도 주식 투자를 계속 왜곡시킨 자들 중에 예컨대 내셔널시티은행 회장이자 주식전문가 찰스 미첼이 있었다. 방임 기조이던 미국 정부는 어쨌든 증권시장의 오류와 실패를 바로잡으려 발버둥쳤다.

    정부는 증시의 폭등과 폭락을 유도해서는 안 된다. ‘변동성’이 지나치게 크거나 작지 않게, 안정적인 우상향 곡선을 그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가령 정부가 ‘정치적 목적 등’에 의해 증시 매수 주체를 동원하면, 투자자는 진짜 수요가 아닌, 관제자금이 만들어낸 그림자를 보고 매수와 매도를 결정하게 된다. 그리고 결과는 매번 개인과 국가 경제의 ‘지옥’이다. 구속된 장영자는 “경제는 유통이다!(‘호텔경제학의 원조’)”라고 외치며 자신을 변호했다. 역사는 똑같은 사건을 반복하지는 않지만 똑같은 교훈은 반복한다. ‘장영자’는 버전을 달리해 등장하고, 비유는 현실 때문에 존재한다. 분명한 것은, 장영자는 처벌받았다. 찰스 미첼 역시 수사받고 기소돼 재판받았다. 이런 게 있어야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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